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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May 12. 2024

[100-68] 알맞게 혹은 적당하게 그리고 대충

상추물김치

어제 남편이 텃밭에서 뜯어온 상추가 냉장고에 그득하다. 이웃에게 좀 나눠주기도 했지만. 쌈이나 샐러드로 먹기엔 너무 많다. 물김치를 만들기고 했다. 내가 물김치 만드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아몬드를 마늘과 생강과 같이 갈아서 사용하면 밀가루 풀과 액젓이 들어가지 않아도 맛이 있다. 물론 채식자들에게도 좋다. 입맛이 없는 여름철 아몬드 상추물김치는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한다. 상추를 데쳐서 쌈으로 먹어도 맛이 있다. 

상추물김치를 비롯한 한식 요리는 계량을 하지 않아도 되어 좋다. 어떤 재료이든지 양념을 적당히 혹은 알맞게 넣으면 맛있는 음식이 된다. 빵을 만들듯 정확하게 계량하지 않고 만든 이런 음식은 정말 손맛이라고 할 수 있다. 요리 초보자에게 정말 어려운 말이 적당하게 와 알맞게 넣어라는 말이다. 도대체 각 양념을 얼마나 넣으란 말인지 혹은 냄비를 불 위에 올려놓고 얼마나 오래 졸여야 알맞게 되는지 너무나 어렵다. 요리책을 보고 계량을 하고 온갖 신경을 써서 만들어도 2% 부족한 맛이 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 음식을 만들 때 대충 적당하게 알맞게 넣었는데, 맛이 있다. 이른바 달인이 된 것이다. 손맛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하나하나 또박또박 정성껏 친다고 해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듣기 싫은 소리가 난다. 피아니스트가 스르륵스르륵 피아노를 치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줄 때 아무도 대충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엄마는 대충대충 음식을 만드는데 맛이 있어."라고. 엄마가 만든 음식이 맛이 있는데 어찌 대충 만들었다고 하나. 대충 만든 음식이 맛있을 리 없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스르르륵 연주할 때 그는 온갖 기법을 알고 그것을 적당하게 혹은 알맞게 적용한다. 엄마도 이처럼 음식을 만드는 기법을 알고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다. 

피아니스트가 좋은 연주를 하려면 오랜 시간 연습을 해야 하듯,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일도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 엄마가 음식을 만들 때 우리 눈에 대충대충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엄마가 음식을 대충 만들어도 맛이 있기까지 엄마에겐 대충은 없었다. 자녀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자 하는 마음과 정성이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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