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Christmas - Wham!
작년 이맘때쯤 12월 25일 그 하루에 잔뜩 설레서 샀던 LP 한 장이 기억난다. 그때만 해도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영원히 1년 중 가장 설레는 날로 다가올 줄 알았고 말 그대로 Last Christmas가 될 것이라고는(실제 노래가 그런 뜻은 아니지만)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나름의 학교 생활이란 것이 있었고 무엇보다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거리에는 붉은색 푸른색 조명이 만연하여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물론 부대에 트리가 있고 밖에는 그때보다 눈이 10배로 내리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영 느낌이 안 난다.
이게 처음엔 좋은데 제설 한번 해보면 생각이 달라질걸요?
-부대 어느 간부의 말 중-
화천의 부대에 전입 오면서 설레었던 감정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뜨거운 여름이었고 부대 사람들은 절절 끓는 아스팔트 바닥에 피부가 한껏 달궈져서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반겨줬다. 무슨 강원도가 이렇게 더운가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서울에서 고작 몇 십km 올라와 놓고 시원해지길 바랐던 것 같다. 태어나길 겨울에 태어났고, 그것도 크리스마스 즈음에 태어나서 그런지 유독 더위랑은 맞지 않았다. ‘화천이라고 겨울이 추워봤자 얼마나 춥겠어!’ 이러면서 ‘오히려 빨리 시원해지고 좋겠네’라고 몇 개월 전의 나는 생각했었다. 눈도 펑펑 내린다 하고 10월만 되어도 춥다고 다른 간부님들이 경고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희소식 일 뿐이었다.(지금은 반성하고 있다.)
시간은 흘러 흘러 6개월이 지났고, 눈발을 가르며 달리는 전술차량 속 창문엔 6개월 만에 낯빛이 확 변해버린 내가 비추어 보였다. 그래… 곧 크리스마스였지… 임관 후 지금까지 부대 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보람차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어째서인지 흩날리는 눈을 보고도 아무 생각이 안 드는 나를 보니, 설렘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면 크리스마스이고 눈이 이렇게나 내리고 있는데 기분이 좋지도 안 좋지도 않은 지금 상황 자체가 꽤나 어색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사이 운전병이 라디오를 틀었다. 이런 카키색 고철덩어리에 라디오가 탑재되어 있었다니… 신선했다. 차량엔 나와 용사들을 포함해 8명이 타고 있었는데 우리는 모두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각자만의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적의 공기 속에는 20대 초반 청춘들 각자의 감정이 담겨있어 그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고 한참을 라디오 소리와 시끄러운 엔진 소리만이 공백을 채웠다.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라디오 DJ의 한 마디였다.
‘사연을 보내주신 분은 제주도에 계신다고 하네요… 제주도는 아직도 13도라고요? 서울은 지금 3도 정도라서 다들 추위에 떨고 있는데… 거기는 가을 날씨라서 너무 좋겠네요!’
“풉”
“와… 3도? 근데 추위에 떨고 있다고?”
“저 사람 화천에 한 번 데려와야겠습니다…”
차량은 금세 떠들썩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차량 내비게이션에 적혀있던 외부 온도는 -9도씨, 불과 우리는 10분 전까지 영하 9도의 온도에서 벌벌 떨다가 차에 탔고, 영상 3도의 온도는 이미 11월 초에 경험했던 우리였기에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벌써 크리스마스인 것 같습니다. 소대장님…”
뒷자리 용사 중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부대 내부엔 간부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겠다고 트리를 가져다 놓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임을 거부하는 군대의 공기가 트리가 내뿜는 긍정의 기운보다 강했다.
“그래도 오늘 나름 낭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누군가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래, 생각해 보니 우리는 오늘 사격장 눈을 치웠고 경치가 끝내주는 사격장 정상에서 눈싸움도 했으며 눈사람도 멋들어지게 만들어서 입구에 세워놨다. 눈사람은 한 160cm 정도 되는 용사와 키가 비슷했고 머리, 어깨, 허리, 다리 정도로 구분된 듯 4개의 눈덩이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다른 일에 한 눈을 판 사이, 눈사람은 금방 완성되어 있었고 몇몇 용사들은 내가 차에 타기 전 자신들의 친구인 양 눈사람을 소개해줬다. 나는 대충 무덤덤한 반응으로 ‘손 시리겠다. 얼른 가자…’ 정도의 감상평만을 남겼지만, 속으로는 아이들의 마지막 동심 같은 저 눈사람이 빨리 녹지 않기를 기도하며 차에 올라탔다. 장난기 가득한 용사들은 기어코 내 앞에서 눈사람 코에 고드름을 꽂고서는 낄낄거리기도 하며 즐거운 분위기로 마무리되었지만, 차에 탈 때에는 다들 무슨 의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아마 차 안에서의 정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눈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기도, 무언가 고민 섞인 한숨을 쉬기도 하며 각자 삶의 고뇌에 빠지는 아이들을 보니 너무 이른 나이에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웃으며 오늘의 낭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덕분에 안도할 수 있었다.
12월 25일, 그 하루에 전 세계 사람들은 열광한다. 각자 사랑하는,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찾기도 하고 어느 누군가는 조금 이르지만 다음 해의 소망들에 대한 소원을 빌기도 한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자신들의 소중한 청춘을 일부분 내어 나라에 바치고 있다. 녹록지 않은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비록 나조차 꽤나 잃어버린 성탄의 설렘이지만,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우리 사랑하는 소대원들, 누구보다 치열하게 12월을 보내고 있는 우리 장병들이 언제나 삶의 낭만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카키색 크리스마스의 소원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