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화. 장우산이 날아왔다

출근길 크로키 에세이

by 할수 최정희


제목: 장우산이 날아왔다.


승강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안전문이 스르르 닫힌다. 지하철이 출발한다. 이때 청년이 헉헉거리며 내 옆에 선다. 한 손에 에코백과 비닐봉지, 쇼핑백과 장우산까지 주렁주렁 들려 있다. 장우산을 바닥에 세워 짚고 숨을 고른다.


요즘 비가 내린 적도 없었고 비 예보도 없는데 '웬 장우산이지?' 하는 의문이 일었다. 잠시 후 지하철이 들어오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청년은 무엇에 쫓기고 있는 듯 내리는 사람들 사이 틈새를 비집고 쑥 들어간다. 지하철 안에서도 내달릴 기세다.


나는 사람들이 다 내린 후 올라탔다. 몇몇 사람들이 좌석과 좌석 사이 공간에 서 있다.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를 한 호박처럼 둥그런 얼굴에 몸매도 둥글 우람한, 아까 그 청년이 나를 마주 보고 서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가방들은 다른 사람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게 입구가 단단히 봉해져 있다. 그런데 이들 가방 모두 한 줌만 더 넣어도 터질 듯 배가 불룩하다.


그 청년과 눈길이 마주칠까 염려가 되었다. 얼른 돌아섰다. 그래도 어깨가 서로 닿을 듯 가까운 자리, 청년의 바로 옆이다. 풀어헤친 셔츠 안자락에 있는 휴대폰 세 개를 움켜쥔 청년의 검고 두툼한 손이 보인다. 각기 모양과 색이 다른 케이스에 들어앉아 어정쩡 몸을 포개고 있는 휴대폰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다.


이때 나는 그 청년을 본 것이 아니다. 긴 장우산이 뉴스에 나온 폭력 장면을 불러왔다. 그 순간 뉴스 속 범인의 얼굴과 청년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청년의 얼굴에서 그 범인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슬금슬금 청년 옆에서 멀어졌다. 사람들에게 주변에 "여기 위험한 사람이 있어요." 외치고 싶은 걸 간신히 억눌렀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사각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순간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우산이 보였다. 나는 흠칫 두 발짝 물러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열아홉 살의 그때로 떨어져 내렸다. 아버지가 폐결핵을 앓았다. 나는 아버지가 없는 집을 상상했다. 엄마에겐 학교 졸업장이 하나도 없었다. 할머니와 나 그리고 다섯 명의 동생들이 비쩍 말라가고 있었다. 엄마의 몫이 내 어깨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장우산이 내 꿈을 박살 내려고 날아오고 있었다. 내 몸이 움찔거렸다. 나도 모르게 서너 발 물러났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사람들에게 부딪쳤다. 몇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가 곧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청년을 힐끔 쳐다보았다. 두 눈을 감으면 다른 사람 눈에 자신이 안 보이는 줄 아는 아기처럼 청년은 휴대폰이 셔츠 밖으로 반쯤 나와 있는데도 무심하게 서 있다. 이 작은 물건도 제대로 감추지 못하는 참 어수룩한 청년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왔다. 햇살이 쏟아져내린다. 손을 들어 이마에 대고 하늘을 바라본다. 열아홉 살의 내가 청년의 장우산을 펼쳐 들고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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