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강아지 산책시킬 때 풀숲을 피해야 하는 이유

어느 동물병원의 일상 #1

by 삐약이수의사

##진드기 한 마리의 값어치


어느 동물병원 진료실에서 오늘도 다양한 아이들이 다양한 이유로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유독 자주 마주치는 불청객이 하나 있는데, 바로 바베시아라는 작은 기생충이다. 이름도 생소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이 미세한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적이다.


"밥을 잘 안 먹어요. 기운도 없고, 평소 같지 않아서요." 며칠 전 온 코코(가명)라는 믹스견의 보호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진료대 위에 올라간 코코는 겉보기엔 그럭저럭 멀쩡해 보였고, 간식은 여전히 잘 먹는다고 했으니 단순한 편식이나 더위 때문에 일시적으로 기력이 떨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체온을 재보니 39.9도가 나왔다. 애매한 온도였다. 우리는 보통 40도 이상을 발열로 보는데, 병원에 온 아이들은 낯선 환경과 검사에 대한 긴장 때문에 체온이 평소보다 높게 측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들어 염증수치라도 확인해 볼까 했는데, 원장님은 일단 며칠 더 지켜보자며 귀가 조치를 권했다.


하지만 3일 후, 코코는 다시 병원 문을 두드렸다. 그 이후로도 계속 밥을 안 먹고 기력이 없어 보인다는 보호자의 말에 이번엔 본격적인 검사에 들어갔다. 혈액검사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빈혈과 황달 소견이 보였고, 염증수치도 상당히 높게 나왔다. 그런데 바베시아 키트 검사는 음성이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키트 검사에서는 음성으로 나오지만 PCR 검사를 보내보면 양성이 나오는 아이들이 꽤 많다.


결국 코코는 입원을 하게 되었고, PCR 검사를 의뢰했다. 며칠 후 결과가 왔을 때는 역시나 바베시아 양성이었다.


바베시아는 원충성 기생충으로, 주로 진드기를 매개로 해서 감염되는 질환이다. 이 기생충은 적혈구 속에서 서식하면서 적혈구를 파괴시키기 때문에 빈혈과 황달, 때로는 혈뇨까지 유발한다. 빈혈이 심해지면 산소가 몸 구석구석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다. 특히 키트 검사가 음성이어도 실제로는 감염되어 있는 경우가 있어서 진단이 더욱 까다롭다.


치료는 만만치 않다. 항생제와 항원충제를 하루 세 번씩 먹여야 하고, 약값도 상당하다. 빈혈이 심한 경우에는 수혈까지 필요하고,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는 3~6개월 간격으로 PCR 검사를 반복해야 한다. 재발이 쉬운 질환이라 주기적인 모니터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기한 건 바베시아에 감염된 아이가 병원에 오면, 며칠 내로 비슷한 증상의 아이들이 연달아 온다는 것이다. 같은 동네에서 산책하던 아이들이 같은 진드기에 물려 비슷한 시기에 증상을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곤 한다.


요즘 나도 우리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 풀숲은 되도록 피하게 된다. 프론트라인 같은 외부기생충 예방약을 꼬박꼬박 발라주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진드기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에는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는 걸 몸소 체감하고 있다.


작은 진드기 하나가 불러올 수 있는 파장의 크기를 생각하면 자연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예방이 중요하다는 걸 매일 실감한다. 오늘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이가 병원 문을 두드릴 것이고, 나는 그 아이와 보호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청진기를 목에 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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