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사람관계에 대한 고찰
요새 브런치에 글을 뜸하게 썼다. 원래는 친한 선배와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올리기로 했는데, 그가 이탈하는 바람에 내 의지가 무너졌다. 맞다. 핑계다. 반응이 빠른 인스타그램과 달리 뜨문뜨문 반응이 오는 바람에 브런치를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걸 보면 글을 쓰고 싶은 사람보다 관심이 고픈 사람이 아닌 지 의심스러워 진다.
우리술을 취재하고, 그리고 술스타그램을 하면서 내 인생은 꽤 달라졌다. 예전엔 술이 인간관계를 좌우한다는 말을 크게 믿지 않았다. 한편으론 술의 힘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악습이고 적폐라고 생각했다. 나는 술에 관해선 대단한 약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일부는 그런 지점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술을 음식과 문화로 받아들이자, 내가 이제까지 친해질 수 없었던 술꾼들과 접점이 생겼다.
얼마 전 7년 만에 언론사에서 인턴할 때 만났던 친구들을 만났다. 재밌게도 우리는 각자 기자, PD, 아나운서가 골고루 돼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술을 마시는데 나는 이 친구들이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됐다. 그러고나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그렇듯, 약간은 머쓱하고 낯선 분위기가 눈 녹듯 사라졌다. 술 이야기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날 모임도 원래는 내 술스타그램을 보고 친구가 연락해 만난 자리였다. PD인 이 친구는 자신이 술을 매우 좋아한다고 고백하며 술스타그램 초기 팬들만 알법한 내용을 술술 풀어 놓았다. 오, 벽이 하나 사라진 기분이었다.
내 주변엔 이상하게도 유난히 술꾼이 많다. 술찌에겐 서러운 일이지만, 술꾼도 그 나름의 세계가 있다. 밤새 술을 마시는 것, 제한 없이 술을 마시는 것, 어떤 주사도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 등등. 감히 술찌는 침범할 수 없는 술꾼들만의 세계. 술을 알고 나선 그런 세계에 발을 한 발 딛은 듯한 기분이다. 술 관련 행사에 친구들과 함께 가서 즐긴다거나, 친구들은 술을 마시고 나는 소주에 사이다를 타먹으면서 술자리를 즐겨본다거나, 내가 먼저 소주 땡긴다고 마시러 가자고 말해본다거나 이제까지 인간관계에선 해본 적 없는 일들을 요새들어 하고 있다.
그중 가장 재미 있는 건, 다양하고 새로운 술을 친구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특히 전통주에 관한 지식이 생기니친구들에게 할 말이 많다. 아무리 술꾼들이라도 많은 술을 한꺼번에 접해보긴 힘든 일이다. 그 친구들에게 '썰'을 풀며 소개해주면 모두 아이처럼 기뻐하는 게 재미있고 즐겁다.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보려고 일부러 홈파티도 연다. 같이 정신없이 취하다가도 마지막엔 내 얼굴만 빨개져 있는 게 불공평하게 느껴지지만, 재밌다. 지난 번엔 친구 집들이날 술을 9종을 박스에 담아서 가져갔더니 술을 좋아하는 친구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친구도 신기해하며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꼭 술 강연 한 번 해보라고 추천을 해줬다.
술꾼들은 아마 술찌의 발악이, 술찌와 함께 하는 술자리가 밍숭맹숭할지도 모른다. 아우토반을 달리던 자동차를 데려다 놓고 국도 달리라고 하면 갑갑해서 어디 제대로 주행하겠는가. 그래도 노력형 술꾼(?)은 오늘도 재능형 술꾼들과 어울려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