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모르니까, 설마 있을까 봐 - 과잉진료의 속사정

어느 동물병원의 일상 #4

by 삐약이수의사

## 자아가 생겨버렸다


입사 초반만 하더라도 정말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도 아는 게 없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그냥 원장님의 지시를 받고 그대로 전달만 하는 아바타였다. 어느덧 일한 지 반년이 지났고 들어간 진료 수도 상당히 많아졌다. 이제야 눈이 좀 트인 느낌이다.


문제는 이제 생각이라는 게 생겨버렸다는 것이다. 요즘 자꾸 '나라면 이렇게 진료를 봤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냇물이라는 닥스훈트가 혈뇨 증상으로 내원했다. 보통 혈뇨 진료는 패턴이 있다. 엑스레이 찍고 방광 초음파 보고 방광염 진단 내리면 주사 맞고 약 받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입사하고 나서 이 공식을 벗어난 케이스는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산책하다가 진드기가 많이 붙었어요"라는 말이 나온 순간 상황이 복잡해졌다.


요즘 바베시아가 워낙 유행이라 진드기 + 혈뇨 조합이 나오면 바베시아 검사를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냉정히 보면 이 아이는 외부기생충 예방약도 발랐고, 활력도 좋고, 혈뇨도 심하지 않았다. 내 직감으론 그냥 방광염 같았다.


하지만 아직은 원장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몸이다. 시키는 대로 보호자님께 바베시아 키트 검사와 혈액검사를 권했다. 비용은 15만 원 추가.


"네, 다 해주세요."


너무나 쿨한 대답이 나왔다. 이런 보호자가 사실 제일 무섭다. 정말 이해하고 계신 건지, 아니면 그냥 귀찮아서 동의하는 건지. 혹시 속으로는 '이 수의사 뭐 하는 거지?' 생각하는 건 아닌지.


괜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이 검사가 정말 필요한 건지, 나는 과잉진료를 권하는 건 아닌지. 15만 원이라는 돈이 아직 나에게는 크게 느껴져서 더 그런 것 같다. 보호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결국 냇물이는 바베시아 키트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고, 혈액검사에서도 특이사항은 없었다. 방광에 미약한 슬러지(찌꺼기)가 있어 그리 심하지 않은 방광염 진단을 받고 주사 맞고 약 받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내 예상이 정확했던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검사가 불필요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정말 바베시아였다면? 혈액 수치에 이상이 있었다면? 그땐 나를 원망했을 테니까.


이게 현실이다. 안전하게 가려면 이런 검사들을 권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과잉진료라는 소리도 듣게 된다. 의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감기 같은데 혹시 몰라서 피검사 권하고, 결과적으로 단순 감기였을 때 느끼는 그 미묘한 감정 말이다.


예전에는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했으면 됐는데, 이제는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든다. 경험이 쌓이면서 나름의 판단력이 생긴 건 좋은데, 그만큼 고민도 많아졌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확신은 줄어든다는 말이 이런 뜻인가 보다.


보호자들은 수의사가 항상 확신에 찬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지만, 사실 우리도 많은 경우 '아마도', '혹시 모르니까'로 판단한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이 때로는 추가 검사로 이어진다.


오늘도 집에 가는 길에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가 오늘 진료를 잘한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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