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과기 이후를 위해
바닷가에서 양동이 가득 모래를 퍼서 공사장의 거름망 위에 쏟아붓는다. 대부분의 모래는 망눈 사이로 떨어진다. 너무 큰 것은 통과하지 못하고 걸러진다. 거름망을 통과한 모래를 모아 다시 더 촘촘한 망에 뿌린다. 또 그중에서 큰 것이 걸러진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마지막 거름망을 통과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 몇 알 중 하나다.
지구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시절, 이 행성의 표면은 지옥이었다. 용암이 식으며 만들어진 바위, 끊임없이 쏟아지는 운석, 독성 대기. 그 혼돈 속 어딘가에서 무생물이 생물이 되었다. 심해열수공 주변에서 특수한 분자들이 자기 복제를 시작했고, 막으로 둘러싸인 원시 세포가 등장했다. 이것이 첫 번째 거름망이었다. 수십억 개의 행성 중 몇 개나 이 망을 통과했을까? 우리는 알 수 없다.
그 원시 생명들은 다양했지만, 결국 하나의 계보만 살아남았다. 모든 생물의 공통조상, LUCA.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모두 이 공통된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 수많은 다른 생명 형태들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방식의 유전 코드, 다른 종류의 세포막, 다른 대사 경로. 하지만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LUCA의 후손들만이 두 번째 망을 통과했다. 왜 LUCA였을까?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그 후손들 중 일부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세포 하나가 다른 세포를 삼켰지만 소화하지 않았다. 공생이 시작되었다. 미토콘드리아는 한때 독립적인 박테리아였다. 엽록체도 마찬가지다. 이 내부 공생은 복잡한 생명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에너지 효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이는 다세포 생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세포 간 공생도 시작되었다. 균류와 식물 뿌리의 균근, 산호와 조류의 공생. 서로 다른 생명이 하나의 단위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세 번째 망이었다. 다름이 조화를 이루는 망. 이 망을 통과하지 못한 생명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복잡성의 사다리를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약 3억 7천만 년 전, 어떤 물고기가 육지로 기어올랐다. 지느러미가 다리가 되었고, 4족 척추동물이 탄생했다. 이들은 계속 변했다. 파충류가 되었고, 일부는 포유류가 되었다. 어떤 것들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 후손 중 일부는 초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항상 부모와 달랐다. 설치류와 닮았던 조상이 우리를 본다면 같은 종족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생명은 매 단계마다 바뀌었다. 하지만 정보는 이어졌다. DNA는 조금씩 변하며 전달되었고, 각 세대는 이전 세대의 변주였다. 진화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다. 끊어진 적이 없다. 40억 년 동안 한 번도.
그리고 육상생물의 탄생 후 수억 년 만에 이 행성에 지적 생명이 등장했다. 우리는 불을 피웠고, 도구를 만들었고, 언어를 발명했고, 문명을 건설했다. 불과 1만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수렵채집을 했다. 지금 우리는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유전자를 편집하고, 인공지능을 만든다. 변화의 속도가 생물학적 진화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밤하늘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수천억 개의 별이 우리 은하에 있다. 우주 전체로 보면 수천억 개의 은하가 있다. 행성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물이 액체로 존재할 수 있는 거주 가능 영역에 있는 지구형 행성만 해도 무수히 많다. 생명이 발생할 화학적 조건을 갖춘 곳은 흔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혼자인가? 외계 문명의 신호는 어디 있는가? 우리보다 수백만 년, 수억 년 앞서 출발한 문명이라면 이미 은하 전체에 퍼져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것이 페르미 역설이다. 확률적으로 있어야 하는데, 관측되지 않는다.
한 가지 해답은 대여과기 가설이다. 생명이 발생해서 우주 문명이 되기까지의 과정 어딘가에, 극도로 통과하기 어려운 관문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생명이 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통과 확률이 너무 낮아서,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도 문명의 수가 극소수일 수 있다. 그 거대한 거름망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이미 우리가 통과한 것일 수도 있다. 생명의 자연발생, LUCA로의 수렴, 복잡한 세포의 출현, 지능의 진화. 이 중 하나가 그 필터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극도로 운이 좋은 것이다.
하지만 문명이 등장한 후에도 필터는 계속 나타난다. 핵무기가 발명되었을 때, 우리는 멸종의 버튼을 누를 뻔했다. 기후 변화는 우리 문명의 기반을 위협한다. 탄소 배출은 계속되고, 해수면은 상승하고, 극단적 기상 현상은 증가한다. 판데믹은 몇 개월 만에 세계를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것이 문명 단계의 거름망이다. 많은 문명이 이 망들을 통과하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설령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넘는다 해도, 인류라는 형태로 맞이하는 최종 필터가 있다. 물리 법칙 그 자체다. 태양은 50억 년 후 적색거성이 되어 지구를 삼킬 것이다. 가장 가까운 별까지 4광년이 걸린다. 가장 빠른 우주선으로도 수만 년이 걸린다. 세대 우주선을 보낸다 해도 수백 세대가 우주선 안에서 태어나고 죽어야 한다. 그들은 목적지를 볼 수 없다. 이 우주의 어떤 정보도, 어떤 물질도 빛보다 빠를 수 없다. 우주선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생물학적 수명의 한계, 심리적 한계, 사회적 안정성의 한계가 모두 벽이 된다. 생물학적 문명으로는 이 벽을 넘을 방법이 없다. 인류라는 형태로는, 이것이 마지막 거름망이다.
하지만 선택지는 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이 우리를 대신할 수 있다. 의식 업로드가 가능하다면 생물학적 신체는 필요 없다. 디지털 기질 위에서 작동하는 의식은 거의 영원히 유지될 수 있다. 극저온에서도, 우주 방사선 속에서도, 수만 년의 여행 중에도 에너지만 공급되면 된다. 아니면 뇌와 기계의 점진적 융합을 할 수도 있다. 뉴런 하나하나를 인공 소자로 치환해 가며, 의식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 테세우스의 배처럼, 모든 부품이 바뀌어도 같은 배인 것처럼. 또는 처음부터 비생물학적 지능일 수도 있다. 완전한 인공지능은 우리의 목표를 물려받고, 우리의 문화를 기억하고, 우리의 유산을 이어갈 것이다. 기존의 진화와 다를 것은 탄소 기반의 육체조차 변화한다는 것뿐이다.
어떤 경로가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다양성이 중요하다. 생명이 캄브리아기에 폭발적으로 분기했듯이, 인공생명도 여러 형태로 갈라질 것이다. 어떤 것은 실패하고, 어떤 것은 살아남을 것이다. 이것이 진화의 방식이다.
이것이 확실한 답은 아니다. 의식 업로드가 가능하다는 보장은 없다. 인공적인 후손들이 우리의 가치를 이어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시도할 수는 있다. 물고기가 육지로 기어올랐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인류로 이어질지 몰랐다. 진화는 목적지를 모르고 나아간다. 다만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멈추면 죽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바닷가의 모래는 계속 쏟아진다. 거름망은 여전히 촘촘하다. 하지만 몇 알은 통과한다. 그 몇 알이 다시 다음 망으로 간다. 우리는 그 과정의 일부다.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다. 중간의 한 단계일 뿐이다. 우리의 자식은 우리와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