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도 꿈이 있었어요. - 꿈이라 믿었던 날들
진로라 믿었던 날들
“경찰”
나는 마음에 경찰이라는 씨앗을 심었고, 그 씨앗은 푸르른 숲을 이루리라 믿었다.
‘나는 경찰이 될 거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웠다.
대학교 진학을 할 시기에 자연스럽게 학과는 경찰행정학과를 선택했고, 경찰이라는 직업에 한 발짝 다가갔다.
아니 다가갔다고 생각했다.
대학교를 입학하기 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 새로운 환경, 적응해야 할 것이 많았기에 막연히 두려웠다.
친구 한 명 없이 다른 세상에 똑떨어지는데 괜찮을까 걱정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입학을 하자 내 인생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다.
학기 초반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라도 내가 친구를 사귀지 못할까 막연한 걱정이 생길 무렵, 엘리베이터 옆에 큰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유도 동아리 가입 모집.”
유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스포츠였다. 혹시 친구를 빨리 사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입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유도라... 재밌겠네!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내 손은 이미 가입신청 문자를 보냈다.
유도 동아리는 대단했다. 대단히 힘들었다.
계속되는 낙법에 팔과 다리엔 온통 멍이 들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2시간씩 운동하는 스케줄이라 약속도 못 잡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동이 끝나면 청소도 해야 했다.
기숙사에 들어가면 9시가 훌쩍 넘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과 돈독해지고, 같은 경험을 쌓고, 동료애가 생겼다.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노력했다.
그저 친구들과 같이 운동하는 것이 즐거웠던 나는 최선을 다해서 동아리 활동을 하였고
동아리 부회장이 되었다.
물론, 동아리 부회장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 타이틀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 항상 결핍이었던 부분을 채워줬다.
너도 할 수 있어, 너도 쓸 모 있어. 나의 효능감이 인정받은 것 같았다.
다른 기수에 비해, 우리 기수가 뒤처지면 안 돼라는 생각이 들었고, 잘 해내고 싶었다.
능력에 비해 의욕이 과했던 것일까?
나는 금방 지쳤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일로 비난을 받는 일이 잦았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운동 동아리 특성상 규칙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규칙을 어긴 친구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것이 내 몫이었고, 그것이 마음의 짐이 됐다.
1년의 동아리 부회장 경험을 하면서 마음이 지쳤고, 학교를 휴학하는 회피를 하였다.
“대학교 졸업하지 않아도 경찰은 될 수 있어. 합격만 하면 끝이야.”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저질러버렸다.
휴학을 정했을 때 담당 교수는 “휴학한다고 다 경찰 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했고,
그 말에 더 큰 오기가 생긴 나는 바로 휴학 신청을 했다.
그 당시의 나는 그 결정이 옳은 길이라 생각했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한테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 믿었다.
학교를 휴학하고 내가 선택한 길은 경찰 시험이라는 길이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합격하고 싶었던 나는 비교적 저렴한 인터넷 강의를 선택했다.
“인터넷 강의로 합격하는 사람? 충분히 많아!”라는 위험한 생각과 함께.
걷다 보니 그 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 길의 이름은 장수의 길이었다.
친구들은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을 따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을 때에도
나는 휴학 전 그 상태였다.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것에 대한 결핍이 생겼고, 도태되고 있다는 생각이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불안감,
자랑스럽지 못한 딸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그 생각들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내 마음속 먹구름이 되었다.
그 먹구름은 결국 비를 내렸다.
영양분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던 경찰이라는 씨앗은 생각보다 약했고, 오래도록 내린 비 속에서 조용히 시들어 갔다.
하지만 난, 이미 시들어버린 씨앗을 붙잡고 계속 걸어갔다.
이 씨앗을 버린다면, 나는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무의미해질까 두려웠다.
가장 큰 걱정은, 내가 이걸 그만둔다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날 덮쳐왔다.
그럼에도 결국, 나는 그 길의 끝에 서 있었다.
끝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문은 아쉽게도 불합격의 문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불합격의 문이 보였을 땐, 문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떨구고 걸었다.
문을 열면 낭떠러지가 있을 것 같았다.
결국엔 그 문 앞에 다다랐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이상하게도, 문을 여는 순간에 느낀 감정은 ‘후련함’이다.
“그래! 나 지금까지 잘했어. 더 이상은 못해. 지금 잘 선택한 거야!”라는 희망 가득한 푯말이 보였고,
불합격의 문 건너엔 그저 또 다른 길이 있었을 뿐이다.
그 시간이 불행했냐 물어본다면, 그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나를 지지해 준 가족들이 있었다.
부모님은 내 앞에서 한 번도 잔소리하신 적이 없다.
용돈 타서 쓰는 막내딸이 걱정되셨겠지만,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기다려 주셨다.
언니들도 말없이 옆에서 응원해 줬다. 네 나이는 늦은 나이가 아니라며 길잡이를 해주었다.
또, 집에서 강아지, 고양이와 있는 것이 좋았다.
나를 무조건 사랑해 주는 작은 생명체들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해줬는지 모른다.
나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나의 반려동물들이 있고,
불행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얻은 것이 전혀 없냐 물어본다면 그것도 아니다.
시험을 보고 짧게 한 두 달 했던 아르바이트로 다음 시험을 준비했다.
나는 다음 시험을 위해 한 아르바이트가 나에겐 예상치 못한 활력을 주었다.
사람을 만나고, 같이 일을 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다양한 일을 접해보면서 나의 적성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일하는 즐거움이 어떤 감정인지 그때 처음 이해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후회하냐 물어본다면 그것은 맞다.
학원을 다녔다면 어땠을까?
시험공부를 빨리 그만뒀으면 어땠을까?
차라리 학교를 빨리 졸업했으면 어땠을까?
아님 빨리 취업을 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후회를 매번 했다.
하지만 후회는 힘이 없다.
아니, 후회만으로는 힘이 없다.
후회로 인한 반성으로 내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힘이 없다.
과거의 행동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다.
내가 20대를 치열하게 보냈는가?
20대를 통해 나에게 남은 것이 얼마나 있는가?
그런 20대를 보낸 나는, 어떤 30살이 되었는가?
나는 또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떤 30대를 살아갈 것인가?
나는 나에게 던진 질문에
그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다시 다른 씨앗을 들고, 걸음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