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갔다. 작년까지 4년 동안 서울에서 지냈었지만, 화천에만 몇 개월 지내다가 방문한 서울의 풍경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생각보다 화천에 적응을 잘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그동안 무엇을 잊고 지냈던 것인가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기도 했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가장 먼저 서울에서 지낼 때 늘 가던 왕십리의 미용실에 방문했다. 그곳 디자이너와는 그 사람이 매장을 옮기면 나도 따라다닐 정도로 4년 동안 꽤나 긴 인연을 이어갔었지만, 졸업 후에는 서울에 갈 일이 없어 약 1년 만에 방문하게 되었다.
‘엄청 오랜만이네요! 어떻게 잘 지내셨어요?’
디자이너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는 늘 그랬듯 밝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하이텐션이라 당황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어요!’라고 급하게 얼버무린 후 자리로 이동했다. 자리로 가는 동안에도 그 사람은 나에게 ‘못 본 사이 얼굴이 더 탔다.’, ‘피곤해 보인다’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요즘 부쩍 많이 듣는 말이었어서 웃어넘기고는 거울을 한 번 보았는데 1년 전과 같은 거울인데도 그때의 내 모습과는 많이 달라 보이긴 했다. 세월의 풍파를 맞았다기에는 겨우 1년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말을 제외하고는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얼굴이라 ‘꽤나 밀도 높은 1년을 살았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짧게 잘라주세요 몇 년 전처럼요…”
“또 짧게 잘라야 해요?”
“하하… 벗어났다고 좋아했었는데 나와보니 다시 비슷한 곳이네요.”
짧은 대화였지만, 마주 보고 있는 거울 속의 많이 변한 내 모습과 변한 것 하나 없는, 아니 어쩌면 전보다 더 나아 보이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괜히 서글퍼졌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는 사이, 대대장님 몰래 길러오던 나의 머리는 그 시간이 무색하게도 가위질 한 번에 잘려나가고 있었다. 머리는 금세 짧게 변했고 실장은 나를 머리 감는 곳으로 안내했다.
“누가 머리를 감겨주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화천 미용실은 머리도 제가 감아야 하거든요…”
“와 그럼 돈은 얼마나 내요?”
“15000원이요…!”
“와…”
이런저런 안부만을 한 시간가량 묻다 보니 미용실 카운터에 와있었고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또 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밖으로 나왔다. 해가 지기 전에 화천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였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곧바로 잠실 롯데타워로 갔다. 정말 자주 갔던 곳이었는데 몇 개월 만에 와보니 이게 이렇게 컸던가 싶었다. 한 가지 더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 자주 갔었는데도 이제야 롯데타워의 지하주차장 입구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몇 개월 사이에 차가 생기기도 했고 그 외에도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을 체감했다.
롯데타워에 도착해서는 제일 먼저 지하철역과 롯데타워 사이 어딘가 애매한 곳에 위치한 알라딘 서점에 방문했다. 책을 사려던 것은 아니었고 구석에 조그맣게 자리를 잡고 있던 중고 LP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구매했던 것들 중에서는 한 때 하루 종일 들었던 쏜애플 “서울병” 앨범이 기억에 남는다. 빨간색 커버의 중앙에 석류나무가 그려져 있던 LP였었는데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 설렜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도에 없는 곳으로 가려고 집을 나선 날 바람은 몹시도 불었네
수록곡 ‘서울’의 첫마디이다.
지도가 없는 삶, 누군가 모든 걸 알려준다 한들 그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
어쩐지 내 처지 같은 것이 듣다 보면 울적해지기 딱 좋았다.
오랜만에 헤드셋으로 서울에서 '서울'을 들으며 백화점을 잠시 걸었다. 작은 헤드셋 사이에서는 울적한 노래가 나오는 데에 반해, 백화점은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이었고 나는 화천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17살, 집을 처음으로 나서서 사회생활을 했고 그 후로 10대 후반부터 지금 20대 후반에 오기까지, 공부를 잘하는 줄만 알았던 나는 재수, 삼수를 했으며 군대를 그렇게 가기 싫어하던 나는 국방부와 의무복무 10년짜리 계약을 맺기도 했다. 수많은 주변의 조언들이 있었지만, 그대로 한다고 한들 좋은 일만 있던 것도 아니었으며 나 스스로 맞다고 생각하던 길도 낭떠러지인 경우가 수두룩하게 있었다. 혼자서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시간이 흘러 지금의 상태가 된 것이고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더 잘 해낼 자신은 없다. 때문에 나는 겨우 노트북 하나로 글을 쓰며 ‘어떻게 살아라!’라는 말은 쉽게 하지 못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저 우리의 삶에 행복이 조금 더 촉촉히 스며들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