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 ‘오래전 그날’의 풍경

by 다미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

그때가 너도 가끔 생각 나니

- 윤종신, <오래전 그날> 중



무언갈 버리던 때가 있었다. 다 버리다 보니 교복도 벗었다.


10년이 흘렀다. 다들 한 자리씩 발을 붙이고 서있겠지. 어딘가에서 무엇을 하든.


끝까지 보지 못한 일들이 있어서 회한이 밀려올 때가 있다.


포기해야만 시원했을 마음들이, 노래를 들을 때면 다시 한번 뭉그러진다.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이라는 노래가 있다. 평소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다. 윤종신의 유명한 이별 노래들이 많지만, 나는 ‘좋니’와 ‘오래전 그날’이 머릿속에 자주 돈다. 아무래도 결이 맞는가 보다.


특히 오래전 그날의 도입을 들을 때면, 내가 입던 교복도 아닌 교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마치 나의 추억인 양 젖어든다. 이건 분명하다. 나의 교복은 검은 웃옷과 무릎에 닿는 치마였는데, 이 노래를 듣는 동안 떠오르는 교복치마는 체크무늬 녹색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소꿉친구 다니던 학교 교복이 녹색이긴 했다.


아무튼 오래전 그날은 나의 하굣길 풍경도 아니고, 부모님 까까머리 시절 또한 아니다. 다만 오래전 그날 한 분식집에서 웃고 있는 남자와 여자가 있고, 그들 앞 양은냄비엔 국물 라면이 담겼다. 가게가 추운지 화로가 활활 타오르고 회백색 연탄이 몸을 뜨겁게 데워준다.


남자의 머릿속 한편에선 길이 흘러간다. 과거에 길을 함께 걸으려 망설였던 여잔가 보다.


노래에서는 화자가 교복을 벗었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꼭 입은 채로 만난 것 같기도 하다. 남자의 눈에 여자의 머리가 더 길어졌고, 물결이 졌다. 예뻤다.


멀리 흘러간 끝에 머리를 푼 여자는 앳된 얼굴로 제 손만 한 술잔을 들고 있다. 여자가 웃는다. 술잔이 부딪친다. 달그락. 남자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훈기가 돈다.


이처럼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그리는 냄새가 다소 흡습하고 뿌연 연기가 돈다. 그 연기 자국은 끝끝내 오선지의 끝세로줄에 멎는다.


가게를 나서던 그가 내게 몰래 말을 건넨다. ‘오늘 떠나는 이 여자 한 번쯤 돌아봤으면 좋겠다. 그녀가 웃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한 번은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라고 작게 중얼거린다.


그들이 앉았던 분식집 한편에는 버리는 것들을 주워온 골방이 있다. 담긴 물건이 꽤나 골동품인 걸로 보아 주인네 취미가 고약한 듯하다. 그들 떠난 테이블 옆 난로 위 쇠주전자가 식어간다. 살짝 탔는지 매캐한 냄새가 난다. 그새 은은하도록 퍼진다.


오래전 그날 사랑의 자리는 다음 사람을 위해 골방에 남겨둔 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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