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우리는 별빛만 보는 게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 우주 전체를 채우고 있는 희미한 전자기파가 모든 방향에서 우리를 향해 쏟아진다. 빅뱅의 잔향, 우주배경복사다. 138억 년 전 우주가 처음 투명해졌을 때의 빛이 식어서 지금 그 온도는 섭씨로는 약 영하 270도, 절대온도로는 2.7 켈빈이다.
이 숫자는 우주에 사는 모든 존재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주배경복사는 행성이 가질 수 있는 온도의 최저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항성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이라도 우주배경복사보다 차가워질 수는 없다. 그보다 차가운 곳을 만들려면 인공적으로 냉각해야 한다.
그런데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는 항상 2.7 켈빈이었을까? 아니다. 과거의 우주는 더 뜨거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빅뱅 직후로 가면 수억 켈빈에 달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 우주배경복사가 300 켈빈이었던 시점이 있었을 것이다. 섭씨로 치면 27도. 봄날 오후의 온도다.
우주배경복사가 300 켈빈이었던 시절의 우주는 어땠을까? 별에서 가까운 행성은 더 뜨거웠겠지만, 별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진 행성도 최소한 27도는 유지했을 것이다. 온 우주가 골디락스 존이었던 셈이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어서 생명이 싹틀 수 있는 그런 환경이다.
상상해 보라. 별 하나하나마다 수십 개의 행성이 있고, 그 행성 모두가 생명 가능 온도를 유지하고 있던 시절을. 은하 곳곳에서 생명이 싹텄을 것이다. 단세포 생물이 바다를 채우고, 광합성이 시작되고, 산소가 축적되고,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하고. 온 우주가 초록빛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낭만적인 그림이다. 따뜻하고 생명으로 가득한 우주라니. 그리고 그중 일부는 지능을 획득했을 것이다. 도구를 만들고, 언어를 발명하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문명을 세웠을 것이다. 그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을 것이다. "저 별들 중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을까?" 그들은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전파망원경을 세우고, 메시지를 우주로 발사했을 것이다. "여기 있어요. 우리 여기 있어요."
지적 생명이 탄생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지구의 역사를 봐도 그렇다. 생명이 처음 나타난 건 40억 년 전이지만, 지능을 가진 생명이 나타난 건 불과 수십만 년 전이다. 생명 탄생부터 문명까지 수십억 년이 걸렸다. 그 수십억 년 동안 우주는 계속 식었다. 300 켈빈이었던 우주배경복사는 100 켈빈으로, 50 켈빈으로, 10 켈빈으로 떨어졌다. 지적 생명이 탄생했을 때쯤엔 이미 우주는 차갑게 식어버렸을 것이다.
문명은 열을 만든다. 도시의 불빛, 공장의 연기, 전파 송신 등. 문명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에너지는 열로 변환된다. 그 열은 우주로 방출된다. 하지만 우주가 차가워지면서, 그 열도 함께 식는다. 따뜻했던 우주에서 잉태된 생명이 문명을 일으켰을 때는 우주가 문명의 발전을 돕기라도 하듯이 에너지 사용에 따른 발열을 식혀주었을 것이다.
그러한 문명이 발산한 전자기파는 우주를 가로지르며 우주 팽창과 함께 잡아 늘려진다. 파장이 늘어나고, 에너지가 낮아지고, 결국 검출 불가능한 수준으로 희미해진다. 따뜻한 우주에서 탄생한 문명이 보낸 신호는, 지금 우리가 듣기엔 너무 차갑게 식어버렸다. 마치 오래된 불씨가 재만 남기듯, 그들의 메시지는 우주 잡음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정말 과거의 우주가 그렇게 낭만적이고 생명친화적이었을까?
생명에는 중원소가 필요하다. 탄소, 질소, 산소, 인, 황 등. 이런 원소들은 빅뱅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빅뱅 직후 우주에는 거의 수소와 헬륨밖에 없었다. 중원소는 별의 내부에서 핵융합으로 만들어지고, 별이 폭발하면서 우주로 흩어진다. 1세대 별이 탄생하고, 살다가, 죽고, 그 잔해에서 2세대 별이 탄생하고, 또 죽고.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해야 중원소가 충분히 축적된다. 행성을 만들 만큼, 생명을 만들 만큼.
계산해 보면, 중원소가 생명에 필요한 수준으로 축적되려면 빅뱅 후 최소 수십억 년은 걸렸을 것이다. 정확한 시점은 은하마다 다르겠지만, 대략 30억 년에서 40억 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럼 그때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는 얼마였을까? 우주 나이가 30억 년이었을 때, 우주배경복사는 약 10 켈빈 내외였다. 섭씨로 약 영하 260도인 것이다.
300 켈빈과는 거리가 멀다. 중원소가 충분해졌을 때, 우주는 이미 너무 차가웠다. 따뜻한 우주 시절엔 중원소가 없었고, 중원소가 생겼을 때쯤엔 우주가 식어버렸다. 두 조건이 시간상 겹치지 않는다. 따뜻한 우주는 생명의 요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계산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숫자가 나타났다. 빅뱅 후 30억 년. 중원소가 생명에 필요한 수준으로 축적된 시점. 우주는 이미 식었지만, 별들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항성 주변의 행성들은 별빛으로 따뜻해질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처럼. 태양계의 골디락스 존처럼. 광역적이진 않았지만, 지금처럼 국지적으로는 생명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100억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인류는 우주 탄생 후 138억 년을 기다려야 했다. 태양계가 형성된 게 46억 년 전이고, 지구에 생명이 나타난 게 40억 년 전이고, 문명이 시작된 건 불과 1만 년 전이다. 하지만 만약 다른 곳에서, 빅뱅 후 30억 년 시점에 행성이 형성되고 생명이 시작됐다면? 그들은 100억 년이 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인류보다 100억 년 앞서서.
100억 년. 인류 문명을 백만 번 반복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그들 중 하나는 외로웠을 것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만 있는 건가? 다른 누군가도 있을까?" 그들은 신호를 보냈지만 아무 응답도 없었을 것이다. 우주는 너무 넓고, 그들은 너무 일찍 깨어났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결심했을 것이다. "우리가 찾아가자. 우리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찾으러 가자."
자가복제 탐사선이 발사되었을 것이다. 개념은 간단하다. 우주선을 하나 만든다. 그 우주선은 다른 항성계로 날아간다. 도착하면 그곳의 자원을 이용해서 자기 자신의 복제품을 만든다. 복제품들은 다시 다른 항성계로 날아간다. 기하급수적 증식.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덟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은하 전체를 덮을 수 있다.
동력은? 보이저 탐사선들처럼 천체의 중력을 이용해서 가속하는 스윙바이로 충당했을 것이다. 연료가 많아야 할 필요는 없다. 느리지만 확실하다. 수만 년, 수십만 년 걸리겠지만, 그들에겐 시간이 있었다. 100억 년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것이 가능하다는 증거를 봤다. 2017년 10월, 하와이 할레아칼라 천문대가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성간 공간에서 날아와 태양계를 스쳐 지나가는 천체, 오무아무아. 처음에는 혜성인 줄 알았다. 하지만 혜성 특유의 꼬리가 없었다. 소행성? 하지만 궤도가 이상했다. 태양계 밖에서 왔다가 다시 태양계 밖으로 나가는 궤도였다. 인류가 관측한 최초의 성간 천체였다.
오무아무아의 속도는 초속 약 26킬로미터, 시속 9만 3600킬로 미터다.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는 데 수만 년이 걸리는 속도다. 하지만 그 속도로도 충분하다는 걸 오무아무아가 증명했다. 성간 이동은 느리지만 가능하다.
자가복제 탐사선이 그 속도로 은하를 덮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은하의 지름은 약 10만 광년. 탐사선이 하나의 항성 다음 항성으로 가는 데 평균 1만 년 걸린다고 치자. 각 항성계에서 복제하는 데 1000년 걸린다고 치자. 기하급수적 증식이니까, 프로브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네 개가 되는 데 약 1만 1000년씩 걸린다. 은하에는 별이 약 2000억 개 있다. 탐사선이 은하 전체를 덮는데 수십 세대면 충분하다. 은하의 항성 수를 고려할 때, 소요기간은 50만 년보다 적다.
50만 년. 인류 역사보다 길다. 하지만 100억 년에 비하면 눈 깜짝할 순간이다. 만약 그들이 80억 년 전에 탐사선을 퍼뜨리기 시작했다면, 지금쯤 은하 전체가 탐사선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1977년 8월 15일,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빅이어 전파망원경이 신호를 포착했다. 72초 동안 지속된, 강력한 협대역 전파 신호. 주파수는 1420메가 헤르츠. 중성 수소의 방출선. 우주에서 가장 흔한 주파수인 동시에, 지적 생명체가 의도적으로 선택할 법한 주파수였다. 신호의 강도는 배경 잡음보다 30배 강했다. 너무 강해서, 관측 기록을 검토하던 제리 에만은 프린트 출력물에 빨간 펜으로 "Wow!"라고 썼다. 그래서 그 신호는 WOW 신호로 불린다.
신호의 출처는 궁수자리 방향. 은하 중심부 근처. 같은 방향을 다시 관측했지만 신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신호가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재미로만 생각해 보자. 만약 그것이 폰 노이만 프로브가 보낸 신호였다면? 탐사선이 태양계에 도착했고, 지구에서 전파가 나오는 걸 감지했고, "여기 문명 있음"이라고 본부에 보고한 것이라면? 일회성 신호인 이유는 간단하다. 보고는 한 번만 하면 되니까. "발견했습니다. 좌표는 이러이러합니다. 추가 지시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침묵. 본부는 수백, 수천 광년 떨어져 있을 것이고, 응답이 오려면 수백, 수천 년 걸릴 것이다. 그동안 탐사선은 조용히 지구를 지켜본다.
"외계 문명이 있다면 왜 우리는 그들을 보지 못하는가?" 엔리코 페르미는 1950년에 이러한 질문을 던졌었다. 우주는 너무 넓고, 별은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 길다. 문명이 존재할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숫자가 크면 어딘가엔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는가?
답은 이렇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이미 여기 있다. 탐사선은 수십억 년 전에 퍼져나갔고, 지금 은하 곳곳에서 조용히 관찰 중인 것이다. 그들은 소리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들은 새로운 문명을 만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조용히 기록한다. "또 하나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외롭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할 차례인 것뿐이다. 아니면 그들이 충분히 관찰했다고 판단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우주에는 우리보다 먼저 깨어난 이들이 있었을 수 있다. 그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