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편지

by 다미


“최근에 그린 그림은 작업실 바닥의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해도 색감이 죽지 않는다. 그림을 벽돌처럼 짙은 빨간색 바닥에 두고 본 적이 있는데, 그림의 색이 바래거나 창백하게 보이지 않았다. 1888. 6. 12. ~ 13.”

- 빈센트 반 고흐 지음 / 신성림 번역, 《반고흐, 영혼의 편지》, 예담, 179p




고흐는 죽었다. 죽고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정이 남아 있다. 세상에 고흐의 감정이 물결처럼 남아서 노오란 해바라기처럼 피었다. 흐드러지게 피었다.


고흐의 삶은 정적이다. 내면은 파동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고, 그저 밀실에 갇힌 예술가였다. 그런 고흐는 테오에 의지해 삶을 꾸렸다. 테오는 고흐의 동생이자 생활비를 부친 후원자이기도 하다.


안타깝지만 동시에 예술가로서 태동하는 시기를 살았다. 물론 그 시기가 인생의 말미까지 끝없이 피어났기만 하고 결실을 맺지 못하였긴 하다.


하지만, 나는 고흐의 인생과 그의 작품을 그런 의도와 시선으로 감히 평하고 싶지 않다. 평가라는 건 동등한 눈높이에서 시선을 마주한 채로 이루어지는 교류다. 고흐와 나는 깊이가 같지 않다. 얕은 건 당연히 내 쪽이다. 그래서 고흐를 함부로 재단할 수가 없다. 나는 그에 비해 아무것도 갖춘 것이 없고, 지성미와 아름다운 손의 감각마저도 부족하다. 고흐만큼 많은 책을 통달하지 못했고, 그 예술가처럼 형형의 노란색을 물감으로 풀어내지도 못한다. 그래서 내가 많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고흐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건 뭘까 하는 생각을 한다. 부족한 평론가가 다 갖춘 예술가에게 줄 수 있는 것 말이다. 동생이자 후원자인 테오에게 부친 편지를 읽고 그것에 담긴 그의 음성을 생생하게 전하는 일 정도이지 않을까. 그 편지는 많이도 눈을 시리게 하는 글이었고, 젊은 영혼은 늙어 영면하기까지 그 편지에 자신의 내면을 갈아 넣었다.


무채색 같은 남보라 하늘과 틈새의 빛이 나는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편지 속 문장들은 아름답다. 이 글의 첫머리도 그중 일부다. 빨간색 바닥에 붉은 벽돌 그림을 올려놓고 보았는데, 그림의 색이 바래거나 창백해지지 않았더란 내용이었다. 나는 이 문장이 고흐의 미술 철학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붉은 벽돌 그림은 붉은색은 맞지만 빨간색인지는 알 수가 없다. 여기서 빨간색은 일종의 확신을 가질 만한 추상적인 명제이자 개념의 차원이라면, 붉은색은 어쩌면 단지 고흐가 만들어낸 빨간색일 뿐이다.


하지만 그 붉음에는 고흐의 정신이 담겼다. 붉은색을 빨간색 위에 올려놓았는데, 붉은색이 바래지도 창백해지지도 않았단 건, 고흐의 혼도 그만큼 유려함을 버텨내는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붉은색은 아직 빨간색이라고 증명할 수 없지만, 적어도 고흐에게는 특정한 별명을 붙일 수 있는, 어쩌면 이름까지도 명명할 수 있는 빨간색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라면 그 이름에 ‘브릭레드’라는 무심한 별칭을 애칭처럼 상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흐처럼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반 고흐가 쓴 편지의 무수한 구절들이 인상 깊었다.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지만, 그저 발견한 문장을 그대로 전하고 싶다. 고흐의 말, 온기가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깊이 숨어버린 고흐에게는 다소 짓궂지만 그와 세상을 연결하는 작은 문자가 되어보겠다.


“네가 떠난 후 밤거리를 걸어 다니다 집으로 돌아와 초상화를 그렸다. 잘 있어라. 1879. 10. 15."

- 빈센트 반 고흐 지음 / 신성림 번역, 《반고흐, 영혼의 편지》, 예담, 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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