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육면체, 빛, 사랑

by 서아

입체 사각형 한 면에 내리쬐는 태양빛을 바라본다. 손 안의 조각을 천천히 눈높이 보다 약간 아래에서 굴려본다. 가장자리에서부터 천천히 스며드는 입자가 어느새 한 면을 메운다. 하얀 여백이 온전히 그 빛을 담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새로운 의미가 새겨지는 순간.


그러나 여백은 여백으로써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빛이 다른 면을 비추며 넘어갈 때 처음 만난 면은 자신의 시간 속에 남은 사랑을 기억한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는 비물리적인 투명한 막이 남아있다. 사랑은 각각의 분자가 의지적으로 붙들고 기억하여야 연속적으로 성립된다. 빛을 알기 이전의 존재해 온 시간들, 앞으로의 시간들 모두, 서로를 만난 시점에서 의미가 새롭게 새겨진다.


빛은 직육면체의 한 면에 먼저 닿는 순간 표면의 결, 온도, 밀도를 읽는다. 그의 온도가 하얀 여백 위를 천천히 메우며, 분자의 움직임을 해석한다. 그러나 분자의 특성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 짧은 시간을 함께 새기는 것 외에 바랄 것이 없는 것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다른 면으로 천천히 넘어간다.


내려앉았던 온기는 금세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두서없이 홀연히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원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스쳐가는 잠시의 기억이 우리가 함께한 시작과 끝, 모든 시간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과도 같이.


두 존재의 역할은 서로에게 양방향으로 상호작용한다. 직육면체는 어느 순간 빛이 되기도 하고 빛은 직육면체가 되기도 한다. 투명한 기억은 확장되어 또 다른 직육면체에 빛으로 전해지기도 하고, 어느 날 초기 상태의 하얀 여백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둘을 가시적인 존재로 인식한다면 스치는 시간 속에서 필요한 전제는 서로의 의지이다.


그러나 태양빛도 직육면체의 6면을 동시에 닿을 수 없다. 거기에는 도형을 이루고 있는 분자들의 형태를 무시하지 않기로 한 본래의 성질이 있다.


가장 순도 높은 사랑을 직접 경험하려면 현재의 환경에서 심적으로, 상황적으로 내 존재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빛이 닿기 전 여백뿐인 직육면체와 빛이 지나간 자리의 여백에서 사랑을 떠올리지 않는다. 빛이 한 면에 천천히 스며드는 순간의 고요한 찬란함을 생각한다. 그 개별적인 기억은 결국 남은 자가 스스로 붙잡아야 한다. 두 존재가 만나고 흩어지는 순간은, 우리의 기억 속에 같은 결의 사건을 동시에 생각나게 한다. 그와 같이 다른 차원의 존재에게도 같은 ‘의미’가 수없이 닿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기억을 붙잡고 빛으로써 나아갈 의지가 얼마나 있을까. 분자로써 기억을 붙들려는 의지는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여러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계속해서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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