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재생산되면 추억이 된다. 나쁜 추억들은 재 소환되지 않도록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버리고 좋은 추억들만 반복적으로 소환하여 "그래 그때가 좋았어" 하며 반추한다. 그러면서 행복하다고 한다. 행복이란 게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어제의 기억들이 다 지워져 버린다면 어떠할까? 기억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지는 않을까? 마치 앙꼬 없는 찐빵처럼.
주말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홍 해인이는 불치의 희귀병으로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전 남편이자 현재의 동거인 백 현우는 임상실험을 통해서라도 살려 보려고 해인이를 설득하여 독일로 데리고 간다.
현지에서 현우는 해인에게 수술을 받고 나면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알려준다. 그러자 해인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과거와 현재가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서 수술을 완강히 거절한다. 현우는 해인이가 모든 기억을 잃을지라도 수술을 받고 살아만 준다면 해인이가 원하는 그런 남자로 살아 주겠다고 설득한다.
해인이는 수술을 받고 난 후유증으로 과거의 모든 기억을 상실했지만 인생의 절반은 한국에서 나머지 절반은 해외에서 살다가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왔다면 지난 30년간 한국에서의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과거의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30년 전과 연결해 보려고 애쓰는 글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후 단칸방 전세살이를 전전하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상계동에 19평 아파트 분양을 받았다. 새로이 이사하여 들어간 아파트는 중앙난방형 인지라 24시간 따뜻한 물이 나오는 첫 보금자리였다. 자고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일상을 시작하는 생활도 이때부터였고 온돌방 이부자리에서 침대 생활로 바뀐 것도 이 아파트에서 시작됐다.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곳도 바로 상계동이다.
내가 살던 집은 7층이었고, 복도식 아파트로 맨 끝에서 두 번째 집. 여름에는 앞뒤 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수락산에서 불어오는 맑고 시원한 공기가 거실과 안방으로 스며 들어와 자연과 함께 사는 공간이었다. 옆집에 사는 지용이네와는 서로 왕래하면서 김치를 담그면 맛보라고 한 사발씩 나눠먹곤 했으니 그때 그 아파트는 자연과 서민의 인심이 함께 묻어있는 사람답게 사는 동네였다.
서울에서 살면서 5번 이사를 했지만 지워 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는가 하면 이처럼 애틋한 정이 녹아있어 잊히지 않고 늘 생각이 나 다시금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이 상계동 아파트다.
출퇴근하며 매일 이용했던 노원 전철역에 30년 만에 내렸다. 나는 그 옛날을 소환하려 한다.
우리가 살았던 집이 직장을 향해 달리는 열차 안에서 오른쪽이었지?
5단지였을 거야
집에서 역까지 가는 도로변에는 2-3층 높이의 상가 건물들이 있었어
단지 내에 붉은 색깔의 굴둑이 높이 솟아있는 걸로 보아 옛날 그대로다. 역에서 내리면 바로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리자마자 당황했다. 옛날의 노원역이 아니다. 역 근처에는 좌우로 높은 상가건물들이 빼곡히 서있어 동서도 구분키 어려웠고 기억이 너무 막연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성당이 있었고 유치원이 있었지. 유치원 이름은 기억을 할 수가 없지만 세례를 받고 잠깐 이나마 신앙생활을 했던 성당 이름은 노원성당. 나는 내비게이션에 노원성당을 찍고 길을 따라나섰다. 걷는 길이 그 옛날의 길이 아니다. 도로변 상가 건물들을 새로이 지었는지 높은 현대식 빌딩이다. 그러나 성당을 찾으면 성당 중심으로 우리가 살던 집을 역으로 더듬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침내 성당을 찾았다. 단지 한 복판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하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다소 외진 곳에 있고 건물도 예전에 내가 다녔던 그 성당이 아닌듯하다. 근처에 또 다른 성당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도 인적이 없다. 모든 건물들의 문도 굳게 잠겨있다. 그래 강산이 3번이나 바뀌었는데 어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리. 집으로 돌아가자. 아니 과거를 소환하여 30년의 공백을 극복하려고 애쓰지도 말자.
발걸음을 돌려 성당 입구를 빠져나오는데 어떤 여자분이 자전거를 타고 성당 안으로 들어온다. 처음이 아닌 듯 매우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성모상 앞으로 다가가 두 손 모아 기도를 한다. 성당을 찾아와 성모상 앞에서 한참 동안이나 기도를 하고 있는 저 여인은 필시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닐는지. 성모님께 무슨 할 말이 많았는지 기도하는 시간도 꽤 길다. 기도를 마치고 뒤돌아서는 그녀는 학생인 자녀를 두고 있을 것 같지 않는 나이가 지긋한 분이다. 그렇다면 남편을 사별한 여인? 아니면 결혼 적령기를 앞둔 자식들이 어서 빨리 짝꿍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소원? 설마 복권을 사놓고 행운을 비는 기도는 아니겠지? 그녀에게 물었다
이 동네에 사셔요?
아니요 창동에 삽니다
그런데 어찌 여기까지?
예전에 여기 살면서 다녔던 성당이라 이따금씩 들린답니다
그러는 당신은?
예, 저도 이 동네에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갔는데 30년 만에 찾아왔습니다.
Oh my god.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나를 벤치에 앉힌다. 낯선 남자의 손을 덥석 잡는 것에 놀랐고 영어로 응대하는 것에 한번 더 놀랐다. 나는 그녀로부터 이 성당이 예전에 내가 다녔던 그 성당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분을 통하여 내가 살았던 그 아파트를 찾는다는 게 쉽지가 않아 보였다. 우리는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고 걸어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는 길에 나는 그 옛날 내가 살았던 그 아파트 앞을 지나고 있었다.
찾았어요. 바로 저 아파트였어요
아침이면 일어나 발코니에서 이 도로를 내려다보곤 했지요
맞아요 전철기지도 인접해 있고요
저기 저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주행시험에 떨어져 재수도 했었네요
놀랍다. 30년 전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히 성큼 다가왔다.
나는 아파트 7층을 쳐다보며
지금은 누가 살고 있을는지?
그 옆집에는 지용이네가 지금도 살고 있을까? 지용이는 결혼했겠지?
혹여 저 집에 살고 있는 사람도 나와 같이 미국으로 이민을 계획하고 있을까?
지금은 옛 추억이 돼버렸지만 예전에 애인과 테이트 하면서 즐겨 찾았던 커피샵에 들러 우리가 함께 차를 마셨던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그 연인이 나타날 것만 같은 그런 막연한 기대랄까. 저 아파트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갔었다고 생각하니 지금 저 집에 살고 있는 그 누군가도 나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30년간의 공백을 극복하고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이 사람은 눈물의 여왕에 해인이 보다는 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