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늑대를 개로 만드는가

by 헤론 베누

버들솔새는 히말라야 산맥을 중심으로 거대한 고리를 이룬다. 히말라야 남부에서 시작된 버들솔새 집단은 동서로 나뉘어 이동하며 서서히 변화한다. 빙 돌아서 다시 히말라야 북부에 도달할 즈음이면 동쪽 집단과 서쪽 집단은 조금씩 달라진다. 히말라야 북부에서 만난 이 두 집단은 서로를 같은 종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외형적 차이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다. 문제는 노래다. 산맥을 우회하는 동안 축적된 변화들이 결국 두 집단의 노래에 큰 차이를 만들어, 서로 구애하는 노래가 달라졌다. 서로를 짝짓기 대상으로 여기지 않게 되어버려 생식적 격리까지 이어진 것이다. 인접한 집단끼리는 여전히 교배가 가능하지만, 고리의 양 끝은 이미 다른 종이 되어버렸다. 생물학자들은 이것을 고리종이라 부른다. 종분화가 공간적으로 펼쳐진 결과, 하나의 종이 연속적으로 변화하다가 결국 스스로와 만나지 못하게 되는 현상.

하나의 집단이 지리적으로 흩어지고, 각 지역의 환경에 적응하며 조금씩 달라진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더 이상 교배할 수 없을 만큼 멀어진다. 그리고 중간의 개체군이 사라지면 양끝의 집단은 완전히 분리된다. 이것이 진화를 통한 일반적인 종분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종이 하나의 조상 집단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어느 특정 지역, 어느 특정 시점에 존재했던 개체군이 확산되며 새로운 종으로 분화한다. 인류도 예외가 아니다.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출현했다.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는 모든 현생인류가 하나의 작은 집단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약 7만 년 전 소규모 집단이 아프리카를 벗어났고, 그들은 중동을 거쳐 유럽과 아시아로, 오세아니아로,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까지 도달했다. 각 지역에서 인류는 피부색, 체형, 얼굴 형태가 조금씩 달라졌다. 북유럽 사람들은 햇빛이 적은 환경에서 비타민 D 합성을 위해 밝은 피부를 얻었고, 티베트 고산 지대 사람들은 저산소 환경에 적응하는 유전자 변이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하나의 종이다. 어떤 지역 집단끼리도 교배가 가능하고, 유전적으로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한때 '다지역 기원설'이라는 가설이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이 각 대륙에서 독립적으로 현생인류로 진화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유전학적 증거는 이를 반박한다. 인류는 단일 지역에서 기원했고,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개 역시 전 세계에 분포한다. 아프리카의 바센지, 중동의 살루키, 시베리아의 허스키, 한반도의 진돗개. 모두 서로 교배가 가능한, 유전적으로 같은 종이다. 그런데 개의 기원을 추적하면 인류와는 다른 패턴이 나타난다. 개는 지금은 멸종한 어떤 고대의 늑대로부터 가축화되었다. 이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전학적 분석은 모든 개가 동부 유라시아에 있던 구석기 늑대의 후손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전에는 대륙 각지에서 독립적으로 늑대에서 개로 진화했다는 견해가 많았다. 하지만 2022년에 학계에 발표된 바에 따르면, 개 역시 하나의 공통조상을 가졌다.

늑대의 가축화는 대략 15000년에서 40000년 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시점은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늑대 무리 중 일부는 언제부터인가 인간 거주지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버린 음식 찌꺼기, 사냥 후 남은 부산물 같은 쉬운 먹이를 노린 것이다. 처음에는 경계를 유지했겠지만, 세대를 거듭하면서 인간에 대한 공포가 적은 개체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인간 쪽에서도 자연스럽게 선택을 수행했다. 가까이 다가오면서도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예측 불가능한 늑대는 배제되었고, 온순하고 협력적인 개체들이 살아남았다. 처음에는 개별적인 길들임이 이루어졌다. 지금도 몽골에서 새끼 늑대를 잡아와 얼마간 키우는 것처럼. 그리고 이 과정이 수천 년 반복되면서 늑대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번식을 했고, 개가 되었다.

그런데 개를 보면 조금 이상하다. 시베리아의 개들은 시베리아 늑대와 유전적으로 가깝고, 중동의 개들은 중동 늑대와 가깝다. 동아시아 개들은 또 다른 늑대 계통과 연결된다. 마치 개가 여러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가축화된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개와 늑대의 관계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는 푸들이나 포메라니안을 보고 늑대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는 생물학적으로 여전히 늑대다. 개와 늑대의 유전적 차이는 극히 미미하다. 치와와와 캉갈, 말티즈와 세인트버나드는 외형상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유전자 수준에서는 모두 늑대와 99퍼센트 이상 동일하다. 개를 독립적인 아종 카니스 루푸스 파밀리아리스로 분류하는 것은 사실 관습에 가깝다. 엄밀히 말하면 개는 유전자만 봤을 땐 늑대의 아종조차 아니다. 가축화된 늑대, 늑대의 품종 중 하나, 인간이 선택한 늑대가 바로 개다.

개들은 인류의 이동과 함께했다. 인류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교역로가 생겼고, 이주가 일어났고, 정복과 식민이 벌어졌다. 그리고 인간이 이동할 때마다 개도 함께 이동했다. 실크로드를 따라 중동의 개가 동아시아로 갔고, 몽골 제국의 확장과 함께 중앙아시아의 개가 유럽으로 갔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하면서 유럽의 개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의 개들은 각 지역의 늑대와 교잡되었고 그 후손이 다시 개들 사이에 들어오면서, 유전자 일부가 개라는 집단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유전자들은 다른 지역의 개들에게도 끊임없이 섞여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지역적 특색을 가진 개 집단들은 다시 섞이며 하나의 종으로 유지되었다. 버들솔새가 히말라야 산맥을 돌며 고리를 이룬 것처럼, 개는 인간의 이동을 따라 전 지구적 고리를 이루었다. 하지만 버들솔새와 달리 개의 고리는 끊임없이 교류하며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얼핏 보기엔 인류와 마찬가지로 보일 수 있다. 인류 역시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유럽과 아시아에서 네안데르탈인 같은 근연종과 섞여 그들의 유전자 일부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것은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된 이후에 이루어진 일이다. 우리는 조상과 구분되는 종이다.

하지만 개는 앞서 말했듯이 여전히 늑대와 같은 종이다. 개라는 이름을 잠시 빼놓고 보면, 결국 동부 유라시아에 있던 한 집단의 늑대가 전 세계로 이동하며 다른 늑대들과 교배한 것에 불과한 셈이다. 유전학적 계통은 우리가 이 생물을 늑대가 아니라 개라고 부를 이유로 타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모든 교류와 혼합 속에서 '개'를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개를 개로 만드는 것, 모든 지역의 개가 공유하는 핵심은 인간에 대한 태도다.

개는 인간을 사랑한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생물학적 사실이다. 개는 인간의 눈을 바라보며 옥시토신을 분비한다. 인간 역시 개의 눈을 보면 같은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것은 인간의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생화학적 반응이다. 늑대는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어릴 때부터 인간이 키워도 늑대는 인간의 눈을 피한다. 개만이 인간과 눈을 맞추고, 인간의 감정을 읽고, 인간의 지시를 이해하려 애쓴다.

이 형질이야말로 모든 개의 공통분모다. 인간 곁에 남은 늑대들은 인간과 협력할 수 있는 개체들이었다.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의 신호를 읽고, 인간과 감정적 유대를 형성할 수 있는 늑대들. 그들이 개가 되었다. 다양한 특성들은 각 환경에서 추가로 얻어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사랑하는 형질'은 모든 개가 공유하는 근본적인 특징이다. 이것이 없다면 그것은 개가 아니라 그냥 늑대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늑대라는 종의 특이성과 인간이라는 종의 특이성이 겹쳤기 때문이다. 늑대는 이미 고도로 사회적인 동물이다. 무리를 짓고, 서열을 인식하며, 협력해서 사냥한다. 이 사회성은 인간을 무리의 일원으로 인식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했다. 그리고 늑대는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인간의 신호를 읽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다른 동물들보다 월등히 높다. 한편 인간은 다른 어떤 종보다 광범위하고 빠르게 이동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불과 몇만 년 만에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모든 대륙으로 퍼졌다. 그리고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개와 인간 사이에는 다른 가축과는 다른 종류의 유대가 형성되었다. 소나 양은 인간에게 고기와 우유를 제공한다. 인간은 그들을 먹이로 본다. 하지만 개는 다르다. 물론 일부 문화권에서는 개를 식용했지만, 사실 개는 먹이에 비해 고기를 얻기에 적합하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개는 동료였다. 사냥을 도왔고, 집을 지켰으며, 무엇보다 감정적 유대를 제공했다. 개는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은 개를 사랑한다. 이것은 상호적 관계다. 진딧물은 개미에게 단물을 제공하지만 개미를 사랑하지 않는다. 쇠똥구리는 소의 배설물을 먹지만 소와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는 인간을 사랑한다. 주인이 집에 돌아오면 꼬리를 흔들고, 주인이 슬퍼하면 함께 슬퍼한다. 이것은 본능적 반응이지만, 동시에 진짜 감정이기도 하다. 수만 년의 공진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이 모든 조건들이 한 지점에서 만났다. 늑대의 사회성과 학습 능력. 인간의 전지구적 이동성과 의도적 선택압. 그리고 무엇보다 두 종 사이에 형성된 상호 감정적 유대. 이것은 생물 진화사에서 유례없는 특이점이다. 다른 어떤 종도 이런 방식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고양이도 가축화되었지만 고양이는 여전히 고고한 귀족처럼 독립적이며, 인간과의 관계는 개만큼 깊지 않다. 개만이 인간의 이동을 따라 전 세계로 퍼지며, 끊임없이 교류하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인간을 사랑하는 형질'을 핵심으로 하여 하나의 생물로 수렴했다. 개는 늑대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동반자다. 생물학적으로는 카니스 루푸스이지만, 문화적으로는 호모 사피엔스의 그림자다. 인간이 가는 곳마다 개가 있었고, 개가 있는 곳마다 인간이 있었다.

이 공진화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개는 인간의 눈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고, 인간은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