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서 노래하는 가치

어둠의 숲에서 살아남기

by 헤론 베누

우주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광활하다. 우리가 속한 은하수에만 최소 1000억 개에서 최대 4000억 개의 별이 있고, 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약 2조 개의 은하가 존재한다. 1961년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는 우리 은하에 존재할 수 있는 외계 문명의 수를 추정하기 위해 하나의 방정식을 고안했다. 별의 생성률, 행성을 가진 별의 비율, 생명체가 발생할 수 있는 행성의 수, 지적 생명체로 진화할 확률, 통신 기술을 개발할 확률, 그리고 문명이 신호를 발신하는 기간을 곱하는 이 방정식은 낙관적으로 계산하면 우리 은하에만 수천에서 수백만 개의 문명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1995년 최초의 외계행성 발견 이후, 현재까지 5000개가 넘는 외계행성이 확인되었고, 통계적 분석에 따르면 우리 은하의 거의 모든 별이 하나 이상의 행성을 가지고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우리가 보는 별보다 더 많은 행성들이 어둠 속에 숨어 있다. 확률적으로 계산하면, 지적 생명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10억 분의 1이라는 비관적 추정을 적용하더라도, 우주 역사 동안 수십 억 개의 문명이 존재했거나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1960년에 드레이크가 웨스트버지니아 그린뱅크 천문대에서 직경 26미터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타우 세티와 엡실론 에리다니 두 별을 향해 귀를 기울인 이래, 인류는 60년 넘게 우주를 관측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수백 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수백만 개의 별이 모니터링되었지만, 단 한 번도 명확한 외계 문명의 신호를 포착하지 못했다.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1950년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외계인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그들은 다 어디 있는 거지?" 우주의 나이와 규모를 고려하면 외계 문명은 흔해야 마땅한데, 왜 우리는 그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하는가? 이것이 페르미 역설이다. 우주는 침묵하고 있다. 완벽하고, 절대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침묵.

이 역설에 대한 해답 중 하나가 어둠의 숲 가설이다. 이 가설은 중국 작가 류츠신의 2008년 소설 『삼체』에서도 다루어진 것으로, 그보다 20년 전인 1987년에 미국 SF 작가 그레그 베어가 이 개념을 제시한 『신의 용광로』(The Forge of God)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것은 1960년대 프레드 세이버하겐의 '버서커' 시리즈와 물리학자 존 폰 노이만의 자기 복제 기계 이론에서 유래했다. 베어는 이를 페르미 역설과 연결시켜, 왜 우주가 침묵하는지를 설명하는 우주사회학적 가설로 발전시켰다.

어둠의 숲 가설은 우주를 어두운 숲에 비유한다. 숲 속에는 수많은 짐승들이 숨어 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다른 짐승을 경계한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 소리를 내는 순간, 그는 즉시 다른 짐승들의 발톱에 찢기게 된다. 따라서 나약한 어린 새가 둥지 밖으로 나와 다른 새를 찾아 지저귀는 것은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짓이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문명들은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순간 선제공격당할 위험에 처한다.

가설의 논리는 두 가지 공리에 기반한다. 첫째, 생존이 문명의 최우선 과제다. 둘째, 문명은 성장하지만 우주의 물질 총량은 일정하다. 이 두 공리로부터 하나의 결론이 도출된다. 다른 문명의 의도를 확인할 방법이 없고, 소통에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공격은 그보다 빠르다면, 가장 안전한 전략은 선제공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문명은 침묵을 선택한다. 어둠의 숲 가설은 우주의 침묵을 설명하는 동시에, 왜 우리가 신호를 보내서는 안 되는지를 경고한다.

이 가설은 그럴듯하다.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는 완벽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제로섬 게임이다. 두 문명 A와 B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둘 다 상대방의 존재를 감지했는데,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A가 신호를 보내 평화적 의도를 밝히려 한다고 치자. 하지만 이 신호가 B에게 도달하는 데 100년이 걸린다. B의 응답이 A에게 돌아오는 데 또 100년. 200년 동안 A는 B의 의도를 알 수 없다. 그 사이 B가 공격을 결정하고 상대론적 속도로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A는 소통을 기다리다가 멸망할 수 있다.

더 나쁜 시나리오도 있다. B가 평화를 원한다고 응답했다 해도, A는 이를 믿을 수 없다. B가 거짓말을 하며 공격 준비 시간을 벌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전적 죄수의 딜레마다. 소통이 모두에게 이익이지만, 공격의 유혹이 너무 크다. 게다가 이 게임은 단 한 번만 플레이된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반복적인 게임으로 협력을 유도하지만, 우주에서 문명 간 만남은 대부분 일회성이다.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종족 전체의 멸종을 의미한다.

진화생물학적으로도 침묵은 합리적이다. 생존한 문명은 조심스러운 문명이고, 경솔했던 문명은 이미 멸종했을 것이다. 우주적 자연선택은 침묵하는 자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상어는 피 냄새를 맡으면 공격하도록 진화했다. 마찬가지로 우주를 항해하는 문명은 신호를 감지하면 공격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았던 문명들은 먼저 공격당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둠의 숲 가설의 논리다. 설득력 있고, 냉혹하고,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어둠의 숲 가설에는 커다란 논리적 허점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침묵의 자기모순이다. 만약 모든 문명이 침묵한다면, 침묵은 안전이 아니라 고립일 뿐이다. 구체적인 시나리오로 생각해 보자. 문명 C가 처음으로 우주로 나아가 주변 천 개의 별을 탐사한다. 하지만 다른 문명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만약 "이미 공격당해 사라진 문명"이 있었다면 그 흔적이라도 발견되어야 했을 텐데, 그렇지도 않다. C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 다른 문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다른 문명이 존재하지만 모두 침묵하고 있다. 세 번째, 다른 문명이 존재하고 C를 관찰하고 있지만, 먼저 공격하지 않고 있다. 어느 경우든 C의 입장에서는 우주에 홀로 존재하는 것과 구분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어둠의 숲 가설이 예측하는 "선제공격" 전략은 작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격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1974년 11월 16일, 푸에르토리코 아레시보 천문대는 M13 구상성단을 향해 태양계와 인류문명을 알리는 전파 메시지를 발송했다. 메시지는 2만 5천 광년 떨어진 성단을 향해 초속 3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 1977년에는 NASA가 인류문명의 정수를 담은 황금 레코드를 보이저 1호와 2호에 실어 태양계 밖으로 발사했다. 보이저 1호는 현재 태양으로부터 240억 킬로미터 떨어진 성간 공간을 시속 6만 킬로미터로 비행 중이다. 인류는 이미 "어리석은 새처럼 지저귀고" 있다. 어둠의 숲 가설이 금지하는 바로 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인류는 침묵하지 않았는가? 칼 세이건 같은 과학자들이 어둠의 숲 가설을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그들은 침묵보다 소통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서 어둠의 숲 가설의 또 다른 허점이 드러난다. 역설적이지만, 먼저 신호를 보내는 것이 오히려 안전할 수 있다.

다음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자. 지구가 2000년에 강력한 전파 신호를 우주로 발송했다고 하자. 50광년 떨어진 곳에 침묵하는 문명 D가 있다. 2050년, D는 지구의 신호를 포착한다. D는 어둠의 숲 논리에 따라 지구를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2051년, D는 광속의 10%로 날아가는 상대론적 미사일을 발사한다. 이 미사일은 500년 후인 2551년에 지구에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 문제가 있다. 미사일을 발사하는 순간, D는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한다. 상대론적 속도로 물체를 가속하려면 핵융합 또는 반물질 엔진이 필요하고, 이는 강력한 전자기파를 발생시킨다. 설령 다른 무기를 사용하더라도 마찬가지다. SF가 아니라 현실 우주에서, 한 문명을 파괴할 정도의 막대한 소모적 행위를 한다면 그만큼의 전자기파가 발생하게 된다.

D에게서 100광년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침묵하는 문명 E가 있다고 하자. E는 D의 미사일 발사를 관측한다. 2051년에 발사된 미사일에서 나온 빛은 100년 후인 2151년에 E에게 도달한다. E는 이제 D의 정확한 위치를 안다. E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D는 방금 자신이 공격적 문명임을 증명했다. D가 지구를 공격했다면, 언젠가는 E를 공격 목표로 삼을 수 있다. 이때 E의 합리적 선택은 선제공격이다. E는 2152년에 D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다. 이 미사일은 2652년에 D에게 도달한다. D는 지구를 공격한 대가로 자신의 위치를 노출했고, 100년 후 멸망한다. 지구는? 2551년에 D의 공격을 받지만, D는 이미 2652년에 멸망할 운명이다.

그리고 E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문명 F에게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게 된다. 시나리오는 둘 중 하나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F가 E의 공격에는 정당성이 있다고 여겨 계속 침묵하거나, 아니면 E가 D를 이어 나타난 공격적 경쟁자라고 판단하고 공격하거나. 어찌 되었든 선제공격한 D의 파멸은 확정적이다.

이 시나리오의 핵심은 이것이다. 공격은 비대칭적이지 않다. 공격자는 공격 행위를 통해 자신의 좌표를 우주에 공표한다. 만약 우주에 다수의 관찰자가 존재한다면, 공격자는 공격 직후 가장 위험한 표적이 된다. 이는 핵전쟁에서의 상호확증파괴 논리와 유사하다. 먼저 공격한 자가 반드시 보복을 받는다.

더 나아가, 먼저 신호를 보내는 문명은 "나는 공격 의도가 없다"는 메시지를 우주에 던진다. 만약 누군가 이 문명을 공격하려 한다면, 그 공격자는 비적대적인 문명을 파괴하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숨어있던 다른 문명들이 공격자의 좌표를 파악하고, 공격자는 즉시 다음 표적이 된다. 합리적인 공격자라면 이런 상황을 피할 것이다.

어둠의 숲 가설은 모든 문명이 공격적이고, 소통이 불가능하며, 신뢰가 형성될 수 없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지구 생명의 역사는 반대를 보여준다. 경쟁만큼이나 협력이 진화를 이끌었다. 세포들은 협력해 다세포 생물을 만들었고, 개미들은 협력해 초유기체를 형성했으며, 인간들은 협력해 문명을 건설했다.

역설적으로, 만약 어둠의 숲 가설이 옳다면, 먼저 소리 내는 것이 오히려 생존 전략일 수 있다. 자신의 평화적 의도를 먼저 밝히고, 공격자가 치러야 할 노출의 대가를 높이는 것이다. 인류는 이미 이 길을 선택했다. 우리는 노래를 시작했고, 이제 우주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침묵하는 숲에서 살아남는 법은 완벽한 침묵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전략적으로 드러내는 용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