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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족이 되는 시간 Oct 15. 2021

헤어지기 위해 가족이 되었습니다

6. 두 아이는 홈스쿨링, 한 아이는 위탁가족입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학교를 나와 홈스쿨링을 했다. 첫째는 중학교 1학년 때, 둘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다. 두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학생이 학교를 안 다니는 건 생각도 못 했던 일이다.

낮에 아이들과 식당에라도 가면 ‘왜 학교에 안 갔냐?’ ‘오늘이 개교기념일이냐?’ 물어봤다. 처음엔 머뭇거리거나 멋쩍은 웃음으로 대충 넘겼는데 아이들이 내 반응을 살피고 있다는 걸 안 후부터는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예, 학교 안 다녀요.
집에서 공부해요!


순간 눈동자가 커지고, 비스듬히 돌아가는 고개며, 자잘한 입술에 잡히는 주름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나는 그 표정을 읽으면서도 굳이 덧붙여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국물을 한 숟갈 떠 넣고 입술에 꽉 힘을 주고 삼켰다. 꿀꺽. 


  

2017년 봄. 제주 유채꽃 플라자에서


그 후로도 수 없이 많은 표정들을 마주했고, 삼켰고, 무시했다. 그때마다 생각을 뒤집었다. 아이들이 엄마인 내 반응을 살피고 있으니까. 가장 민감한 촉수로 내 호흡과 억양, 표정과 눈짓을 읽고 있으니까. 나는 아이들의 엄마니까. 이 시간이 오히려 자양분이 될 거니까.


예, 학교에 안 다녀요.
집에서 공부해요. 


내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때, 아이들 표정도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편안해지고, 맑아졌다. 내가 진짜가 되었을 때 아이들도 진짜가 됐다는 걸 그때 알았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믿어주고 기다려 주기로 결심했을 뿐인데, 아이들은 편안하고 맑은 얼굴로 스스로 자기 진로를 찾기 시작했다.  



   

위탁가족이 된 후에도 그랬다. 처음엔 우리가 위탁가족인 걸 두루뭉술 넘기기도 하고, 혈연관계인 것처럼 연기도 했다. 혹여나 은지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은지는 민감한 촉수로 그런 내 호흡과 억양, 표정과 눈짓의 변화를 읽고 있을 게 분명했다. 두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오일장에서 토끼에게 인사하는 은지.


다시 용기를 쥐어짰다. 첫째, 둘째가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있을 때처럼. 어떤 오해를 받더라도 내가 믿어주기로, 내가 진짜가 되기로. 그럼 은지도 진짜가 될 테고 제 길을 찾으며 전진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은지를 위해 나는 고개를 쳐들었다.


예, 우린 위탁가족이에요. 


여전히 밝히고 싶지 않다. 위탁가족은 입양과 다르고, 위탁가족은 서류상 동거인이고, 위탁가족은 뭔가 색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 묘한 표정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위탁가족이다. 입양과 다르고, 서류상 가족이 아닌 '동거인'이다. 무엇보다 은지가 나를 읽고 있다.  

은지는 내 호흡과 억양, 표정과 눈짓까지 세세히 읽고 있다. 그래서 또 ‘내가’ 달라져야 한다. 또 용기를 내고, 또 믿어주고, 인정하고, 기다려줘야 한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라니까. 

2019년 제주도 신촌리에서


첫째 아이는 학교를 그만둔 다음 교육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국제 교육 정책’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둘째 아이는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은지의 언니가 돼서 그런지 나중에 아동·청소년 관련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지금은 학교 공부를 하면서 검정고시 아이들 멘토링 수업까지 봐주고 있다.


은지도 위탁가족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있지만, 이것을 통해 더 깊고 넓은 사람이 될 거라고 믿는다. 이게 은지의 강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바라기는 은지가 밤새도록 해도 가슴 뛰는 일을 찾을 수 있길, 약자의 편에 서는 진짜 ‘실력자’가 되길 기도한다.


험한 산길만 가는 인생도 없고, 곧은 평지만 가는 인생도 없다. 구불구불 올라갔다 내려가는 게 인생이고, 꺾이고, 휘몰아치는 게 인생이다. 세상 어디에도 한결같은 인생은 없다.

위탁가족도 있고, 입양가족도 있다. 한부모 가족도 있고, 다문화 가족도 있다. 다양한 가족들이 다양한 인생을 사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어떤 게 정답이고, 어떤 게 오답일까? 우리가 위탁가족인 걸 밝히고 지금 상황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건, 이게 우리의 현재 모습이기 때문이다. 멋쩍은 웃음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뭉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시간을 잘 버티고, 용을 쓰면서 잘 버티고, 비상할 것이다. 

은지는 뻑뻑한 날갯짓을 하다가 하늘을 훨훨 날아오를 테니까.

파란 창공과 흰 구름을 편안하고 맑게 가로지를 테니까.


오늘도 그날을 꿈꾼다.

  

                                                                 

                                                               『천사를 만나고 사랑을 배웠습니다』 놀(다산북스) 중에서.



* 가정위탁제도란? 

친부모의 질병, 사망, 수감, 학대 등으로 친가정에서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위탁가정에서 일정기간 동안 양육해 주는 제도다. 입양과 달리 (친부모의 사정이 나아지면) 친가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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