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아들집을 찾아가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2-3시간 정도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주말에 모처럼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행여 손님이 되어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해서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이 눈에 보여도 “이제는 너희들만의 시간이고 공간이다 “라고 못 본 체하고 다녀오곤 했다.
큰 저택에서 화려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는 그들을 잠깐 들여다볼 때면 내 어깨가 으쓱해질 만큼 자랑스러웠다. 그런 아들네 집에서 이번에 한달살이를 하게 됐다. 그들의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돈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부부가 무엇인지,
육아가 무엇인지,
산다는 게 무엇인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질문에 마음이 복잡하다.
아들은 뉴욕 맨하탄에 있는 투자회사에서 십여 년 근무하다 퇴사하고 지금은 L.A.로 이주하여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퇴사 전에는 연봉이 이백만 불 정도였다고 한다. 이제는 그도 싫다고 그만두고 개인사업에 전념이다. 회사에서 잘린 것도 아니고 제 발로 걸어 나왔단다. 나 같았으면 몸 바쳐 충성을 다 할터이니 10년만 더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겠는데…. 퇴사를 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냐고 물었다. 일 과 보수가 불공평하기 때문 이란다. 일 년에 200일 가까이 출장을 다니면서 투자를 하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는데 자기 상사들은 일 년에 절반 정도를 휴가로 보내면서 연봉 400-500백만 불씩 받는다고 한다. 아들 눈에는 개고생 해서 이들에게 갖다 바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나 보다. 우리는 감히 넘 너다 볼 수 없는 보수를 받지만 그이를 돈으로도 달랠 수 없었던 것 같다. 전국을 헤집으며 공항에서 호텔에서 거래선과 미팅으로 일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보다 더한일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한다. 그러나 사냥해서 물어다 놓은 먹잇감만을 탐내는 하이에나와 같은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도 설명이 안된다고 분개한다. 글쎄다. 그들도 다들 밥값을 하기 때문에 회사로부터 그만큼의 보수를 받은 것은 아닐는지.
며느리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인류 기업 G에서 근무 중인데 연봉 30만 불에 스톡옵션 보너스를 받는다고 하니 돈만 봤을 때는 “내 며느리”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하다.
이들 부부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일주일에 이틀씩 사무실로 출근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일주일 정도 출장을 다닌다. 여기까지는 여느 재택근무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6살 된 사내와 2살 반 된 딸이 있으니 그들의 하루는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마치 액션 스릴러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하다.
우리 부부는 이 집에 머무는 동안 애들이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때까지는 방에서 나오지 않고 기다려준다. 잠깐 들른 사람들이 손주들을 돌봐주겠다고 나서는 게 오히려 장애물이 될까 봐, 그들의 루틴을 유지하도록 위해서다. 오늘 아침에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며느리가 타고 다니는 차도 보이지 않는다. 애 엄마는 어디 갔느냐고 물었더니 San Francisco에 출장차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단다. 아빠 혼자 부엌에서 애들 아침과 간식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애들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하고 있다.
세수하고 양치질 하려므나
학교에 입고 갈 옷으로 갈아입어라
양발 신어라
그러나 애들은 대답만 “예” 하고서는 여전히 뛰고 소리 지르고 이른 아침부터 전쟁이다. 엄마가 없는 아침이라 우리 부부가 무엇이라도 도와주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두 손주들은 매일 자기가 학교에 입고 갈 옷가지를 자기 스스로 고른다. 양발과 신발도 옷에 맞추어 그들이 선택한다. 두 살 배기가 마치 칼라메치나 코디 개념이 있는 듯 선호하는 옷, 양발, 신발이 너무도 확실하다. 놀랍다. 할아버지는(나) 주말에 성당을 가기 위해 옷을 차려입고 이층에서 내려오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와이프에게 끌려 올라가 옷을 바꿔 입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닌데 두 살배기 손녀와 대조된다
두 애들을 학교에 떨어뜨려놓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이미 일을 시작 했는지 걸어 들어오면서 전화통을 붙들고 통화 중이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배달된 샌드위치 하나를 입에 물고 다니면서 일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오후 3시가 되면 두 애들을 학교에서 픽업해 집에 데려온다. 그러면 보모가 애들을 인수하여 저녁 8까지 돌보면서 저녁을 먹여놓고 아빠에게 인계하고 떠난다. 저녁 8시가 되면 애들을 샤워시키고 엄마, 아빠가 매일 교대해 가며 애들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오늘은 아빠와 함께 샤워하고 잠자리에 드는 날이라고 일러준다. 6살 배기가 더 놀고 싶었는지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을 끝마쳐야 하니 5분만 시간을 더 주면 안 되냐고 묻는다. 아빠는
그렇게 하려무나
그러나 5분 만에 끝마칠 수 있어 보이지 않는다. 아빠가 5분 후에 큰 소리로 time’s up (시간이 다 됐잖아) 하니 그림을 그리다 말고 크레용을 내려놓고서 이층으로 올라간다. 아빠는 애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가 9시가 넘어서야 저녁을 먹으로 일층으로 내려온다. 이게 이들 부부의 일상이다. 네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것을 한 달 내내 본 적이 없다. 아니 두 부부가 앉아서 같이 식사하는 것마저도 보지 못했다. 이 집에는 식사시간 이란 게 없다. 배고프면 수시로 먹어 두는 게 하루의 식사다
엄마가 샤워시키고 잠자리에 들기로 되어있는 어느 날 저녁 2살 배기 딸이 샤워하기가 싫었는지 이층으로 올라가면서
I am a boss
내가 결정권자이니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샤워를 하고 안 하는 것은 내가 결정할 것이라는 의미다.
이를 듣고 놀란 엄마가
Excuse me, what did you say?
너 지금 뭐라고 한거야?
이를 지켜본 6살 배기 오빠가 문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선
Stella , say sorry mom
동생아, 엄마에게 어서 잘못했다고 말해라
그때서야 동생이
I am going to take a shower
샤워하러 가고 있잖아요
애들과의 대화 내용도 평범하지 않다.
이 집에는 요리라는 것을 해본 적이 있나 싶다. 애들을 위해 아침, 저녁으로 만들어준 달걀 스크램불과 파스타 정도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아들 부부는 요리를 해본 적도 없고 할 줄도 모른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게다. 와이프가 우리 두 부부를 위해 밥을 지으려고 쌀을 찾았으나 이 집에는 쌀이 없단다. 이어서 소금을 찾으니 며느리가 잘 모르겠다면서 당신 아들에게 물어보란다.
식사라는게 김치, 깍두기에 국밥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김치볶음밥을 해서, 김밥을 만들어서, 아니면 라자니아 한판을 구워서 네 식구가 옹기종기 앉아서 얘기하며 음식을 먹는 게 식사가 아닌가 싶다. 네 식구가 주말에 키친 아일랜드에 모여 피자를 만들기 위해 엄마와 아들은 밀가루 반죽을 버무르고 아빠와 딸은 타핑을 할 피망을 자르는 것을 상상해본다. 모두들 일에 매이고 학교생활에 쫓기지만 단 하루만이라도 다 같이 모여서 음식을 만들면서 웃고 즐기는게 가정이 아닌가 싶다.
집에서 요리하는 게 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며느리가 끓여준 따뜻한 라면 한 그릇 정도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골프를 치고 집으로 돌아와 며느리로부터 시원한 얼음물 한 컵을 받아먹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고 며느리가 시부모를 모실줄도 모르는 못돼 먹은 사람은 아니다. 착하고 정도 많다. 시어머니가 수술 후 집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을 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 매일 한나절씩 시간을 내서 우리 집을 찾아와 시어머니를 보살피곤 했다. 겨울에 시어머니 옷차림이 부실해 보이면 따뜻한 털옷을 사들고 와서 입혀 주기도 한다.
커리어 우먼이 가사와 육아와 요리를 다 잘할수는 없지만 한 달 살이를 하고 나오면서 엄마의 포근한 손길 따뜻한 가슴이 아쉽다면 과한 욕심 일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