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버린것은

“이별의 반대편에서”

by 미라니

밤이 깊었다.

창문 밖에서는 조용히 빗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낮에 그쳤던 비가, 마치 무언가를 닦아내듯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진이는 카페를 떠난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를 잊지 못했다.

커피 향이, 은이의 말이, 그리고 자신이 내뱉은 마지막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아이를 데리러 가야겠네요.”


그 말이 왜 그렇게 오래 남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 아이는 단지 어린 시절의 ‘나’가 아니라,

내가 외면했던 그날의 누군가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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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천천히 낡은 상자를 꺼냈다.

이사할 때마다 버리지 못했던, 작은 철제 상자.

그 안에는 오래된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글씨는 삐뚤빼뚤하고, 군데군데 잉크가 번져 있었다.

“진이야, 내가 없을 때도 울지 마.

언젠가 꼭 돌아올게.

네가 좋아하는 인형은 곰돌이 옆에 두었어.

나중에 보면 꼭 안아줘.”




편지를 쓴 사람은 오빠였다.

진이가 여덟 살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오빠.

그날, 진이는 비를 맞으며 집을 나섰다.

그 목소리를 따라, 오빠를 찾으러.

그날 이후 진이는 기억을 지워버렸다.

아니, 버렸다.

오빠의 마지막 모습도, 그날의 냄새도, 그 모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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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조용히 떨어졌다.

손끝이 떨렸다.

편지를 다시 접으려다, 진이는 멈췄다.

“나, 그때 너무 어려서 몰랐어.”

진이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게 네가 떠나는 인사였다는 걸.

그래서 나… 그 인형도 버렸어.”


그제야 깨달았다.

진이가 버리려 했던 건 ‘기억’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걸.

그날 이후, 진이는 슬픔이 닿을까 두려워

모든 ‘사람’을 밀어냈다.

그 기억은 그렇게 자라, 마음의 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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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진이는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빗방울이 손등에 닿았다.

차갑지만, 따뜻했다.


“오빠, 이제 괜찮아.”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맑았다.

“이제는… 정말 안녕이야.”


그 말과 함께 진이는 상자를 닫았다.

그리고 한참을 바라보다, 천천히 창가에 올려두었다.

어딘가로 흘러가듯,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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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카페 문을 열자 은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진이 씨 얼굴이 한결 가벼워 보이네요.”


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억을 버리고 왔어요.”


은이는 커피를 내리며 조용히 웃었다.

“그래요. 때로는 버림이 아니라, 돌려보내는 일이죠.”


진이는 커피잔을 감싸쥐었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으로 번졌다.

그리고 문득, 그날의 목소리가 귓가에 다시 들렸다.

괜찮아, 금방 지나갈 거야.


이번엔 그 목소리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진이는 창가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이제야 진짜로… 그날의 나를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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