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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Mar 06. 2024

[100-3] 나의 그날  그때

알사탕/ 백희나

동동이는 혼자 논다. 친구들에게 ‘같이 놀자’라고 말을 못 해서다. 그런데 친구들이 구슬치기가 얼마나 재미있는 모른다고 한다. 동동이는 구슬 대신 아니. 친구 대신 산 알사탕을 먹고 다른 존재가 하는 말을 듣는다. 박하 향이 강한 소파 무늬의 알사탕을 먹고 귀가 뻥 뚫린다. 그래서 소파가 옆구리에 낀 리모컨 때문에 옆구리가 걸리고 아빠의 방귀 냄새로 숨쉬기도 힘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엔 구슬(개)의 몸 무늬의 알사탕을 먹는다. 구슬이 몸 무늬의 알사탕을 먹으면 구슬이 마음을 알게 될 것 같아서다. 구슬이가 동동이와 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늙어서 놀 수 없다고 한다. 동동이는 그런 구슬이의 사정에 맞춰 놀아준다.  

    

나는 네 살 무렵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그런데 동동이처럼 혼자 친구를 찾아가지 못했다. 어느 날 할머니를 졸랐다. ‘놀러 데려다줘.’라며. 할머니는 나를 친구 집에 데려다주셨다. 친구들 몇 명이 이미 방 안에서 놀고 있었다. 할머니가 친구들에게 “얘들아. 우리 정희 좀 잘 데리고 놀아라.”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이 말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할머니가 하신 말씀은 “정희야 친구들과 잘 놀아라.”가 아니었다. 할머니가 친구들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알게 깨닫게 된 것은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이 친구들은 나보다 한 살에서 네 살까지 많았다. 그러니까 내가 친구들과 함께 놀기보단 친구들이 나에게 맞춰 놀아주었던ㄴ 것이다. 친구들이 내게 맞춰 주니까 내가 친구들과 놀고 싶었던 것이다.


동동이는 구슬치기가 재미없어졌다. 이때 놀이터 저쪽에서 놀고 있는 친구들에게 다가가서 ‘함께 놀자’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동동이는 새 구슬이 필요하다며 새 구슬을 사러 간다. 동동이에게 필요한 것은 친구들이었는데 말이다. 동동이가 친구에게 “같이 놀자.”라고 말하려면 가슴속에 일어나는 불편한 감정을 견뎌내야 한다. 이 불편한 감정을 겪는 것이 싫어 이 말을 안 해도 되는 새 구슬을 산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대부분 손쉽게 구할 수 없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맘먹으면 구할 수 있어서 갈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놔두고 다른 것을 아무리 많이 취해도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갈망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문화인류학 같은 것을 연구하는 일이었다. 나는 인간이 어떻게 지구에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런데 가정형편 상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대학원에 가고 석박사가 되어 연구를 계속하고 싶은데, 첫발도 못 내딛게 되었다. 


동동이가 친구에게 ‘같이 놀래.’라고 말을 못 했듯, 나는 부모님께 대학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가정 형편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울면서도, 낮에는 괜찮은 척했다. 나는 그때 괜찮지 않았고 그 부분에서는 지금도 괜찮지 않다. 이 글을 쓰기 조금 전에 소프라노 강혜정의 남촌과 내 마음의 강물을 들었다. 남촌을 들을 때는 봄이 오는 듯 기분이 좋았다. 내 마음의 강물을 들을 때 ‘그날 그땐 지금은 없어도’란 가사가 내 가슴을 툭 쳤다. 눈물이 솟구쳤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난다. '나의 그날 그때'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꿈을 내려놓던 날이다.


 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상황에 따라 음악을 듣기는 했지만 혼자서는 음악을 듣지 않았다. 음악을 들으면 음악이 가슴을 거란 걸, 조금 전처럼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솟구칠 거란 알고 있어서다. 동동이가 친구들에게 ‘같이 놀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 대학 가고 싶어. 대학원도 가서 연구하고 싶어.’  지금 나는 문화인류학을 연구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 나름대로 인간과 다른 생명체에 대한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존재가 아닌가. 나도 하나의 생명체인지라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 애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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