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건 OO이었을 거야

붕어섬에서

by 선세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이따금씩 화천의 붕어섬을 둘러싼 물을 바라보며 생각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한다. 가을바람 탓에 물결이 잔잔하지만은 않다. 지난여름엔 조정 선수들이 카누같이 생긴 배에서 노를 저으며 물 위를 달리고, 내가 물수제비를 뜨겠다고 돌멩이를 마구 던져댄 탓에 물의 표면은 인위적인 어지러움이 가득했었지만,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조정 선수들은 배를 더 이상 타지 않고 나 역시도 손이 시려 물수제비 뜨려던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느라 붕어섬은 오래간만에 자신들만의 순환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내게 다가오는 저 파동이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섬에 부딪혀 어디로 흩어져 어떻게 사라지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저 나는 물속에 잠긴 잡초들이 물결 따라 흔들리고, 가끔씩 붕어가 뛰어올라 새로운 파도를 만들고, 결국 모든 파동이 어지러이 모이는 섬의 하루 일과를 보고 있을 뿐이다.


화천에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 중 한 곳에서 커피를 두 잔 샀고 핫도그도 하나 포장해 왔다. 누군가와 둘이 온 것은 아니지만, 오전 내내 테니스를 치고 꽤나 체력이 빠져버린 탓에 붕어섬에서 고독을 즐기기에 한 잔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한국의 북쪽 끝이라 그런지 11월 중순부터 이미 바깥은 겨울과 같이 추웠고, 그 탓에 나는 차에서 빠져나오기까지 꽤나 오랫동안 나갈지 말지 혼자만의 싸움을 했다. 그냥 오늘 하루가 그랬다. 숙소 침대에 누워 나갈지 말지, 아침을 먹을지 말지, 친구를 만날지 말지… 결과적으로 집 밖으로 나와 중대장님과 테니스를 쳤고 아침은 안 먹었고 친구도 안 만나 배고프고 피곤한 상태로 혼자 남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날엔 보통, 좀처럼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무언가 정해진 일과에 따라 살던 평일과 괴리감이 느껴져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왜 나가고 싶은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기분이 괜히 울적한 것은 덤이다.


간신히 차 밖으로 나가 캠핑 의자를 꺼내고 노트북을 꺼내고 핫도그를 꺼내 먹었다. 단풍이 바람에 떨어졌고 사온 커피 위에도, 핫도그에도, 노트북에도 떨어졌다. 벌써 단풍이 진다니 시간이 이토록 빨랐던가. 작년에 단풍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연남동 어딘가를 걷던 것이 생각난다. 단풍 떨어지는 것이 그리도 예뻐 보였었는데 오늘은 떨어지는 단풍 속에서 되돌릴 수 없음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봄부터 여름까지 풍부하게 영양을 머금고 가장 예쁠 시기에 자신을 내려놓다니 나는 그러지 못했음에 아쉬움이라는 감정도 느낀다. 늘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내 성적에 대한 판단, 내 인간관계에 대한 판단, 내 인간성에 대한 판단까지 아직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혼자 만족했고 합리화했다. 서순라길 단풍 아래, 경의선 숲길 단풍 아래, 서울숲 단풍 아래 그 수많은 단풍 아래에서 겨우 이런 생각을 못하고 오만하게 살아왔다니, 그로 인해 놓친 모든 것들이 붕어섬 물에 비추어 보인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이었다.



작년 가을쯤이었던가 잔뜩 꾸민 채 서순라길 돌담 옆을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종로인 만큼 레코드 하나를 건져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왔고 도착하자마자 레코드샵에 간다면 그날의 할 일을 너무 일찍 끝내버리는 느낌이라 근처를 배회했다. 그때 즈음엔 학교 졸업을 앞둬 4년간 하던 밴드부 활동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였고 나는 밴드부 보컬을 하느라 귀가 터져라 듣던 밴드 음악에서 멀어져 잔잔한 음악만을 듣고 불렀었다. 친구들이랑 노래방을 참 많이 갔었는데 내 동기들은 다들 노래를 잘했고 서로 부르는 것을 듣고 감탄하곤 했다. 그 당시 친구 한 명이 자주 부르던 노래가 있었는데 리메이크도 한 번 되어서 꽤나 유명한 최용준의 ‘아마도 그건’이었다. 서순라길을 오래간만에 혼자 걷고 있자니 가을바람에 괜히 마음이 뭉클했는지 그 노래가 생각이 났다. 바이닐로 듣는 ‘아마도 그건’ 이라니… 무언가 굉장한 것이라도 떠오른 것처럼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단숨에 레코드샵으로 향했다. 레코드샵 바이닐들을 마구 뒤적거려도 보고 직원한테도 물어봤지만, 역시나 일이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샵을 빠져나와 자주 가던 을지로 노포 옆의 LP바로 향했다. 금요일 그리 늦지 않은 시간대였고 늘 북적이던 그곳도 그 시간대엔 붐비지 않았다. 직원이 가벼운 안주거리와 메모지, 펜을 건넸고 나는 가벼운 인사를 하고 받은 메모지에 신청곡을 적었다. 최용준의… ’아마도 그건’….


그 바에 가서는 항상, 나도 언젠가 전역을 한다면 이런 근사한 LP 바 하나를 차려야겠다고 늘 생각했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은 늘 가게의 LP들을 만지작 거리며 손님들이 건넨 메모지 속의 노래를 눈으로 음미했고, 손으로 진열장을 더듬더니 흐뭇한 얼굴로 얇은 레코드 한 장을 꺼내곤 했었다. 그리고 위스키인지 맥주인지를 한 모금 홀짝 마시고,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턴테이블 위에 조금 전에 꺼냈던 얇은 레코드 한 장을 올리는데 그 인생이 그저 부러웠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런 생각을 하며 블랑을 홀짝이고 있었고 취기가 조금 오를 때쯤, 내가 신청한 노래가 나왔다. 맥주 한 병과 내가 하루 종일 듣고 싶어 하던 노래라니… 더 이상 바랄 것은 없었다.



사랑 그것은 엇갈린 너와 나의 시간들

스산한 바람처럼 지나쳐 갔네

사랑 그것은 알 수 없는 너의 그리움

남아있는 나의 깊은 미련들



1년이 지나 붕어섬에서 다시 그 노래를 듣는다. 엇갈린 시간들은 다시 만날 길이 없다. 붕어섬 물 위의 엇갈린 파동이 그 사실을 부각하려는 듯 어지러이 흩어진다. 나는 무엇을 보려고, 무엇을 생각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인지… 붕어섬은 나를 왜 불렀는지,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