사랑은 여백 위에서 머문다

하나의 사건보다, 방향성을 본다는 것

by 서아

우리는 흔히 '사랑'을 떠올릴 때 연인이나 가족 같은 가까운 관계를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은 특정한 관계에만 국한된 감정이 아니라, 일상의 거의 모든 인간적 연결을 이루는 기본적인 가치에 가깝다. 그리고 그 연결을 지속시키는 조건 가운데에는 '여백'이 있다.


연인 간의 사랑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마음을 깊이 열기 시작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선택한 관계 안에서 깊이 형성되는 사랑이다. 선택의 순간부터 두 마음은 금세 가까워지고, 친밀함과 애틋함이 빠르게 자라난다.


반면 가족 간의 사랑은 혈연이라는 구조를 바탕으로, 의지와 상관없이 맺어진 결속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랑이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사랑은 늘 곁에 있는 듯 편안함과 당연함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삶을 확장해 가면서 직장과 지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속에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마음들을 주고받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을 포함해 수많은 형태의 사랑을 경험한다.


나는 이전에 사랑이란 무언가 좋은 것을 내어주고, 누군가에게 사랑스럽게 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관계를 지나오며 사랑에는 '여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사랑을 표현이나 감정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마음이 오래 머무르는 데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 사이에 놓인 '공간'이다. 이는 상대를 향한 마음의 공간을 남겨두고, 급하게 반응하지 않으며 관계가 해석될 시간을 스스로 허용하는 태도다. 조금 더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상대를 향해 마음의 문을 쉽게 닫지 않는 마음이다.


이 여백은 어느 한쪽의 노력으로는 유지되기 어렵다.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두 사람 모두가 그 공간을 지키려는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하나의 사건에 반응해 관계를 단정하기보다, 서로가 향하고자 하는 방향성에 초점을 두는 태도다. 그러나 한 사람의 마음이 계속 위축되거나 작아진다면, 그때는 관계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나를 지키는 용기도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화려하고 즉각적으로 만족을 주는 가치나, 누가 보아도 매력적인 존재에 마음이 이끌린다. 이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성향일 수 있다. 그렇지만 결국 관계를 지속시키고 깊어지게 만드는 것은 눈에 띄는 장면보다, 선택할 수 있는 의지, 다시 말해 서로에게 여백을 남겨두려는 꾸준한 마음이다.


그 시간들 속에서 누군가는 용서와 이해, 그리고 회복을 경험한다. 나 역시 그 마음들을 통과하며, 사랑이 가진 의미를 이전보다 더 넓고 깊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 번씩 돌아보면, 따스한 온기들이 나에게 참 많이 전해졌구나 느끼게 된다. 그리고 고마움들 속에서 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온기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아직은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이 향해야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은 말이나 눈에 띄는 행동보다 서로가 머물 수 있는 온도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오래 살아남는다. 그래서 사랑은 나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서 다양한 형태로 닿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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