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을 버리는 일

버릴 수 없는 것에 대하여

by 선세

턴테이블에 015B의 The Forth Movement를 살포시 올리고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를 찾아 바늘을 붙였다, 떼었다, 결국 내려놓는다. 바이닐과 바늘이 마찰하며 잡음이 있었지만, 금세 턴테이블의 모터 소리만 살짝 들릴 정도로 고요해지고 정적을 깨는, 겨울밤 종소리 같은 음표 하나하나가 쏟아져 방 안에 나뒹군다. 세월의 흔적을 버리겠다… 웃기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짧은 인생 속의 시큰시큰 울렁울렁한 기억들을 지우는 것도 이렇게 버거운데 ‘세월의 흔적을 다 버린다라… 인간의 뇌 구조가 꼬이길 멈추고 그 주름이 다 풀어지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행위일 것이다.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 그때 그 모습으로 하늘나라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하얗게, 하나의 상처도 없이 소복이 쌓인 눈밭을 보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든다.

“아! 한 번 밟아보고 싶다!”

그러고는 결국, 그 백색 순수함에 발을 디딘다. 눈밭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순수를 깨뜨린 쾌감은 거대해진다. 몇 발자국 더 내딛는다. 처음만큼 설레지 않았기 때문일까… 점점 흥미를 잃고 눈밭을 나온다. 눈발이 다시 거세진다. 하얀 몸부림은 흔적을 지우려 해 보지만, 결국 신발의 지문만을 지운 채, 한 번 밟힌 그 높이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움푹 파인 흉터를 남긴다.

이것을 지우기 위해 4계절은 돌고 돌겠지만, 4계 역시 그 자리에 평생 머물러 있을 수는 없기에, 그 흉터만큼은 사라지지 못 한 채 머릿속에 남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발자국을 남기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지울 자신이 없다면, 최대한 지울 필요 없는 흔적을 남겨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내가 전에 남긴 발자국의 깊이와 그 흔적을 느끼며 더 좋은 발자국을 남기는 것,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 복잡한 뇌 구조가 부여된 이유이지 않을까.




나는 불행하게도 그 과정 속에서 필요악적인 존재가 자리 잡아버렸다. 스스로 제어는 할 수 없고 현실을 인정하기는 싫은 이중적인 상태, 내 안의 아나키즘, 그 속에서 자기 합리화는 꽃을 피웠고,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왔다. 아, 정확히 말하면 해결이 아니라 ‘보류’ 해왔다.


긍정적이라고 비칠 수도 있었겠지만 그저 문제를 회피하기 급급했던 속 사정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뇌 내 망상에 가까웠던 자기 합리화는 내 짧은 생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언젠가부터는 스스로, 머릿속 안 좋은 흉터들에게도 각기 다른 보기 좋은 제목을 붙여 남겨두게 되었다. 머리를 좀먹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좋은 시절이었다. 걱정이라고는 없었고 쓰나미처럼 무언가 밀려와 나를 덮쳐도 봄의 벚꽃, 뜨거웠던 여름의 추억, 가을의 기분 좋은 쌀쌀함, 겨울의 하얀 풍경 속 해프닝 정도로 생각할 수 있었다. 스스로 충만한 삶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제 어느덧 청춘의 후반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책임져야 할 일들과 함께, 맞서야만 하는 순간들도 등장했다. 학창 시절부터 현재에 오기까지 그 순간순간 속의 행복하던 나, 슬퍼하던 나, 하물며 일하고 공부하던 나, 사랑하던 나까지… 이제는 이러한 스스로 보기 좋게 편집한 세월의 흔적들을 원상태로 돌려, 돌아보아할 때가 왔다는 것을 느낀다.


흔적을 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를 갖기로 다짐한다. 나를, 그리고 너를 속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세월의 흔적은 버리지 못할 것을 알기에, 우리 더는 함께이지 않더라도 더 나아가는 앞으로의 발자국만큼은 아름답게 가꾸겠다고 다짐한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