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교육 선행금지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6. 사교육 시장만 부추키고 있는 선행금지법

by 한동훈

작년 담임반 학부모와 상담할 때의 일이다.




"선생님. 우리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첫시험(1차 지필평가)을 봤는데 성적이 너무 낮게 나왔어요. 아이가 멘붕 상태가 되버렸어요......그동안 중학교 때는 평균 90점 정도 나오고, 못해도 80점은 나왔거든요. 우리딸은요 그동안 정말 학교 공부에만 충실했어요. 그런데 이번 시험 성적을 보니까 평균 60점 정도밖에 안되겠더라고요. 아이 평생 이런 점수는 처음이라 아이가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어머님, 고등학교는 변별력 때문에 시험이 다소 어렵게 나옵니다. 아이가 첫 시험인데 문제도 어렵게 나오다보니 당황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다음부터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보네요."



"선생님, 어쩌면 좋죠? 교육부나 학교에서는 선행하지마라. 사교육 안다녀도 충분하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예습, 복습만 성실히 해라 라고 해서 저는 우리 아이 학원 안보내고 우리아이는 정말 그렇게만 공부해왔어요. 그런데요 이번에 딸아이한테 물어보니 성적 잘 나온 아이들은 대부분 OO학원 내지는 XX학원 다니고 있고, 그 학원에서는 지난 겨울방학 때 고1 국영수 과정을 다 선행을 했다하더라고요. 그래도 전 스스로 공부하는 우리 딸아이를 믿었는데 아무래도 안되겠죠? 아이는 열심히 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학원을 보내야 할 것 같아요."


"......"




우리는 보통 선행학습을 안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현재 학년의 배우고 있는 과정도 완벽하게 알지 못하면서 아이에게 선행을 시키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 라고 생각을 한다. 또한 선행을 한 아이들은 다시 본 수업시간이 되면 선행 때 배웠던 것을 복습하는 셈이 되는 것이라 본 수업을 지루해하고 수업시간 집중력도 약해진다고 생각한다.


유튜브의 교육관련 영상들에서도 "선행"에 대해서는 안좋게 말하는 영상이 많다. '선행은 아이들 공부습관을 나쁘게 만들고 아이들 공부 정서도 나쁘게 한다. 선행은 조바심을 가지는 부모나 어설프게 공부하는 아이들이 하는 짓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해당학년에 배웠던 것을 완전학습해라' 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언론이나 각종 교육영상을 꾸준히 보다 보니 내 머릿속에는 '선행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나쁜 것' 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수년간 담임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조회시간에 '선행하지 마라. 차라리 선행할 시간에 지난번 배웠던 것 복습이나 더해라' 고 자주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 학부모와의 상담은 나의 이런 인식에 변화를 줄 만큼 가히 충격적이었다. 실제 그 학부모와 상담 후 이번 1차 지필 평가때 성적이 잘 나온 아이들과도 곧바로 상담을 가졌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정말 그 학부모 말대로 각자 다니는 학원들에서 선행을 미리 해줘서 어려운 이번 시험에 대비하기가 수월했다는 것이다.


대체 단추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https://www.law.go.kr/%EB%B2%95%EB%A0%B9/%EA%B3%B5%EA%B5%90%EC%9C%A1%EC%A0%95%EC%83%81%ED%99%94%EC%B4%89%EC%A7%84%EB%B0%8F%EC%84%A0%ED%96%89%EA%B5%90%EC%9C%A1%EA%B7%9C%EC%A0%9C%EC%97%90%EA%B4%80%ED%95%9C%ED%8A%B9%EB%B3%84%EB%B2%95


실제 공교육인 학교 현장에서는 위의 선행금지법안이 나온 이후로 학교에서는 절대 선행을 가르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국영수 선생님들이 더욱 신경을 쓰는 편이다. 해당 선생님들은 본인들이 시험문제를 만들어놓고도, 혹시나 출제한 것들이 선행에 걸리거나 연관된 것은 아닌지 교차 검토를 하며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신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에서는 이렇게 선행에 대한 법을 칼 같이 지킨다 해도, 사교육계에서는 거의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교육에서는 선행을 한다. 특히 요즘의 사교육계는 예전보다 한층 더 진화했다. 정말 분석적이다. 학원에서는 선행부터 시작해서 본 수업때도 계속해서 반복학습을 돌린다. 그러다보니 해당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같은 내용을 2-3번 반복해서 배우는 효과가 있다. 또 학원에서는 해당 학교의 몇 개년 중간/기말 시험 문제지도 미리 분석해 놓는다. 또한 예상 출제 문제들도 만들어서 애들에게 풀게 하여 적응력을 키운다.


심지어는 금년에 어느 선생님이 해당 학교에 전입해왔으면 연결망을 통해 그 선생님의 시험문제 스타일까지 분석해서 이번 시험은 쉬울것/어려울것, 이번 시험은 이 선생님의 스타일로 보건대 이런 유형이 나올것 이란 것까지 미리 예측 해놓는다.




물론 학교 선생님들 중에도 학원의 이런 속성과 패턴을 알고 있는 분들이 꽤 된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최대한 수업 시간에 가르쳤던 것 중에서, 또 과거의 시험 문제와는 다르게 문제를 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시험문제를 다르게 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어차피 같은 학년에서 가르치는 과목 내용은 매년 반복이고 동일하다. 교육과정에서 말하는 중요 포인트도 크게 변함이 없다. 그럼 선생님들은 예전과 동일한 내용, 동일한 중요 포인트 내에서 애들을 가르쳐야 하고 시험 문제도 결국 그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 결국 올해 시험 문제도 한정된 제약 조건 속에서 과거 시험문제와 비슷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선행을 하는 아이들은 과연 집중력이 약할까?



아니, 적어도 우리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은 학원에서 한번 배웠던 내용을 학교에서 배우니 저절로 복습이 되고 기억이 잘 된다고 했다. 또 문제도 미리 풀어본터라 어려운 문제에 대한 거부감도 덜했다. 반복하니까 익숙해지게 되고, 익숙해지니까 어려움이 없고, 어려움이 없으니까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선행의 폐해는 적어도 우리반 아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https://m-edaily-co-kr.cdn.ampproject.org/v/s/m.edaily.co.kr/amp/read?amp_gsa=1&amp_js_v=a8&mediaCodeNo=257&newsId=03637526628915096&usqp=mq331AQKKAFQArABIIACAw%3D%3D#amp_tf=출처%3A %251%24s&aoh=16455933291196&referrer=https%3A%2F%2Fwww.google.com - https://www.edaily.co.kr/news/read?mediaCodeNo=257&newsId=03637526628915096


선행금지법은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가?


정부는 선행을 법으로 틀어막고 공교육에서는 선행을 하지 말자고 부르짖고 있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오히려 정부 지침대로 선행을 하지 않거나 사교육을 다니지 않은 아이들이 고등학교의 어려운 시험 문제에 적응하지 못한 채 피해만 보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이제는 법이 잘못되었다면 고쳐야 할 때다. 정부가 겉으로만 '선행금지' 를 외치고 사교육 시장에서 하는 선행을 암묵적으로 눈감아준다면 학생과 학부모는 말과 행동이 다른 정부와 공교육을 결코 신뢰할 수 없을 것이고 학부모의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 의존도는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공교육이 신뢰받지 못하고

갈수록 사교육 의존도만 높아지는 나라



이게 과연 정부가 원하는 공교육 선행 금지법 이후 교육의 바람직한 모습인가?



이제는 보다 심도있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가 아닌가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