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글쓰기 노동자의 일상기록(13)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컴퓨터는 AppleⅡ다. 모두가 다 아는 그 '애플' 맞다. 1975년 대학생이었던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는 그의 절친 스티브 워즈니악(Stephen Gary Wozniak)과 함께 애플을 개발했다. 1977년에 출시한 애플Ⅱ는 미국시장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최초의 퍼스널컴퓨터로 기록됐다. 애플Ⅱ가 일으킨 열풍은 금세 한국까지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초 종로 세운상가는 애플Ⅱ 복제품의 메카였다.
주말 세운상가에서는 구름처럼 몰려든 초중고생들이 전시품 컴퓨터에 매달려 조이스틱(joystick)을 만지작거렸다. 애플Ⅱ는 키보드 일체형이었고, 마우스가 없던 시절이었다. 직접 타이핑을 해 명령어를 내리는 애플Ⅱ에서 마우스는 필요 없었다. 대신 조이스틱이 달려 있었다. 용도는 단 하나. 게임이었다.
애플Ⅱ의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독자적인 퍼스널컴퓨터가 나타났고, 이걸 한국의 가전회사들이 라이선스를 받아서 들여왔다. 삼성전자의 SPC(Samsung Personal Computer), 금성사의 FC(Family Computer)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었다. 가정용 컴퓨터를 표방한 애플과는 달리 NEC, 후지츠(Fujitsu) 등 일본의 컴퓨터들은 비즈니스와 교육을 염두에 뒀다. 이들의 복제품인 한국 컴퓨터에서는 ‘교육용’이라는 슬로건이 특히 강조됐다. 우리나라의 부모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만 기꺼이 지갑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당시의 아이들은 컴퓨터를 배우러 다녔다. 동네마다 한두 개씩은 있었던 컴퓨터학원들은 교육용 컴퓨터로 베이직(BASIC) 등의 프로그래밍 언어와 영어를 배울 수 있다며 학부모들을 유혹하는 전단을 뿌렸다. 아이들은 학원에 가서 ‘LOAD’나 ‘RUN’ 같은 명령어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단 한 줄의 명령문만 머릿속에 넣었다.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게임을 로드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컴퓨터도 갖고 있지 않았고, 학원에도 다니지 않았지만 한 줄의 영어 명령문만큼은 줄줄 외우고 다녔다.
덕분에 이 시절 내 기억은 컴퓨터가 있었던 친구 집에서 2인용 게임을 하며 밤을 새운 일들로 채워져 있다. 거친 도트 픽셀(pixel)을 그대로 드러냈던 흑백 모니터에 뜻도 모를 명령어를 입력하고 카세트 레코더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게임 하나를 로드하는 데 수십 분이 걸렸다.
컴퓨터로 공부나 숙제를 했던 기억 같은 건 전혀 없다. 그렇게 할 마음 자체가 없었지만 설사 있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의 컴퓨터는 ‘한글’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워드프로세서 같은 프로그램도 없었다. 있다고 해도 그걸로 작성한 뭔가를 학교에 갖고 갈 방법도 없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었고, 프린터는 구경조차 하기 어려웠다.
좀 더 컴퓨터다운 컴퓨터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나서였다. 전설 속 동물마냥 말로만 전해지던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구동되는 컴퓨터가 나왔다는 얘기를 군대에서 처음 들었다. 조이스틱 대신 마우스가 달린 286 AT 컴퓨터에서 아래아한글 초기 버전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MS-DOS(Disk Operating System) 명령어 몇 개를 익혀야 했다. ‘DIR’로 해당 디렉터리(폴더)에 어떤 파일들이 있나 살펴보고 ‘exe’ 확장자가 붙은 실행파일을 찾아내면 됐다. ‘HWP 1.52’ 디렉터리에서 ‘hwp’를 입력하면 아래아한글이 구동됐다.
복학생 시절의 나는 아래아한글로 리포트를 작성한 후 프린트로 출력해 교수님들께 제출하곤 했다. 하지만 가장 많이 입력한 명령어는 ‘hwp’가 아닌 ‘Koei’나 ‘ ACDsee’였다. Koei는 게임 삼국지, ACDsee는 이미지뷰어의 실행파일명이었다. 나는 이걸로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집을 봤다. 당시 첫 컴퓨터를 가진 나는 DOS를 익히기 위해 책을 샀지만 거의 읽지 않은 채로 학교 앞 헌책방에 되팔아버렸다. 게임을 하고, 일본 여배우의 누드집을 보고, 리포트를 쓰는 데는 많은 명령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1995년에 ‘윈도우95’가 나왔다. GUI의 시대가 열렸다.
GUI는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raphic User Interface)를 의미한다. 요즘은 마우스나 손가락으로 아이콘을 클릭(탭)해서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한다. 하지만 초기의 디바이스들은 그렇지 않았다. LOAD나 RUN, DIR 같은 명령어를 키보드로 일일이 입력해줘야 했다.
그래서 초기의 컴퓨터 메이커나 학원들이 컴퓨터를 배우면 ‘영어’도 함께 배울 수 있다며 학부모들을 유혹했다. 하지만 GUI 시대가 열리면서 이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이후로 사람들은 MS오피스나 포토샵(Photoshop)이라면 몰라도 윈도우나 안드로이드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지는 않게 됐다. 유튜브 영상 제목이라면 몰라도 ‘갤럭시 S25 완전정복’, ‘macOS 내 몸처럼 다루기’ 같은 책 제목이나 강의명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웃음이 터진다.
모든 기술의 진화는 ‘배우지 않아도 되는 방향’을 향한다. 영어와 컴퓨터를 동시에 배울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아이들을 학원에 보냈던 우리 부모 세대들도 유튜브를 보고, 메신저를 쓰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진보된 디지털 기기를 쓰기 위해 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사용법 학습이 아니라 더 크고 선명하게 화면을 보여줄 돋보기안경이다. 텍스트 기반의 OS가 그래픽 기반으로 진보한 것은 돌도끼가 손잡이가 달린 망치나 도끼로 진보한 것과 기술적 궤적이 같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도구는 인간의 지식보다는 직관에 더 가까워진다.
내 주변에는 ICT 업계에서 이른바 ‘1세대 개발자’로 불리는 사람이 몇 명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성공한 이는 시총이 조 단위를 넘어가는 기업을 창업한 중학교 동창이다. 이 친구는 컴퓨터학원에 전혀 다니지 않았다. 나와 함께 부잣집 친구 집에 며칠씩 얹혀 지내며 밤새워 게임만 했다. 대입에 실패했고, 한 대학교 병설 전산원에 들어가 프로그래밍을 처음 배웠다. 컴퓨터공학과 학생이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러던 그가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에 올라타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갖고 있었던 부잣집 친구는 지금 동네에서 카페를 한다. 그는 로스팅 솜씨가 매우 좋다. 나는 가끔 그의 가게에 들러 갓 볶은 커피를 사온다. 이 녀석은 컴퓨터도, 게임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유난히 밤잠이 많아 가장 먼저 잠자리에 들었고, 대신 나와 다른 친구가 나란히 컴퓨터 앞에 앉아 밤을 새우곤 했다. 고등학교 때 문과를 선택해 상대(商大)에 진학했고, 졸업 후 은행에서 오래 근무했다. 그렇게 중학생 시절 한 방에서 밤을 보냈던 세 친구는 내로라하는 ICT 기업의 최대 주주가 됐고, 은행원 출신의 카페 주인이 됐고, 글쓰기 노동자가 됐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인생이란 결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막연하지도 않다. 컴퓨터를 갖고 있었고, 학원까지 다녔던 친구가 지금 컴퓨터와 가장 멀리서 산다. 대신 게임이 좋아 늘 그 주변을 떠나지 않았던 친구가 컴퓨터와 가장 가까이서 산다. 그 친구는 내가 AI로 글 쓰는 얘기를 하면 매우 흥미로운 표정으로 듣는다. AI라고 하면 네가 훨씬 더 가까울 텐데 내 얘기가 그렇게 재미있냐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나 같은 공돌이 출신 무지렁이가 작가 선생님 말씀 따라가기도 바쁜데 그게 무슨 소리야?”
‘작가가 아니라 글쓰기 노동자’라고 고쳐주면서도 나는 친구의 반응이 즐겁다. 성공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AI를 만드는 사람이고, 너는 AI를 쓰는 사람이고···.
친구의 말이 옳다. AI 엔지니어가 내게 글쓰기는 이렇게 하세요, 하고 말하는 건 제철소 사장이 자동차 회사에 가서 자동차는 이렇게 만드세요,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각기 다른 지식과 직관, 경험이 필요한 별개의 영역과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요즘 ‘AI로 글쓰기’를 가르치려는 사람이 꽤나 많은 것 같다. 그들은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서둘러 책을 내고, 서문에 쓴다. 나는 AI를 이용해 단 며칠 만에 책 한 권을 뚝딱 완성했다.
인터넷에는 더 많은 얘기들이 넘쳐난다. 이와 관계된 모든 책과 포스팅을 다 읽어본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적잖은 글들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AI로 썼다는 사실이 대체 뭐가 중요한가. 책이 책이 아니고 글이 글이 아닌 마당에. 내게는 그 글들이 오히려 “AI로 하면 이렇게밖에 글이 안 나옵니다”하고 자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AI를 잘 활용하면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쓸 수 있게 된다는 말은 맞다. 그런데 반만 맞다. 좋은 글, 좋은 책은 고사하고 그나마 팔릴 만한 ‘최소한의 상업성을 갖춘 글’ 이라는 단서를 달면 거의 거짓이 된다. 애초에 그것은 AI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AI를 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앞으로는 글쓰기에 AI를 반드시 활용해야 해, 안 그러면 뒤처질 거야, 라는 말도 맞다. 그런데 이 또한 반만 맞다. AI가 없어도 좋은 글, 상업적 가치가 있는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다만 좀 더 힘들고, 좀 더 속도가 느릴 뿐이다. 이 간극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제발 ‘AI로 글을 쓸 수 있다’, ‘책을 쓸 수 있다’고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무책임한 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글 가까이서 사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재능은 쓰고, 읽는 행위에서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것이다. 작가들은 그것만으로 지속 가능하게 글을 써나갈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AI로 가능하지 않다. AI는 거들 뿐이다.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졌을 때비로소 AI의 쓰임새가 생기기 시작한다.
글쓰기에서 AI의 조력을 ‘잘’ 받고 싶다고 해서 AI를 배울 필요는 없다. 어제의 누군가가 AI글쓰기 궁극의 스킬을 정리해 오늘의 나에게 건넸다 하더라도 그 지식이 유용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잘 다루기 위해 BASIC과 MS-DOS를 열심히 익혔다 한들 마우스 클릭이나 음성명령, 눈 깜빡임 한 번으로 완벽히 작동하는 진보된 UI(User Interface) 앞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다. 그런 무용(無用)한 짓을 하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글을 찾아 읽고, 남들과 다른 글을 써보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나에게는 오랫동안 미대 입시를 준비한 조카가 하나 있다. 그 아이가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해 한때 크게 낙담한 적이 있었다. 누가 들어도 알 만한 미술 명문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야기를 나누다 그 학교에 가려던 이유가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서란 걸 알았다. 그래서 물었다. 웹툰 작화(作畫)를 하고 싶은 거야? 조카는 스토리와 그림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의아했다. 그런 목표라면 그 아이가 충분히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했다. 웹툰은 그림만으로 가치를 평가받는 분야가 아니다. 잘은 모르지만 미대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을 가르쳐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나온 문창과에서도 글을 잘 쓰는 비법 같은 걸 알려주지는 않았다. 솔직히 그건 아무도 모른다. 이런 것과, 저런 것들을 꾸준히 해보면서 스스로 체득하거나 아니면 마는 것이다. 학교와 교수는 판만 깔아준다.
나는 조카에게 좋은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해 그림 외에 익혀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으니 낙담할 필요가 없다고 일러줬다. AI가 그림을 그려주는 시대가 됐으니 그림 외에 AI가 할 수 없는 다른 것을 공부하는 게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몇 권의 교양서와 역사서, 내가 좋아하는 소설과 만화를 주문해 보내줬다. 그 아이의 부모인 동생에게 전화해 굳이 그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했고, 적당한 학교에 보내는 대신, 여행을 많이 보내라고 조언했다. 꼭 종이나 물감으로가 아니라 AI로 그림 그리는 법도 경험해봐야 한다고 알려줬다. 조카가 나중에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외삼촌으로서 최선을 다해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을 알려줬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