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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 철학자가 된 20년 차 숲해설가 1

신개념, 다중심만물동료주의- 몸으로 겪고 삶으로 쓴 철학적 사유

by 할수 최정희

나뭇가지 철학자가 된 20년 차 숲해설가 (1)

신개념, '다중심만물동료주의' - 몸으로 겪고 삶으로 쓴 철학 사유


나뭇가지철학자를 아세요? 그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고요? 연필심만 한 굵기의 나뭇가지를 만지작거리다가 철학자가 되었다고 해요. 그가 만든 새로운 사조를 '다중심만물동료주의'라고 하던데요. 이 사조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요?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그 나뭇가지철학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20년 차 숲해설가 바로 저고요. 이 사조에 대해 처음 말하는 거니까요. 이 글은 영화 신작 시사회와 비슷해요.


저는 고3 때 아버지의 병환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했어요. 그래서 평생을 짧은 가방끈에 대한 열등감 속에서 살아왔지요. 전문적 학식 없는 제가 어떻게 이런 사유를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다중심만물동료주의’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시죠?


'다중심만물동료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에요. 제 삶의 첫 기억부터 지금까지, 제게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과 그 사건들이 준 영향과 그때의 생각들을 꺼내어, 심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때로는 신화적으로 분석하다가 생겨난 결과물이에요.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와 제 삶을 겹쳐보고, 에릭 호퍼의 철학 거울에도 비춰보면서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사고의 조각들을 한데 모으는 과정에서 철학적 새로운 관점인, '다중심만물동료주의'가 탄생한 거예요. 제가 다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된 이유는 제가 중심 밖으로 밀려난 존재,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중심에 설 수 없는 슬픈 존재였기 때문일 거예요.


'다중심만물동료주의'는 인간만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동물이든 식물이든, 돌이나 바람처럼 생명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든, 인간이 만든 어떤 물건이든—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라고 여기지요.


또한 이 사유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동등한 ‘동료’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해요. 이 개념은 마치 숲 속의 작은 돌멩이도,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유한 존재론적 가치를 지니고 세계에 기여한다고 바라봐요.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전존재적 동반성’**과, 각 존재의 고유한 울림에 귀 기울여 응답해야 한다는 **‘응답의 윤리’**를 내포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저의 이 철학적 사유는 대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먼저 저의 첫 기억을 꺼내놓아요. 이 일은 제가 39개월 아기였을 때 있었던 일인데요... 첫째 남동생의 백일사진을 찍는 장면입니다. 그날 마당엔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로 북적거렸어요. 사진사가 마당에 사진기를 세워 놓자, 아버지가 아랫도리를 발가벗긴 남동생을 쪽마루 벽에 기대 앉혔지요. 아버지가 옆으로 비켜서기도 전에 남동생은 기우뚱 쓰러졌고, 몇 번을 다시 세워 앉혀도 동생은 사진을 찍을 때까지 버티지 못했어요. 동생이 넘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에고~", "잠시만 참지!", "아이고, 고걸 못 기다리고?" 하며 모두 안타까워 소리쳤고요.


그때 한 사람이 "에고, 저 고추 좀 봐라"라고 외치자, 옆에 있던 사람이 "그놈 고추 참 잘생겼다"며 그 말을 받아쳤죠. 이 말이 무슨 신호인 듯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어요. 마당에는 "고추, 고추!" 하는 돌림노래가 시작되었어요. 점점 그것에 대한 찬양가로 변해갔고요. 이 찬양가는 담장을 넘고 지붕을 넘어 하늘 저 멀리까지 퍼져나갔어요.


이때 저는 무엇을 했느냐고요? 저도 마당에 서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제겐 백일사진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바로 남동생 백일사진을 찍는 그 현장에서요. 이날 백일사진이란 것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어요.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하는 남동생의 백일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법석을 치는 것을 바라볼 때, 제 마음은 바람이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쪼그라들었어요. 잘 앉을 수 있는 제 사진을 할머니도, 엄마도, 아버지도 찍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에요. 저는 입을 꾹 다물고 웃지 않았어요. 저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아직 39개월짜리 아기라면 보채거나 울면서 떼를 써서라도 나도 사진 찍고 싶다고 할 때가 아닌가요> 저는 그때 아기가 아니던 거죠. 그것이 없어서 이미 간난 남동생에게서 밀려났는데, 내 사진도 찍어달라고 울거나 보채면 더 밀려날 것을 직감으로 안 거예요.


갑자기 백일사진 찍는 광경이 스르르 멀어져 버렸어요. 저는 남동생 백일 사진을 찍는 현장이 아니라 영화관 맨 뒷자리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처럼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때 담을 넘고 지붕을 넘어, 울려 퍼지던 남성의 상징인 그것에 대한 찬송의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았어요. "나도 백일사진 찍고 싶다"는 제 내면의 외침도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겠지요. 왜냐면 그들과 제 사이에 보이지는 않지만 두껍고 단단한 유리 벽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은 것은 유리 벽이 있어서라기보다 제가 착한 아이가 되기로 해서 일 겁니다.


이때 문득 한 깨달음이 일어났어요. 부모님이 남동생의 백일사진을 찍어주고 마당의 사람들이 남동생을 찬양하는 이유가 남동생이 아니라 벌거벗은 아랫도리에 달린 그것이라는 걸요. 제게는 그것이 없었어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이 제게서 남동생에게로 흘러가버렸다는 것도 깨달았지요. 여자가 태생부터 슬픈 존재라는 것도 깨달았고요.


저는 칠순이 된 지금까지도 그 장면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어요. 그만큼 제게는 충격적인 일이었건 것이죠. 그날 마당엔 웃음이 가득했지만, 남성의 상징인 그 말은 단단한 못이 되어 제 마음속 깊이 박혔어요. 저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 못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어요.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었지만, 수십 년을 저는 여성의 삶을 살고 말았어요.


저는 노년에 들어서서야 이 고통에서 벗어나 나라는 인간으로 서서 살려고 투쟁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치유를 받기 위해 숲으로 간 것은 아니에요. 그냥 숲이 좋아서 숲에서 활동해 왔어요. 돌이켜보면, 그 좋았던 기억의 뿌리는 아주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요.


어린 시절 저에게 우리 집 복숭아밭은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었어요. 그것은 마치 최초의 빅뱅이 일어나는 경이로운 순간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우주의 한 공간이었지요. 복숭아꽃이 지고 털이 보송한 녹색 열매가 맺히고, 점점 자라면서 복숭아는 어른 주먹만 하게 커지지요. 이때쯤이면 복숭아 속에서부터 배어 나오는 연한 분홍빛의 '그러데이션'을 숨죽여 지켜보는 것은 창조의 신비를 목격하는 일이었어요.


봄날 동네 아이들과 올라간 산에서 만난 할미꽃 군락은, 여러 시간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초현실적 장면을 보여주었어요. 어떤 것은 금방 올라온 새싹이고, 어떤 것은 자줏빛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고 있었으며, 또 다른 것은 이미 꽃이 지고 할머니의 머리칼 같은 관모(冠毛)를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지요. 그것은 단일한 시간이 아닌, 여러 생애가 겹쳐진 '시간의 다발'과도 같았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사 온 선인장은 저의 우주 질서를 흔들어 놓았어요. 기존에 알던 식물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 선인장의 그 기이한 가시와 형태와 질감은, 제가 알던 세계의 경계 너머에 상상할 수 없는 다른 존재들이 있음을 알려주었어요.


이런 경험이 제 안에 죽지 않고 살아있었나 봐요. 저는 잊어버렸던 그 원형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서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겠지요. 사람이란 존재도 하늘의 구름처럼 잠시 사람의 모습을 지니고 있을 뿐이고 바위도 영원하게 그 모습으로 있지 못하고 다른 존재의 일부로 되어 가지요. 그러니 고정된 중심이 있을 수가 없지요. 고정된 중심이 없다는 깨달음이 다중심 사고로 이어진 것이지요.


남동생 백일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하시죠? 결국엔 제가 아랫도리 그것을 드러낸 남동생을 안고 사진을 찍었어요. 저는 남동생이 넘어지지 않게 받쳐주는 받침대 역할을 한 것이죠. 남동생 백일사진을 찍는 장면이 첫 기억이지만, 이전에도 저는 종종 그것이 없다는 이유로 가슴에 못 박히는 경험을 했을 거예요. 이날 강한 펀치를 한 방 맞은 거고요. 이 뒤에도 때론 약하게 때론 강한 펀치가 계속 날아왔어요. 이런 펀치를 더 맞다간 죽을 것 같아서, 살아남기 위해 '나도 중심이 될 자격이 있다!'라고 필사적으로 외쳤어요.


시간이 흐르자 ‘나도’가 ‘나는’으로 변했어요. 저는 "나는 중심이야"라고 소리쳤지요. 어느 날 '나는 중심이야'라는 말이 부싯돌처럼 머릿속에 번쩍 한 생각을 일으켰는데요. 바로 '나의 존엄이 그토록 소중하다면, 내가 하찮게 여기는 존재들도 다 존엄하고 소중하다'는 것이었어요. 나의 중심을 바로 세우는 길은, 역설적으로 모든 존재의 중심을 인정하는 길과 맞닿아 있었지요. '나만 중심'이 아니라 '너도, 그리고 작은 나뭇가지도 중심'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마음이 고요해졌어요.


지난 20년간 저는 숲 해설가로 활동하며 생태 공예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람들에게 강의해 왔어요. 이런 활동은 자연과 숲에 대한 저의 이해를 깊게 해 주었고, 사람과 사람의 삶을 숲과 식물, 곤충, 동물, 그리고 바다 같은 자연을 통해 바라보게 해 주었어요. 동식물이나 돌처럼 생명이 없는 것들도 사람과 별다를 바 없이 순환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이 앎이 세상 만물 중에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매 순간 변화하고 있으니, 더 잘 나고 더 못난 존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고요.


저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오래전부터 만물의 동료성을 느끼고 있었을 거예요. 어느 날 대구수목원 화목원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있었어요. 참빗살나무 아래 길고양이가 앉아있었지요. 저는 길고양이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요. 그도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할 뿐이죠. 그날 저는 왜 산책로에 주저앉아서 고양이를 바라보게 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고양이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쪼그려 앉았어요.


제가 고양이를 바라보자 고양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저를 응시했어요. 고양이와 저의 눈길이 마주쳤어요. 둘은 미동도 하지 않고 서로의 눈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앉아있었어요. 이때 고양이와 저는 서로 연결되었고 고양이는 나를, 저는 고양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존재하고 있었어요.


이때 인간과 고양이 사이의 위계는 사라지고, 오직 동등한 두 중심이 서로의 우주를 잠시 공유하는 ‘다중심만물동료주의’의 한 장면이 펼쳐진 것이에요. 어떻게 이런 깊은 연결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제 첫 책 『숲이 내게 걸어온 말들』(설렘, 최정희)에 썼던 문장에서 그 답의 실마리를 찾아볼게요.


"나는 죽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로지 변화해 갈 뿐이다. 봄날 사과꽃을 보고 내가 환하게 웃는 건 내 몸이었던 원소 하나가 사과 꽃 속에서 나를 보고 반가워서 먼저 웃어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음은 나를 변화시켜 주고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니까." (숲이 내게 걸어온 말들, 설렘, 최정희)

어쩌면 고양이와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본 이유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느 생명 속에서 한 몸을 이루었던 우리의 원소들이 서로를 알아보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후 저는 이런 생각을 하였어요. "왜 우리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지? 내 몸속의 원소가 전에 고양이 몸이었을 수도 있고 고양이 몸속 원자가 내 몸속의 원자였을 수도 있는데. 나도 중심이 될 수 있고 고양이도 중심이 될 수 있고 그날 고양이 옆에 있던 참빗살나무도 중심이 될 수 있다면 남동생 백일사진을 찍던 그날의 슬픔과 아픔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이 생각도 다중심 사고와 결이 같은 것이지요.


제가 '만물동료주의' 개념을 생각해 낸 이유는 제가 나뭇가지로 공예 작품을 만들면서 여러 가지를 느꼈기 때문이에요. 자연물 다람쥐를 만들 때를 예를 들어 말해 볼게요. 연필심만 한 굵기의 아주 작은 나뭇가지로 다람쥐의 다리를 만들기도 해요. 이때 이 보잘것없는 나뭇가지가 없으면 다람쥐를 완성할 수 없어요.


공예 작품 안에서 솔방울이 크다고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연필심만 한 나뭇가지가 작다고 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지요. 이 작은 나뭇가지가 호박씨(머리)와 스트로브잣나무 솔방울(꼬리)과 그리고 좀 더 굵은 나뭇가지(몸통) 등 다른 재료들과 동등한 관계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다람쥐 작품이 완성됩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없다면 다람쥐를 만들 수 없어요.


사람들이 공예 수업을 할 때, 하찮게 보이는 이런 작은 나뭇가지가 바닥에 떨어지면 "없어졌어요!" 하면서 제게 다시 받으러 오곤 해요. 그러나 여러 번 수업을 하게 되면, 작고 하찮은 나뭇가지가 바닥에 떨어져 굴러가도 끝까지 찾아내요. 그리고는 허리를 굽히고 쪼그리고 앉아서 주워요. 수업이 끝날 때면 이 작은 나뭇가지 토막 하나가 남았다고 제게 조심스럽게 건네주지요.


놀랍지 않나요? 보잘것없는 나뭇가지 토막 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제게 갖다 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람쥐를 만들면서 존재의 크기가 존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어느 존재든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깨달아서겠지요. 가늘고 짧은 나뭇가지가 이처럼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발견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자신이 자기에게 소중하듯, 나뭇가지도 나뭇가지 자신이 소중할 것이라는 걸 느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제가 책을 내기 위해 삶을 쓰면서 심리학적, 사회학적, 철학적, 때론 신화적으로 분석하다 보니, 저의 여러 경험과 생각과 사고들이 한 교차로에서 마주친 거예요. 중심에서 소외되었던 아픔은 '다중심' 사고의 씨앗이 되었고, 숲에서 알게 된 존재의 동등한 가치는 '만물동료주의'의 뿌리가 되었지요. 다중심이란 씨앗과 만물동료주의란 뿌리가 만나 '다중심만물동료주의'란 나무가 되었어요.


제가 학문적 지식 없이 오직 삶에서만 얻은 이 사유가 과연 타당한 걸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고요. 급변하는 시대에 저는 함께 흐르지 못하고 멈춰있거나 혹은 역류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기도 했어요. 그래서 새로운 시대의 도구인 인공지능의 어깨를 빌려, 제가 몸으로 겪고 삶으로 쓴 이 사상, '다중심만물동료주의'가 나 혼자 떠드는 소리인지, 나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있는지, 논리에 맞는지, 맞다면 이 시대의 어떤 지점에 서 있는지 알아보았어요. 제 걱정과는 달리 놀랍게도, 시대를 넘어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스피노자, 해러웨이, 라투르 같은 사상가들이 이미 비슷한 길을 닦아 놓았다는 사실은 제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동시에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복잡한 이론과 학문적 언어로 철학적 사유를 했다면 저는 '남동생의 백일사진'이라는 아픔과 고통과 '나뭇가지 다람쥐'와 길고양이와 눈 마주침과 할미꽃과 복숭아나무 등 숲에서 자연과 교류한 경험, 즉 제 삶으로 철학적 사유를 한 것이라는 걸요.


제 삶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이 긴 여정에서 저는 몇 가지 사실을 발견했어요. 굳이 철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 있음을, 가장 깊숙한 곳에 박혔던 개인적인 상처의 못이, 오히려 세상을 보는 가장 보편적인 창문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삶에서 길어 올린 '다중심만물동료주의'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철학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다중심만물동료주의’에 대해 더 알고 싶거나, 저와 함께 보다 깊이 있는 사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다중심만물동료주위: 탈인간중심 존재론과 윤리적 실천을 향한 시론을 참고해 주세요. 또 이 철학적 개념에 대해 함께 더 깊이 사유해보고 싶은 지점이 있다면 언제든 소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이 철학적 신개념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합니다. 작은 나뭇가지 하나가 제가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해 주었듯, 저의 새로운 철학 개념이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중심만물동료주위: 탈인간중심 존재론과 윤리적 실천을 향한 시론은

제목을 나뭇가지 철학자가 된 20년 차 숲해설가 2로 해서

내일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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