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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개학했다.

#9.작년 담임반 아이들이 모두 떠나 보내며..

by 한동훈


이제 3월이다. 학교가 개학했다.


일반인들이 느끼는 새해는 2022년 1월이지만, 내가 느끼는 새해는 2022년 3월이다. 왜냐하면 이때가 되어서야 학교 교사들은 업무와 담임반이 바뀌고 교무실도 자리이동을 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2022년이 되었구나 하는 것을 교사는 이때서야 실감하는 것이다.


그렇다. 학교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나 연말, 신년은 사실 정신이 없다. 아이들은 기말고사가 끝나고 한창 축제준비나 크리스마스를 누구랑 어떻게 보낼까 행복한 고민에 빠지지만, 교사들은 뒷방에서 이 아이들의 생기부를 어떻게 쓸까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아이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아이가 최대한 잘되도록 하고 싶은게 교사의 마음이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도 매번 아이 한명 한명의 생기부에 심혈을 기울인다. 글 잘 쓴다고 누가 칭찬하거나 돈 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잘써주고 싶다. 이게 가르친 아이들에 대한 정 때문인지 내 직업적 사명감 때문인지 정확히 뭣 때문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생기부의 항목당 주어진 글자수는 500자 내외다. 이 짧은 범위 내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의 특성과 장점을 최대한 돋보이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그러다보면 머릿속에서 생각이 안 떠오른다. 교무실에서 답답한 마음에 카누 커피가 한잔 두잔 계속 계속 내 입에 들어가고, 나중엔 한사발 벌컥벌컥 원 샷을 하고 글을 써야 적성이 풀리기도 한다.


이렇게 겨울방학 전까지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내가 한살을 더 먹었는지도 사실 몰랐다.


"쌤! 벌써 내일이면 2022년이에요. 제가 18살이라니 설레요."


"어? 그랬구나 내년이면 2022년이구나. 하하하"


교사가 되고 나서 매년 이 시점엔 너무 바쁘다보니 내 나이 인지 감각은 갈수록 무뎌져 갔다. 난 해만 바뀌었는 줄 알았지, 이젠 내가 한살을 더 먹었음은 겨울방학 때 와이프랑 밥먹으면서 이야기 할때야 겨우 알게 되었다.







그러다 3월이 되었다.


작년 1학년 담임반이었던 내 아이들이 모두 2학년으로 진급하면서 나를 떠나갔다. 학교가 개학하고 작년 1-9반 교실에는 이 아이들이 이제 없고 새로운 아이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갑자기 회상에 빠졌다.



작년 우리반 아이들은 상당히 순하고 성실하면서도 내성적인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이들끼리도 친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나 역시 이 자리에서 고백하자면 내 성격은 내성적이고 말수가 없고, 사람 만나는 것을 딱히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내성적인 아이들과 내성적인 담임이 콜라보레이션이 되어 우리반은 한동안 어색함이 흘렀다. 가끔씩 분위기를 바꾸어보고자 내 썰렁한 개그에도 아이들은 엷은 미소만 지었을 뿐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한동안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일수록 또 친해지면 큰 잡음없이 자기들끼리 잘 뭉치는 법이다. 말수가 적다는 것은 한편으론 항상 상대방 입장을 한번 더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차근차근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옆 친구들에게 접근했고 각 아이들의 특성을 파악하면서 조심스럽게 친해졌다. 그래서 작년 우리반은 아이들끼리 1년 내내 서로 신중하게 배려하느라 큰 다툼 한번 없었다. 내 교직 생활에 이런반은 처음이었다 ^^



나는 개인적으로 이 아이들이 1학년 때 학급적응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 것을 고려해 2학년 진급할 때는 되도록 같은 반에 많이 편성되기를 바랬다. 그래야 3월에 좀 더 빨리 적응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진급 반편성을 보니 정작 우리반 출신들이 가장 많이 뿔뿔히 흩어졌다. 한반 당 2명, 3명 뭐 이런식으로.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이다보니 아직은 타반 출신 아이들에게는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작년 담임반 아이들이 급식먹으러 가는 것을 보면 꼭 작년 우리반 아이들끼리만 여전히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아이들에겐 타반 출신들은 아직은 낯설고 어색한 미지의 존재들인가 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우리반 출신 아이들이 2학년때도 큰 탈 없이 성공적으로 학교생활을 잘 해나가리라 믿는다. 톡톡 튀지는 않고 말 수는 없지만 그 정적이 흐르는 동안에도, 우리반 아이들은 항상 한번 더 생각해서 타인에게 말하는 배려심 깊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배려심이 깊다보니 다른 아이들과 큰 갈등이나 부딪힘이 없을 것이다.


또 늘 성실하고 우직하게 공부를 하는 예쁜 아이들이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돋보이고 꽃을 피울 것이라 믿는다. 나는 공부에도 성실하고 부지런한 습관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항상 성실성을 강조했다.





끝으로 원래 3월은 봄을 맞이하고 좀 활기차야 하는데 뭔가 좀 아쉽고 허전하다.

올해는 비 담임이라서 뭔가 내 아이들이라는 소속감을 느낄만한 아이들이 없어서 더 그런가 보다.

그래서 학교 개학 후 주말이 되니 떠나 보낸 아이들이 더 생각나는 밤이다. 조금 오버하자면 정들여 키워 보냈던 딸과 아들들 다른 집안에 시집, 장가 보낸 기분이다.




뭔가 좀 아쉽지만 친정어머니 찾아오듯 그래도 쉬는시간, 점심시간에 나를 잊지않고 직접 교무실까지 찾아와 "쌤" "쌤" "한참 찾았잖아요" "여기 계셨어요?" 하면서 찾아오는 작년 담임반 아이들 덕분에 미소짓는다.


나를 찾아온 고마움과 수고로움에 이런저런 말들을 주고 받으면서 손에 교무실 과자라도 하나 주면서 덕담 한마디 해주며 떠나보내고 싶은게 내 마음이다.








늘 건강하고 2학년 올라가서도 다들 목표한 바 잘 이뤄내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내 욕심이긴 하지만) 내가 허전하지 않도록 늘 자주 마주치고 자주 얼굴을 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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