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 그럼 결국......세자 저하가 죽게 되는 겁니까?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되는겁니까?왜 세자 저하가 아니라 정안군이 되는 겁니까? 정안군은 절대로 왕이 되서는 안되는 사람입니다. 정안군은 그저 맹목적으로 권력을 탐하는 인간입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용상에 앉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용상에 앉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사람입니다. 왜 그런자의 손에 조선의 운명이 맡겨져야 하는 겁니까? 왜!!
이방원 : 숙부님 !(정도전을 가리킴). 숙부님이 절 그런 사람으로 치부하셨기 때문에 지금 이순간을 맞이한 겁니다. 숙부님이 절 조금만 다른 눈길로 쳐다봐주셨다면 전 이렇게 숙부님의 목에 칼을 겨누지 않았을겁니다. 어떻게든 숙부님을 살리고자 노력했을겁니다.
정도전 : 왕좌에 대한 탐욕으로 눈이 뒤집힌 짐승을 발견했는데 어찌 고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죽느냐 사느냐는 제 관심밖에서 멀어진지 오래입니다. 전 오직 맹수의 발톱아래로 떨어진 이 조선의 운명이 억울하고 분할 뿐입니다.
정도전 : 단 한번도 정적을 제거하는 일 앞에서 머뭇거려본 적이 없습니다. 평생을 냉철한 정치가로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이렇게 마지막에 큰 실수를 하는군요. 정안군......지켜보겠습니다. 앞으로 정안군이 어떻게 하시는지, 하늘이 왜 정안군을 선택했는지......베십시오. 전 이제 떠나겠습니다.
이방원 : .......
정도전 : 일생을 다바쳐 돌탑 하나를 쌓았는데......마지막 돌 하나를 올려놓지 못하고 죽는구나......날 죽이는 사람의 가슴에다 그 돌맹이 하나를 남겨놓고 갑니다.
정도전은 결국 이방원의 칼에 최후를 맞이한다.
한국사를 가르치다 보면 수업시간에 역사의 라이벌로 정몽주vs정도전, 정도전vs이방원을 언급한다. 전자가 쓰러져 가는 고려왕조를 지킬 것인지, 새 나라를 세워 새롭게 출발할 것인지에 대한 대립이었다면 후자는 조선을 건국하는데 일등공신이었던 이방원과 정도전의 국정 운영에 관한 대립이다.
먼저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국가를 꿈꾸었다. 세습 군주제 하의 왕은 반드시 현명하다는 보장이 없을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왕이 만민을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재상은 일반 선비의 신분에서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현명한 사람이 맡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재상이란 ‘위로는 임금을 보필하고, 아래로는 백관을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위해 재상에게는 강한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즉, 인사권⋅군사권⋅재정권⋅포상⋅형벌권 등 막강한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한편으로 정도전은 이런 권한과 책임 때문에 재상의 자질도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정도전이 꼽은 재상의 자질에는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함, 임금을 바르게 함, 사람을 가려서 씀, 일을 공정하게 처리함 등이 있다.
반먄 이방원은 강력한 국왕중심의 국가를 꿈꾸었다. 그는 왕조 국가에서는 왕이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다. 왕이 권력이 없으면 그 왕조는 신하들끼리의 권력 다툼이나 왕 자리를 노리는 또다른 세력끼리의 다툼으로 계속해서 혼란한 상황만 연출되고 왕조가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에 이방원은 1,2차 왕자의 난에 모두 성공하고나서도 정적 제거에 열을 올렸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처남 2명, 심지어 세자(세종)의 장인까지 제거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6조 직계제를 실시하여 재상 중심의 정치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국왕이 주도적으로 정치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었다. 태종 이방원 때의 무자비한 숙청 때문에 세종대에는 비교적 조선이 큰 정치 혼란 없이 안정된 국정 운영이 가능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는 항상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정도전은 실록에 나와있는대로 간신인가요?"
"이방원이 죽고 정도전이 살아남았다면 과연 조선의 정치는 어떻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정도전의 정치운영방식과 이방원의 정치운영방식 중 여러분은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보나요?"
여기에 대한 아이들 의견은 이렇다.
우선 정도전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실록에 나와있는 간신으로 바라보는 이는 거의 없다. 정도전 역시 조선이라는 나라를 어떻게든 잘 운영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렇기에 간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가 '승자' 의 기록이다보니 정도전이 간신으로 매도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도전의 재상중심 정치나 이방원의 국왕중심정치에 대해서는 누가 더 나은가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드라마 속 정도전은 권력만 탐하는 이방원이 왕이 되면 조선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질까 걱정했지만, 실제 이방원은 강력한 국왕 중심의 국가를 구축해 놓았고 문화군주 세종의 길을 미리 닦아놓았다는 점에서 아이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정도전의 재상중심정치는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이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실제 이방원의 우려대로 권력다툼으로 인한 정치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 보는 의견도 있었고, 정도전의 생각이 잘만 실천된다면 조선은 능력있는 재상이 계속해서 출현하여 국가를 발전시켜 이방원 때 보다 더 나을 것이라 바라보기도 하였다.
나 역시 이 둘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럽다.
특히 정도전의 재상중심정치는 미완성으로 끝났기에 이방원의 방식과 비교해 어느 것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힘들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 정도전, 이방원 모두 각자의 방식 으로 조선이라는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방식은 달라도 둘다 잘해보고자 하는 의도는 같았다. 즉 누구는 맞았고 누구는 틀렸다는 이분법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간혹 우리는 내가 지지하는 누구는 선하고 남이 지지하는 누구는 악하다고 정치인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정치인도 사람인 이상 이 세상엔 완벽히 선한 사람도 없고 완벽히 악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정치인으로 출마할 때의 마음 그 자체는, 누구든 먼저 사리사욕을 탐하기보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 국가를 잘 이끌어보고자 하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투표로 정치인을 결정할 때에도 가장 중요하게 바라볼 점은 그 후보의 공약과 실천 사항이 나에게 얼마나 와닿고 진정성있게 다가오느냐 하는 것을 봐야지, 단순히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저 사람이 되면 세상을 망칠 것이다는 프레임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정당정치를 하고 있고 좁게 봐서는 양당정치가 진행 중이다. 간혹 대통령이 된 여당이 다수 국민들 의견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그즉시 야당과 시민단체, 국민들은 이에 반발하고 여당의 행동을 철회시킬 수 있다. 대통령이 집권한 여당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늘 야당과 소통해야 하고 국민들의 의견과 눈치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으로 정권이 바뀌었다고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안타까워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 역시 잘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을 것이고 앞으로의 차기정권 행보도 그래서 우선은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권교체' 가 됨으로써 이번 정권은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앞으로의 차기정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 출마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국민들의 니즈(needs)를 파악하고, 발전적이고 현실성 있는 정책을 펼쳐야 그 다음 정권으로의 연장이 가능한 것이지 국민을 저버리고 국민의 뜻에 반하는 정책을 자주 펼치면 언제든 차기정권도 권력을 잃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차기 정부가 잘 운영되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국민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인 이상, 정권연장과 정권교체의 열쇠는 항상 국민이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 정부든 차기 정부든 언제나 국민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다. 국민이 주인다운 모습만 잘 유지한다면 정부는 언제나 긴장하면서 정책을 펼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에 부합하는 정책을 펼치고자 계속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이것이 차기 정부에 대해 국민이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