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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Oct 12. 2022

그 밤의 응원가

 끽 -

 반사적으로 내 오른발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휘청 - 

 생각할 겨를 없이 내 손은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다. 이어서 들리는 빵빵- 경적소리에 잠시 이성을 잃었다. 

 

 나는 정상 속도로 이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검은 물체가 튀어나왔고 내 몸은 본능적으로 보호 모드에 들어간 것이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차라도 있었다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뭔가를 친 것 같지는 않았다. ‘큰 사고는 아니구나.’ 싶은 마음이 들자,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내가 본 검은 물체는 무엇이었을까. 저만치 앞에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만취한 한 남자가 도로와 인도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걷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는 관심도 없어 보이는 그 사람에게 순간 화가 났다. 하지만 휘청거리는 그의 뒷모습은 이내 짠한 마음이 들게 했다. 

 ‘당신은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 그렇게 휘청거리고 있습니까?’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는 답답한 가슴을 막힌 배수관 청소하듯 술로 뚫어보려 한 것일까. 이것저것 생각이 복잡해지는 뇌를 잠깐 마비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이유야 어쨌든 뒷일 생각 안 하고 알코올에 자신을 맡겨버린 그 사람에게 '당신만 힘든 세상 사느냐?'며 따지기라도 하듯 내 뒤에서 경적이 울리고 전조등이 번쩍였다. 나는 왜 그 순간 그 사람을 보호해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줄였다.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 주행했다. 빨리 길을 비키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도 얼마 가지 않아 만취한 그가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짧은 안도감이 지난 후 밀려든 겸연쩍음. 나는 경적을 두 번 울렸다. 빵빵! 내 멋대로 도로의 흐름을 막아버린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곤 달아날 생각이었다.


 빵빵! 빵빵! 빵빵!

 경적소리가 까만 밤하늘을 메웠다. 용기를 내어 뒷거울로 상황을 살폈다. 내 뒤로 길게 이어진 자동차들이 비상등을 깜박이고 있었다. 잔뜩 주눅이 들었던 나는 울컥했다. 그 빛과 소리는 분명히 비난의 아우성이 아니었다. 어쩌면 응원의 세리머니 아니었을까.  빵빵-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어깨에도 짐이 있다오. 그 짐 때문에 가끔은 나도 휘청인다오. 그땐 나도 좀 봐주오. 그렇게 서로 응원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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