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역사 스토리텔러가 어느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독특한 설을 소개한 적이 있다. 삼국사기에 온달이 "파리하다"라고 적혀 있는데, 이건 창백한 피부를 의미하는 거고, 그것은 온달이 백인이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구당서를 보면 사마르칸트의 왕족이 온씨였다는 기록이 있고, 한국의 온씨 시조가 온달이라는 점까지 연결하면, 온달은 중앙아시아 출신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는 고구려와 돌궐의 전쟁 때 튀르크인 포로 천 명이 고구려로 끌려왔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시기상 온달은 그 1, 2세대 후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꽤 끌리는 이야기다.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에 서역인들이 들어왔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그렇다면 고구려에도 서역인이 들어왔다는 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이 가설이 중앙아시아 학회에서도 주목받았다는 말까지 덧붙여지면 뭔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이런 해석은 고구려가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나라였다는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도 좋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 이야기에, 이국적인 출신이라는 요소가 더해지면 서사가 훨씬 풍성해지지 않는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하다. 일단 삼국사기를 직접 찾아봤다. 온달 관련 기록에는 "파리하다"라는 표현이 없다. 대신 "용모용종가소(容貌龍鐘可笑)"라는 표현이 있다. 생긴 게 용종해서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용종(龍鐘)이라는 한자를 번역하자면 "파리하다"로 옮길 수도 있긴 하다. 쇠약한 모습을 뜻하는 말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파리하다"라는 말은 몸이 마르고 핏기가 없는 쇠약함을 의미하는 말이지, 그것이 곧 피부가 창백하다는 의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저 단어들의 핵심은 건강하지 않은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백인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파리하다"를 단순히 "창백한 피부"로 해석하고, 다시 "창백한 피부"를 "백인의 외모"로 연결한다. 이것은 2중 비약이다. 첫 번째 비약은 "파리하다"를 "창백하다"로 읽는 것이고, 두 번째 비약은 "창백하다"를 "백인"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대중들이 한자로 된 원문을 굳이 찾아보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악용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온달이 파리했던 건 인종적 특징이 아니라 경제적 상태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온달은 가난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봉양하며 구걸하고 돌아다니느라 유명해질 정도였다.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이 파리해 보이는 건 당연하다.
사마르칸트 왕족이 온씨였다는 구당서 기록도 마찬가지다. 구당서에 그런 기록이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그 온씨와 한국의 온씨를 직접 연결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성씨가 같다고 해서 같은 혈통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당장 가까운 한국과 중국에도 같은 성을 쓰지만 시조가 다른 경우는 흔하다. 조선왕조가 이(李)씨라고 해서 본명이 이(李)씨인 중국 사상가 노자의 후손이라고 하지는 않지 않은가? 게다가 봉성 온씨가 온달을 시조로 둔다는 것 또한 후대에 차용했을 뿐, 사실 온달이 온씨 성의 달이라는 이름이었다는 근거도 없다. 애초에 하층민인 온달은 성씨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중앙아시아 학회에서 주목받았다"라는 말도 애매하다. 주목받았다는 것과 학계에서 정설 내지는 설득력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졌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런 독특한 주장도 있다"라는 식의 주목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학회에서 주목"이라는 표현 자체가 권위를 차용하는 효과를 낸다. 실제로 어떤 맥락에서 주목받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는데, "학회"라는 단어만으로 신뢰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결국 이 가설은 근거가 없다. "파리하다"라는 말은 삼국사기 원문에 없고, 설령 "용종"을 그렇게 번역한다 해도 백인으로 연결되는 건 비약이며, 사마르칸트 온씨와 한국 온씨의 연결도 증명되지 않았고, 학회 주목의 실체도 모호하다. 그럼에도 이 가설이 퍼진 이유는 명확하다.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온달은 평범한 고구려 빈민이었다"보다 "온달은 사실 서역 출신이었다"가 훨씬 흥미롭게 들린다. 클릭을 유도하고, 화제를 만들고, 역사에 대한 관심을 끌기에 좋은 소재다. 하지만 그게 다다. 흥미는 있지만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실제 온달 이야기는 어떨까. 삼국사기를 다시 읽어보자. 이번엔 온달이 아니라 평강공주를 중심에 놓고 읽어보는 것이다.
평강공주가 어렸을 때, 그녀의 아버지인 평원왕은 "그렇게 울면 온달한테 시집보낸다."라는 식으로 겁을 주곤 했다. 온달은 당시 평양에서 바보로 유명한 사람이었으니, 이건 일종의 협박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평강공주는 온달을 혐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진심으로 혐오했다면 나중에 온달을 선택지로 꺼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최소한 중립 이상의 태도였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평강공주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평원왕은 유력 가문인 상부(上部)의 고씨 집안에 공주를 시집보내려 했다. 하지만 평강공주는 극구 거부했다. 왜 거부했는지는 삼국사기에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남편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시집 분위기가 별로였는지, 아니면 정치적 도구가 되기 싫었는지. 이유야 어쨌든, 평강공주는 거부했다. 그리고 여기서 재미있는 지점이 나온다. 공주는 어릴 때 들었던 그 겁주기를 거꾸로 이용한다. "온달한테 보낸다고 했잖아요. 고씨 집안에 갈 바에야 차라리 온달한테 갈래요."
평강공주는 아버지가 했던 말을 무기로 삼은 것이다. "네가 말 안 들으면 온달한테 보낸다."라는 협박을 "그럼 진짜 온달한테 보내주세요."라는 요구로 뒤집어버렸다. 평원왕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된 거부에 결국 짜증이 폭발해서 "네 멋대로 해라!"라는 식으로 화를 내버렸고, 평강공주는 오기에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패물을 싸들고 궁궐을 나와 온달의 집으로 향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삼국사기에는 왕이 엄중하게 훈계하며 의절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행간을 읽어보면 이건 전형적인 "부녀간 전쟁"이다. 아버지가 던진 농담을 약점 잡아 자기 갈 길 가겠다는 딸과, 뒷목 잡으며 "네 마음대로 해!"라고 소리 지르는 아버지의 모습. 이 인간적인 짜증이야말로 백인설 같은 허구보다 훨씬 생생한 역사의 맨얼굴이다.
온달의 집에 도착한 평강공주는 당장 자기가 지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걸 봤을 것이다. 그래서 패물을 팔아 집을 고치고, 쌀을 사고, 생활을 개선했다. 그러자 온달의 외모가 달라졌다. 영양실조에서 벗어나니 "꽤 그럴듯해진" 것이다. 이제 구걸할 필요도 없어졌고, 몸도 괜찮아졌다. 평강공주는 온달에게 공부를 시키고 무술을 익히게 했다. 거창한 목표가 있던 게 아니라, 놀고 있을 바에야 뭐라도 배우라는 것이다. 온달은 글을 읽고, 몸을 단련했다. 그리고 사냥 대회에 나가 왕의 눈에 들 정도의 활약을 했고, 후주(後周)와의 전쟁이 터졌을 때 온달은 전장에 나가 공을 세웠다.
이 정도면 충분히 흥미로우면서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가 아닐까? 부녀간 전쟁 스토리는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충분히 가능한 정황이다. 평강공주가 가출한 이후의 행동을 봐도 모든 선택에 동기가 있고, 모든 변화에 과정이 있다.
반면 "온달은 백인이었다"는 가설은 뭘 설명하는가? 온달의 외모만 설명할 뿐이다. 그래서 뭐가 바뀌는가? 백인이면 자동으로 공주와 결혼하고 영웅이 되는가?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가? "서역 출신"이라는 설정은 그저 이국적인 판타지 요소일 뿐이다.
역사를 대중화하고 더 많은 사람이 역사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취지는 공감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억지 해석일 필요는 없다. 삼국사기를 제대로 읽고, 인물들의 동기를 추론하고, 인과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