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수능 탐구영역에서 선택과목의 선택자 수를 보면 학생들의 과목 선호도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사회탐구 과목 중에서 유독 학생들에게 찬밥 신세를 당하는 과목이 하나 있다. 바로 "경제"다.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올해 수능 사회탐구 과목 선택자 수 비율이다.
▲ 2022 수능 사회탐구과목 선택자 수
이 자료를 보면 사회탐구 영역에서 사회문화와 생활과 윤리 선택자가 압도적인 것을 볼 수 있다. 아마 두 과목이 암기할 내용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수험생들이 해당 과목은 공부하기 쉽다고 체감해서 그럴수도 있다.
반면 경제의 경우에는 응시자 수가 적어도 너무 적다. 생활과 윤리 선택자 수의 4% 정도 밖에 안된다. 참고로 올해 수능 수험생 응시자 수는 44만8천명 정도이다. 비율상으로 따지면 전체 수험생의 고작 1% 정도 학생들이 경제과목을 선택해서 시험을 본 셈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우리학교라고 다르지 않다. 이번에 2학년으로 진급하는 우리학교의 올해 경제과목 선택자 수를 보면 전교생 중 고작 25명이 선택했을 뿐이다. 이마저도 하마터면 인원수가 너무 적어서 폐강될 뻔 했다.
그럼 경제 과목 선택자 수는 왜 이렇게 적은 것일까?
그 이유는 우선 과목이 어렵게 느껴져서 막연한 거부감이 들어서 그럴 수 있다. 경제과목에서는 각종 경제현상과 여러 그래프들이 나오는데 이는 암기보다는 이해가 필요한 내용들이다. 또한 경제에 대한 심화된 이해를 위해서는 어느정도 수학 과목과의 연계성도 필요한데 이는 수학을 싫어해서 인문계를 선택한 학생들에게 외면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또다른 이유로는 내신이나 수능 선택자 수가 너무 적으니 학생들 입장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 있다. 특히 우리학교처럼 25명이 경제과목을 선택한 학교에서는 확률적으로 고작 단 1명만이 1등급을 받을 수 있다. 경제 선택자 중에 상위권이 2-3명이라도 있으면 곧바로 자신은 등급에서 계속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고등학교의 내신 선택과목 저조는 수능에서의 선택과목 저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현재는 상경계열 지망 학생들조차 경제 과목을 선택하지 않고, 전략적으로 학교생활기록부의 세부특기사항에 경제 관련 독서나 연구보고서 등을 통해 자신의 생기부 활동을 보충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으로 교육부에서도 이번 2022 개정교육과정에서 경제를 수능과목에서 제외하고 진로선택과목에 넣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교육부에서는 입시와 성적 부담을 그만큼 줄이면 해당과목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보다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지만 수능과목에서의 제외는 결국 경제과목의 위상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지금부터는 내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나 역시 인문계열 교사(역사)이지만 학창 시절에는 경제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없었고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중학교 때 배운 수요와 공급의 법칙, 생산 소비 분배 등의 개념이 무엇인지 정도 뿐이었고 이를 실생활에 응용하기는 커녕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경제는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부부 교사였던 나와 배우자는 결혼을 하고 처음 신혼 살림을 차릴 때 자금이 부족하여 25평의 구축 아파트에서 전세로 출발을 했다. 신혼에 대한 단꿈에 젖어 있고 처음 신혼집을 장만한터라 우리는 비록 전세였지만 신혼 자금을 들여서 멋지게 도배를 했고 입주 전에는 묵혀 있던 바닥과 욕실의 때까지 싹싹 닦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그저 열심히 땀 흘려 정직하게 번 돈만이 값진 것이라는 양가 부모님의 경제 관념을 물려 받았던 우리 부부는 어느 정도 근면하게 돈을 모으면 나중엔 집을 살 수 있게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큰 평수로 이사가는 것이 순리대로 다 될 것이라 믿었다.
한편 그 아파트는 당시에는 참고로 전세가와 매매가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 당시에는 집을 사기 위해서 추가 대출도 가능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 전세 때문에도 빚을 지고 있는데 매매를 위해서까지 추가대출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빚이라고 하면 사채, 대부업계 식의 부정적 이미지만 떠올리고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나쁜 것으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눈깜짝할 사이에 2년이 지났다. 그런데 당시 동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 아파트 단지의 주택가격이 갑자기 5천이나 오르더니, 집주인도 전세가를 5천이나 올려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집주인은 우리보고 올라간 전세가를 지급할 형편이 안되면 나가라고 요구하였다. 당시 집주인은 서울 목동에 50대 여성이었는데 다주택자로 갭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이런 집주인을 돈만 밝히는 악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집주인의 일방적 통보에 무척 억울해 했다.
" 다 쓰러져가는 집, 우리가 도배하고 빡빡 청소해서 이쁘게 만들어 놓았더니 이젠 나가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주인이 아닌 이상, 내가 아무리 집주인을 욕해봤자 현실이 바뀔리 만무했다. 또한 웃돈 5천이나 올려줄 여웃돈도 없었고, 있어도 5천이나 되는 웃돈을 내주기도 싫었던 나는 새로 이사갈 집을 알아보았다.
마침 그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학교 공문을 찾아보니 공무원 임대아파트 자리가 하나 나왔다. 이는 공무원들만을 위한 임대아파트로 비교적 저렴한 전세가로 안정적으로 장기 거주가 가능한 장점이 있었다. 특히 부부합산 최장 6년까지 전세가 가능했고, 평수도 33평의 준신축이라서 한번 집을 보고 난 뒤 나는 바로 마음을 뺏겼다. 그 이후 현재까지도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처음 결혼 후 지금까지 내가 집을 살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많았다. 처음 전세 신혼집을 구할 때 그 전세가에 몇천 정도만 추가 대출하면 충분히 그 집은 살 수 있었다. 또한 13-18년 당시에는 내 인근 주거지역인 수원과 동탄에서 미분양이 속출할 정도로 아파트 공급이 많았는데 청약만 하면 충분히 당첨되고 3-4억원 이내에서도 집을 살 수 있었다.
당장의 자금이 부족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분양받는다고 해서 바로 입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양부터 입주까지는 2-3년 정도의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기간동안 충분히 자금 마련할 시간이 있었고, 또 당시에는 LTV(주택담보대출)가 70%까지 나오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1억 정도만 있으면 2억 이상을 대출받고 내 집에서 실거주 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난 이런 기회조차 외면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저 집을 살 때 필요한 대출이 싫어서였다. 특히 대출 때문에 매달 은행에 내야 하는 이자는 뭔가 계속 내가 손해 보는 기분이었고, 나는 왜 하루라도 빨리 집을 사야 하는지 몰랐다.
그냥 계속 착실하게 돈을 모으고 어느정도 돈이 모아지면 대출을 아예 안받거나 최소화하고, 눈여겨봤던 집을 사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집값은 오를 수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조차 못했고 당시 새 집을 청약받아 기뻐하는 직장 동료들을 보며 굳이 무리하게 대출까지 받아가며 왜 집을 사야 하는거지 하는 의구심만 품었다.
나의 이런 생각은 18년도까지의 주택시장에서는 잘 들어맞는 듯 했다. 그때까지 수원과 동탄 지역은 공급과다로 인해 집값이 좀처럼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년 이후 공급물량을 어느 정도 해소한 수원과 동탄은 이후 19-20-21년에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어느새 주택가격은 분양가의 2배 심지어 3배까지 가격이 껑충 상승했다. 그때서야 난 주택가격에 깜짝 놀라며 대체 집값이 왜 올라가는 거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처음에는 뉴스나 인터넷 방송에서 말하듯 그저 집을 거주 목적이 아닌 투자 목적으로 보는 다주택 투기꾼들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체 집값이 왜 이렇게 갑자기 상승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이후에야 난 본격적으로 경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경제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두가지였다.
우선 물가나 집값은 꾸준히 우상향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계속해서 시중에 돈이 풀리면서 화폐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인데 경제활동에서 시중에 돈은 계속해서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BS 자본주의' 라는 책에는 이를 쉽게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전세계 돈이 100원인 어느 세계에서 A라는 한 사람만 살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A가 은행에서 100원 모두를 빌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우리가 돈을 빌린다는 것은 반드시 이자가 따라 붙는다. 그래서 A라는 사람에게 금리 5% 조건으로 은행이 돈을 빌려주었다면 상식적으로 전세계 돈이 100원 그대로이면 A는 절대 그 돈을 갚을 수 없다.
즉 A라는 사람이 돈을 모두 갚기 위해서는 정부 은행은 최소한 5% 이상의 돈을 더 발행하여 유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사람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실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대출 이자만큼 한국은행에서는 또 돈을 발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시장에 화폐는 갈수록 넘쳐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짜장면 값, 삼겹살 값 등이 일시적 하락은 있어도 전반적으로 물가가 좀처럼 떨어지기 힘든데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다.
두번째로 우리나라의 주택가격을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각 개인이 주택에 쏟아붓고 있는 돈이 상당하다. 사실 순수 자기 현금으로만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많지 않다. 대부분이 대출을 끼고 집을 사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자산은 주택에 묶여 있다.
이런 상황에 우리나라 주택 가격이 30% 이상 폭락하게 된다면? 아마 대출을 많이 한 사람(영끌)은 엄청난 손실에 은행으로부터 대출자금 회수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자살자가 속출할 것이다. 또 전체적인 자산가치하락에 전국민의 경제 활동도 크게 위축될 것이다. 가구 자산의 대다수가 주택에 묶여있는 한국 경제의 현실상, 정부가 앞장서서 집값을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외에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경제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많다. 우리가 직장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자아실현과 자기 보람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돈을 주지 않고 무보수로 막노동 일을 시킨다고 하면 과연 무보수로 지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한 우리가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음식을 사먹고,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관리비를 내고,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머리를 커트하고, 우리가 밖에서 하는 활동 중 어느것 하나 돈이 안드는 활동이 없다.
즉 이 사회의 모든 것이 경제 활동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이런 사회와 환경 속에서 경제라는 과목만큼 실생활에 유용한 과목이 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사농공상의 신분 중 상을 천시하는 유교문화의 전통이 남아서인지 돈이나 투자 등 의 경제 활동에 대해서는 아직도 위험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속으로는 1만원을 본인한테 준다고 했을 때 누구 한 명 안받을 사람이 없을텐데 말이다.
너무 지나치게 물질을 밝히는 물질만능주의도 좋지 않지만 현실이 경제활동이고 자본주의이면서 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단적인 예가 바로 "나" 아닌가?
그 사이 아이가 둘이나 태어났는데 치솟는 주택가격에 내집 하나 제대로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과 무기력함이 수개월간 지속되었다. 다행인 것은 이후 꾸준히 청약에 도전하여 마침내 내집 하나는 운좋게 분양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젠 우리가 경제에 솔직해질 때다. 한편으로 나같은 경제적 바보가 사회에 진출하여 또다시 절약 저축만이 진리라 믿으며 "주택" 과 "물가"에 호되게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제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생각한다.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도 경제 교육의 강화는 필요한데 오늘날 우리 교육의 현실은 경제를 알면서도 일부러 숨기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