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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Oct 26. 2023

고3 면접을 도와주며 생긴 일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우리학교는 많은 아이들이 자신감이 없고 무기력한 편이다.  비평준화 지역이고 몇 차례 입학정원 수 대비하여 미달 나다보니 다른 곳에 떨어지고 갈 곳 없는 아이들이 많이 오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학업성취도나 시험 평균 성적도 낮은 편이다. 물론 이런 학교의 특성을 이용하여 좋은 내신을 받기 위해 입학하거나 전학오는 아이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은 소수이고 실제 대부분 아이들은 밀려서 오고 원거리 지역 출신이 많다보니 무기력하고 수업 시간에도 멍한 상태로 있는 편이다.

우스갯소리로 예전에는 "우리 학교에서는 수행평가 과제를 잘할 필요도 없다. 뭐라도 써서 제출만 하면 그 과목 3등급은 확보된다." 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이 아이들에게 수능은 그야말로 범접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수포자인 것은 당연했고 문해력이 부족하다보니  언포자들까지 정말 많았다. 뭐만 하면 포기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보니 아이들은 학교활동에서도 "난 안돼. 대체 내가 뭘 잘할 수 있겠어?" 하며 스스로 자포자기하는 애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아이들도 3학년이 되고 대학입시가 목전까지 다가오자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고 선생님께 자주 문의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늘 글에 소개할 A군도 이런 스타일의 아이였다.


어릴적 축구 선수를 꿈꾸면서 고2까지도 축구를 하다가 결국 그만둔 A군은 한동안 진로로 무엇을 정해야 할 지를 놓고 방황 중 이었다. 그러다 해외여행을 한번 다녀오고 나서 비행기에 부쩍 관심이 생겼고 항공사 직원에 꽂혀서 꼭 항공사 직원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문제는 면접이었다. 대학의 항공과는 상대적으로 생활기록부나 내신 성적보다 면접이 합불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은데 A군은 대학 면접을 불과 3주 앞두고도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이 대학을 희망하는 아이들은 100-200만원 학원비를 내면서 2-3달 전부터 면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A군의 항공과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는 해당 대학에서 미리 제시한 면접 예상 문제에 구체적으로 답변을 적어놓고 늘 시간이 날때마다 혼자 중얼 중얼거리고 외우며 연습하였다.


 또한 담당교사인 나와 면접연습을 할 때도 "자세를 바르게 하세요. 목소리를 크고 분명하게 하세요. 이 대학에 꼭 합격하고 싶다는 진심을 담으세요. 성실하고 반듯한 인상이 보이도록 하세요. 밝은 표정을 지으세요"

나의 조언을 귀담아 들으며, 피드백 된 자신의 단점을 고치고자 노력했다.


A군의 노력은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합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A군은 활기차게 움직였고 하루하루 늘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기 내내 멍하니 무기력하게만 있던 A군이 아니었다.


"선생님 면접이 너무 힘들고 부담스럽네요. 차라리 내신 100%인 전형을 낼 걸 그랬어요. 다른 애들은 준비도 많이 했다던데 제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요?"


"걱정마라. 지금 하는 모습만 봐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다른것보다 나는 네가 2주 전에 비해 표정, 태도, 목소리, 자세가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게 놀랍구나. 너도 스스로 많이 발전했다는것을 느끼고 있지 않니?"


A군이 볼멘 소리를 할 때마다 나는 A군을 격려했다. 그리고 만족했다. A군이 학교에서 뭐라도 배워서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나도 소위 가르칠 맛이 났던 것이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사교육의 바람이 드세다. 지역 학원의 대입면접 컨설팅만 해도 2시간에 30만원 비용이 들 정도다. 명문대학교의 경우 7-8시간 봐주면서 수백만원이 든다는 소문도 있다.


반면 학교에서는 한 아이당 8-9시간 교사가 개인 컨설팅을 해주면서 학교에서 받는 수당이 고작 10만원 남짓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교사가 아이들 면접 컨설팅을 대충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공교육 선생님들도 선생님들끼리 나름 공유하는 알찬 입시나 과거자료들이 있고, 선생님들도 매번 유튜브나 여러 면접 책들을 분석하며 아이들에게 각 대학 맞춤형 모의 면접을 실현해준다. 학교에서 하는 이런 좋은 면접 기회를 잘 모르거나 순번이 안되서 못받는 아이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주말에 면접이 끝나고 A군이 문자를 보내왔다. "선생님 제가 저희 조 아이들 중 제일 잘 본 것 같아요. 다른 애들은 많이 버벅였는데 저는 자신있게 또박또박 말했고 면접관님께서 저에게 잘한다고 격려도 해주셨어요. 주변 들어보니 몇백만원 쓴 친구들도 많은데 제가 제일 잘 본 것 같아요. 너무 기뻐요."


A군은 최선을 다해 면접을 준비했고 나도 틈만 나면 개인 시간을 할애하며 A군을 도와줬다. 그런만큼 좋은 결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A군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아닐까? '그래, 내가 학교에서 학업 성적은 좋지 않지만 선생님과 함께 면접 준비를 해가며 이렇게 발전했고 면접은 이런식으로 준비하는거구나 깨달은 점이 학교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 아닐까?'


무기력했던 A군에게 이번 학기의 경험은 정말 인상적일 것이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말했다.

"한 시간 동안 배운 것은 한 시간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지속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A군에게 이번 면접준비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으로 기억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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