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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씨 Writer C Oct 20. 2022

28살 청년이 공사현장에서 배운 인생의 법칙 10가지

3. 죄송하다는 말은 정말 죄송할 때만 써라

 성인이 된 후 다른 많은 친구들처럼 나도 다양한 곳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 특히 나는 다른 곳보다도 대기업 계열사에서 서비스직으로 긴 시간 일을 했었다. 이때 생긴 버릇 중 하나가 '죄송하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 것이다. 일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기업에서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매뉴얼이다. 그것이 비록 손님의 부주의에서 비롯된 일이라도 말이다. 그곳에서 일을 할 때는 손님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나를 굽히는 것이 '기술'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서비스를 위해 내 불편한 감정은 잠시 내려놓고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프로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장을 갖고 일을 하면서, 이 기술이 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죄송하다는 말은 정말 죄송할 때만 써라

이 말은 내가 한참 아파트 공사현장에 파견되었을 때 직장 상사가 해주신 말이다. 대부분 현장에서 조경은 거의 마지막에 투입되기 마련이고, 많은 업체들이 코 앞에 닥친 마감까지 정신없이 달려가기 때문에 모두가 예민한 상태다. 아파트 현장은 특히 다른 업체의 상황이 내 공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동업자 마인드와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아파트 입구에 아스팔트를 새로 깔아버리면, 그날 하루는 차가 밟으면 안 된다. 서로 사전에 조율이 되지 않는다면, 물건을 받아야 하는데 차가 못 들어오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 당시에 우리는 석가산을 대체하는 실험적인 상품을 처음으로 시도하는 중이었고, 이 말인즉 안 그래도 변수가 많은 현장에서 우리 공사가 지연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뜻이다. 우리 공사가 끝나야 마무리 공사를 할 수 있는 다른 업체 입장에서는 달가운 일이 아니었고, 지속적인 마찰이 있었다. 게다가 명목상 현장 책임자는 나였지만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무적인 부분은 대표님이 맡아주시고 계셨다. 그러니까 나는 결정권이 없는 현장 책임자라는 희한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외부에 계신 대표님께 상황을 전달드리고 오더를 받기 위해 시간을 끄는 역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나는 죄송하다는 말과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이때 직장 상사가 해주셨던 말이다.


 나는 이 말이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그렇게 낭만적인 동물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모든 관계는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기보다는 수직적인 관계를 지향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러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직업들도 그렇겠지만 현장에서 업무적으로 만난 다른 업체 담당자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 겨루기가 있는 것이다. 발주처와 도급업체의 경우는 갑-을 관계가 태생부터 존재하지만, 도급업체들 사이의 관계는 다르다. 특히나 거의 모든 책임자들이 최소 과장, 차장급인 곳에서 나이와 경험이 모두 부족한 나는, 맹수가 득실거리는 아프리카 초원에 뚝 떨어진 어린양에 불과했다. 모두가 본인에 유리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하지, 상대가 어리다고 배려해주는 경우는 당연히 없다.


물론, 그때는 죄송함을 연발하며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어린양이 살아남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바짝 엎드려서, '나를 압박해봤자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소' 외친 것이다. 배려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나를 잡아봤자 이득 되는 게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다만, 이때의 경험으로 내가 배운 것은 '죄송하다'는 말은 업무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죄송하다'는 말만큼 무책임한 말이 없다. 어떻게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천명하는 말이다. 문제로부터 도피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마법의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프로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무언가를 요구할 때, 안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면 된다.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죄송할 이유가 없다. 실수를 저질렀을 때는 미안함을 전달하고 빠르게 대책을 논의하면 된다. 굳이 나를 낮춰서 죄송할 필요까지는 없다. 연약함을 드러내서 살아남는 것도 신입일 때뿐이다. 정말 프로로서 나아가고 싶다면, '죄송'이라는 단어 뒤에 숨으면 안 된다. 만약 내가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남들이 해주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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