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그 밤
인생 첫 바이닐인 The best of earth wind & fire의 수록곡 ‘September’는 노원구 어딘가의 러닝 코스를 뛸 때 많이 듣던 노래였다. 첫마디부터 9월 21일 밤을 기억하니? 라며 매번 나에게 물어왔고 언젠가 9월 21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잊고 있던 그리운 무언가에 더해 코 끝이 싱긋해지곤 했다. 9월 21일 밤이라… 이젠 꽤나 지나버린 시기이지만, 9월 21일이라면… 이제 여름이 끝나갈 즈음이려나, 아니면 미처 떠나지 않은 열기에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으려나… 몇 년 전이라면 전 연인의 생일선물에 온 힘을 다 해 지갑이 가벼워진 상태였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웃음이 나기도 한다.
9월에는 오래 떠있는 태양에 오랫동안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지만, 아끼던, 사랑하던 사람들의 태양빛 받은 얼굴을 오래 볼 수 있었고, 퇴근시간에 보는, 그 시간에만 볼 수 있던 핑크빛 주황빛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더위를 많이 타는 탓에 남들보다 치열한 여름을 살아내던 나였지만, 이제는 여름만큼 기억 속에 아름답게 머무는 계절은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나는 슬픈 멜로디라고는 없는 ‘September’를 들으며, 몇 십 년 전 가수가 묻는 9월 21일의 안부에, 여름의 노란 빛 번짐 속 우리가 지었던 같은 표정, 아스팔트의 까만 일렁거림 속 우리가 느낀 같은 두려움, 쏟아지는 빗방울 속 우리가 느낀 같은 서늘함, 이 모든 회로 안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고, 괜스레 눈시울을 붉힐 수도 있다. 어린 시절 공포의 대상이던 여름이 머릿속에서 이렇게 변하기까지의 과정은, 분명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아간다 한들, 그 시절만큼 행복해할 자신도, 슬퍼할 자신도 없기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아쉬움인지, 후회인지 사념에 뒤엉켜 밤을 지새울 뿐이다.
9월 21일
그날 밤을 기억하니?
소양강에 가득히 쌓여 증폭된 여름빛이
짧아질 준비를 하는 낮의 해에
뿌리를 내릴락 말락,
결국 거두었지
붙잡아봐야 더 빛날 리 없고
그래봐야 다시 저물어버릴 것을 알고 있어
여름빛에 눈이 멀어
초점이 사라진 지 오래인
나의 눈 속에서 이제는 보내줄게
언젠가 9월 21일,
여름의 끝무렵에
무의식 속 떠오른 어느 해 여름빛의 향기가 기억나도
그리워하거나, 괴로워하지는 마
사계를 돌아 도착한 이곳에
피치 못하게 나는 머물러 있을 테니
그때는 내 안의 증폭했던 여름빛,
그 그을음 마저 가져가는 것으로 하자
얼룩지겠지만,
그때는,
다시 여름빛을
한가닥씩 품에 안아보려고 해
9월 21일
그 무렵
그 밤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