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든 만약에게

26년의 내가

by 선세

12월 31일, 화천군청에서는 타종식 행사가 있었다. 서울에서 지낼 때에도 그 어느 타종식 한 번 가보지 않았었는데 어째서인지 올해는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빨강, 초록, 파랑… 고풍스럽게 지어진 나무 종각에 울리는 거대한 종소리가 이토록 듣고 싶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5년도의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너무나도 정처 없이 지나온 탓에 무언가 나에게 마무리라는 인식을 심어줄 그 촉매제 하나가 필요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겐 나이를 그저 한 살 먹는 것일 수도, 어쩌면 누군가에겐 앞으로 살아갈 무수히 많은 12월 31일의 흔한 밤 중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에 넘어가는 그 순간, 적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생긴다. 각 나라마다 시차에 따라 어느 정도 시간 차이는 있겠지만, 전 세계의 전자시계들은 365일의 긴 시간 동안 바뀌지 않던 2025라는 숫자가 2026으로 바뀌었을 것이며 공문서들의 문서 번호는 25-00에서 26-1로 다시 시작하기도 할 것이다. 그뿐인가 한국의 수많은 07년생 아이들은 성인으로 거듭나 그들이 그렇게나 갈구하던 여러 금기가 깨지는 해방의 순간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아닌 날로 치부하기에는 인류가 정한 이러한 일정한 순환의 시작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순간은 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의미에 더해, 나에게는 26번째 새해이지만, 왜인지 나는 마치 19살로 돌아간 듯 그 어느 해보다 25년의 마무리를 갈망했다.


며칠 전 12월 31일에 개봉한 ‘만약에 우리’라는 영화를 보았다. 한국식 멜로영화라는 수식어가 딱 맞는, 예를 들자면 ‘건축학개론’과 결을 같이 하는 리메이크 영화였지만, 그러한 감상보다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25년도의 마무리를 강요하는 영화였다. 앞서 표현했듯 정처 없이 지나온 2025년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 정처 없음의 중심엔 ‘만약에 그랬다면 어땠을까’라는 현실성 없는 망상이 자리 잡고 있었고 마무리를 위해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결국 영화 속 은호가 마지막까지 부르짖는 ‘만약’이라는 그 한 단어로 점철되기 십상이었다.


사실 그 단어는 우리의 삶 속에 아주 오래전부터 녹아들어 있었고 그 시간 동안 단어의 속성이 꽤나 변해왔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면, 부모님 차 뒷좌석에서 ‘아빠 만약에 말이야… 사자랑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겨?’와 같은 순수한 호기심의 만약을 말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조금 더 자란 후에 우리는 ‘만약 3번이 아니라 5번으로 찍었으면 1등급 받을 수 있었을 텐데…’와 같은 후회의 만약을 마구잡이로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면 경험이 쌓이고 조금 더 성숙하여 그 의미 없는 가정과 후회들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처음 부딪히는 세상과 나의 충동적임에 더 늘면 늘었지 절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는 지금,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더 참담한 만약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두려워지기도 한다. 나에게 25년도는 특히나 그랬고 그 거센 물결의 상쇄를 위한 새로운 파동이 필요했다. 어떤 감정도 내포되지 않고 모든 다른 파동들을 한순간 잠재울 크고 웅장한 파동...


잡념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고 종각 안에는 새해 첫 종소리를 울리기 위해 화천 내 고위 공직자들이 모두 모였다. 같이 타종식을 보러 와준 대대 간부들 덕분에 혼자 속으로 숫자를 세는 그런 쓸쓸한 풍경은 아니었다. 그 10초 동안 누군가는 셀카로 우리의 모습을 담았고 누구는 화면에 함께 담기려고 얼굴을 욱여넣기도 했으며 또 누군가는 숫자를 크게 외치며 종각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반면 나는 막상 카운트다운의 순간이 오니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했다. 그 10초 동안 주마등처럼 지난해의 장면들이 지나갔다. 나는 마치 10초 안에 나의 모든 25년도를 떠올려야 할 것 같다는, 그렇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영영 사라질 것 같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시간이 천천히 지나기를, 어서 다른 25년도의 기억이 떠오르기를 빌었다. 마지막 2초쯤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25년 너는 마지막까지도 나를 어지럽히는구나.'. 그러던 중 결국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종소리에 밀려 내 머릿속 모든 ‘만약’들은 사라졌다. 어쩌면 언젠가 나를 다시 기습해 올 수도 있겠지만, 한순간만이라도 머리가 비워졌다. 생각보다 크고 웅장한 종소리는 아니었지만 내가 왜 타종식에 오고 싶어 했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린 어쩌면 죽기 직전까지 만약을 부르짖을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어쩌면 만약 이때 글을 쓰지 않고 다른 공부를 했었더라면...이라는 후회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것을 하지 않으면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이 될 것만 같기에 멈출 수 없다. 우린 이렇듯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26년이 할 수 있는 일을 함에 후회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27년을 맞이할 때에는 그 종소리의 아름다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