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서른이지만

#3 나도 꿈이 있었어요. - 나의 버팀목

by 다해

내가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뒤 넘어야 할 산이 바로 앞에 있었다.

바로, 부모님께 시험 포기를 알리는 것.

그 말을 꺼내는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정말 내가 못난 딸이라고 인정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부모님과의 대화는 간단했다.

“나 시험 그만 보려고. 이제 공부 안 할 거야.”

“그러면 뭐 할 건데?”

“뭐라도 해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그래.”


부모님은 저렇게 말씀하셨지만, 내심 내가 공부를 더 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은근슬쩍 이제는 공부 진짜 안 하냐고 몇 번을 물어보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차마 부모님과 언니들한테는 말하지 못했던 눈물로 지새운 밤들을 떠올린다.

정확히 말한다면, 나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

이 슬픔은 오롯이 나 혼자 견디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냥 하기 싫어서 그만둔 줄로만 알게 두었다.

사실은, 그 어둠이 나를 잡아먹을까 두려워서 놓아준 꿈이었다.

나는 그 꿈을 놓아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그 결정을 한 뒤, 내가 공부했던 흔적을 지웠다.

마치 시험을 그만두었다는 선언처럼 부지런을 떨었다.

책상도 방에서 치우고, 책 몇 권만 기념으로 남긴 채 모두 버렸다.

남긴 책들은 미련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가장 길게 노력했던 시간에 대한 기념품이다.

가끔은, ‘그래, 내가 저만큼은 했었지.’하고 떠올리곤 한다.

나도 무언가에 열정을 다 했었다고, 최선을 다 했었다고 증명하듯이.

나는 나의 가시를 내 속에 꽁꽁 숨겨 왔다고 생각했다.

내 가시를 숨기려 애쓰고 있느라 티가 나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매일 보는, 매일 봐 온 부모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내가 숨겼다고 생각한 가시들을 이미 다 알고 계셨다.

나의 가시를 보신 부모님은 잔소리는 물론 내가 스트레스받을 만한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기다려 줄 테니 하고 싶은 만큼 하라 말씀해 주셨다.

부모님은 나를 믿어주고,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셨다.

나에게 대가를 바라고 하시는 행동이 아닌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사랑에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또, 나를 묵묵히 응원해 준 언니들도 있다.

나는 세 자매 중 막내이다.

언니들이 대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애틋하게 지내지 않았다.

성인이 돼서 대학 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내가 휴학의 길을 걷겠다며 집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의 사이가 더 단단해졌다.

매일같이 안부 인사를 하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했다.


나에겐 더없이 친한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아니, 원래 있던 친구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내 모든 모습을 본 사람들이다.

어쩌면 엄마 아빠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었고, 알고 있다.

언니들은 나에게 항상 말해줬다.

네가 조급해야 할 이유 하나 없고, 한심하지 않다.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 줬다.

언제나 든든하게 응원해 줬고,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줬다.

메신저로 얘기하는 날이 많아서 내 감정을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도

내가 힘든 일이 있으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무슨 일 없는지 물어본다.

사실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들이다.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나를 사랑해 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족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몽글몽글 고인다.

말로는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막내이지만,

그래도 알아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다.

또,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은 반려동물에게서도 온다.

고양이와 개.

내 인생에서 고양이와 개를 빼놓고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다.

나를 이렇게 아무런 대가 없이, 아낌없이 사랑해 주는 생명체가 있다.

또 내가 아무런 대가 없이, 아낌없이 사랑하는 생명체이다.

외로울 때, 힘들 때, 밤새 울 때, 내 옆을 지켜준 고마운 존재들이다.

나 혼자라 생각했던 그 시간에, 사실은, 나를 지탱해 주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이렇게 내가,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들이 있다면 버틸 수 있다.

그게 사람이건, 반려동물이건, 애인이건, 최애이건, 물건이건, 음식이건 아무 상관없다.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무엇인가 가슴에 있다면

버텨낼 수 있다고 믿는다.

마음이 많이 힘들 때 쓴 일기장에 ‘마음이 꺾이지 않는 나무 같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써놓은 기억이 있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나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서, 나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지금도 나는 마음이 이리저리 휘청거린다.

나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지만, 앞으로 나를 알아가고, 사랑할 것이다.

나는 휘청거리는 내 마음이 꺾이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나의 마음에 근거를 찾자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내가 사랑하는 반려동물,


또, 내가 사랑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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