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집중해서 듣는 이유도 순수한 학문탐구 목적보다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의 이유가 절대적일 정도로 고등학교 시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따라서 매학기 시험 문제를 2번 출제해야 하는 나 자신(교사)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평소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공정하게 시험문제를 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시험문제에 큰 잡음이 없을까?'
사실 이런 문제는 시험문제를 내야 하는 교사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다. 추가로 여기에 고등학교 선생님들이라면 더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석차와 변별력' 이다.
절대평가방식(점수에 따른 ABCDE 평가제)인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의 대다수 과목은 상대평가(9등급제) 방식이다. 수시모집을 통해서 대학 가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특히 상위권 학생들(1,2,3등급 라인)을 변별하기 위해서라도 시험문제에는 소위 'Killer 문항' 이 들어간다.
수능에서 소위 논란이 되었던 문제들도 아마 이런 '킬러 문항' 들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킬러 문항을 제작할 때는 특히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혹시나 너무 지엽적인 문제를 내는 건 아닌지,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문제는 아닌지 꼼꼼이 살펴봐야 한다.
나는 평소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는 편이다. 내가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는 첫번째 이유는 변별력을 높여 아이들의 석차를 가리기 위해서이다.
2020년 당시 1학기를 육아휴직하고 2학기 때 현 학교를 복직했었다. 그런데 그 이전 내 전임자 선생님께서는 1학기때 아이들 상당수가 시험을 너무 잘 봐서 석차를 변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충을 토로하셨다. 특히 한 반에 지필평가 100점자들도 몇명씩 나와서 1등급을 분별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2학기 때는 시험문제를 되도록 어렵게 내기로 말이다.
곧바로 일과 중에 시험문제 제작에 착수했다. 먼저 20년 동안의 역사 기출문제를 쭉 뽑아 놓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오답률이 높았던 문제들만 선별했다. 그리고 이를 응용하여 새롭게 문제들을 만들었다.
특히 이전 문제들이 특정 역사적 주제나 역사적 사건에 맞추어 시험문제를 냈었다면 이번에는 특정시기 사이에 있었던 일을 묻는 문제들로 유형을 바꿔 놓았다.(참고로 역사 문제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가장 어렵다.)
이런 유형은 최근 수년간 우리학교 기출문제에서도 많이 안 나왔던터라 이런 문제들을 다수 접한 아이들은 아마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다만 그러면서도 시험문제에 '내가 가르치지 않았던 내용은 들어가지 않았나? 교과서나 학습지에도 빠져 있는내용은 아닌가?' 꼼꼼하게 살폈다.
드디어 대망의 시험날.
결과는 어찌되었을까?
아이들 시험지에는 수많은 소나기가 그려졌다. 전교 평균은 15점 정도가 내려갔고 이전 시험에 그토록 많이 나왔던 만점자가 전교에 겨우 단 한 명 나왔다.
결국 이렇게 되니 내가 걱정했던 '석차와 변별력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물론 높은 점수에 익숙해있던 대다수 아이들은 자기의 예상치 못했던 점수에 당황하며 불만이 가득했겠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물었다. 시험 문제를 왜이렇게 어렵게 냈냐고.
나는 대답했다. 그건 교사의 재량이라고. 수업시간에 언급했거나교과서나 학습지에 제시된 내용이라고.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사실 우리학교는 이 동네에서 다수 학원가가 포진한 나름 학군지 학교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애들 대다수가 방과후에 밤 10시까지 학원에 다니고 있고 평소 공부량도 상당하다. 그리고 사설학원에서는 매년 우리학교의 기출문제를 분석하여 아이들에게 미리 적응력을 길러놓는다. 그래서 시험 문제를 작년유형과 비슷하게 내거나 쉽게 출제할 경우 전체평균이 크게 올라가 아이들 등급을 가리기가 힘들어진다.
이는 내 과목 뿐만 아니라 국영수사과 다른 과목에도 아마 해당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체적으로 우리학교 주요과목의 시험문제는 계속 어렵고아이들도 왠만해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가 힘들다.
내가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는 두번째 이유는 내 과목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고한편으로 내 과목에 대한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이런 경우가 있었다.
상위권 학생들 중 상대적으로 영어 수학이 공부할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 일부 아이들은 내 수업시간에 뒷자리에 앉아서 몰래 영어 수학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이 친구들은 내가 가르치는 '역사' 는 학습지와 교과서만 살펴보고 대충 내용 정리만 해두어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사실 난 이런 류의 학생들을 시험으로 '응징' 하고 싶었다. 특히 수업시간에 항상 바른 자세로 앉아서 교사의 수업을 경청하고 교사의 질문에도 곧잘 답변을 잘하는 성실한 학생들과 뒷자리에 앉아서 눈치를 살피며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불성실한 학생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등을 두고 싶었다.
그래서 수업을 위해 내가 정리한 내용들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폈고, 한편으로 내 수업시간에 성실이들이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집중해서 수업을 들었을 때를 생각하며 그들이 최대한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시험문제를 설계하고 출제했다.
그리고 결과는 내가 희망하는대로 나왔다. 같은 상위권 학생이라도 수업을 집중해서 들은 아이들은 수업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어려운 문제도 곧잘 맞춘 반면, 수업을 귀담아 듣지 않고 다른 공부를 했던 아이들은 어려운 문제를 반타작하는데 그친 것이다.
나는 시험으로 이 아이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역사는 그렇게 만만한 과목이 아니다. 어렵게 내고자 한다면 충분히 어렵게 낼 수 있는 과목이다. 내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 그러니 딴짓하지 말고 수업 열심히 들으세요.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나의 이런 시험문제 난이도 올리기 전략은 절반의 효과가 있었다. 우선 성실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계속 수업을 잘 들었다. 그 아이들 입장에서는 평소 성실하게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최고로 시험 잘보는 방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을 것이다.
반면 상위권이면서도 뒤에서 다른 공부를 하는 소위 눈치파들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한 쪽은 내 시험이 교과서나 학습지만으로는 커버가 안되는 것을 깨닫고 드디어 바른 자세로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난번 떨어졌던 성적을 만회하고자 내 수업 한마디 한마디 중요하다 싶은 것은 필기하고 정리하는 습관도 보여주었다. 반면 내 과목을 딱히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아이들은 이제는 내 시험 문제에 대한 반감까지 생겨버려 아예 '역사'를 포기하고 손 놓아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계속 뒷자리에 앉아 평소 하던 수학공부에 더 열중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물론 이젠 아예 손까지 놓았으니 성적은 더 안드로메다가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게 되니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건 그 아이들 선택사항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다.'쟤네들이 과연 내가 가르치는 과목이 역사가 아니라 영어나 수학 과목이었더라도 저렇게 포기하는 행동을 했을까.' 좀 씁쓸했다.
물론 현행 교육정책에서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는 것은 충분히 논란의 소지가 있다. 시험문제가 어려워지면 학업 포기자가 늘어나고 아이들도 학업에 대한 흥미나 성취감도 상실하기 쉽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교육청에서는 각 학교에 시험문제를 쉽게 내라는 간접적인 푸시(PUSH)가 들어오기도 한다. 또한 평가란게 사실 지필평가(시험)하나만 있는게 아니고 논술평가나 기타 다른 종류의 수행평가도 충분히 있는데 왜 굳이 지필평가만 어렵게 내어 변별을 하냐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 역시 여기에 대해 반박할 만한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편으로 논술평가나 수행평가로 상위권 아이들을 변별을 못했다면 이는 그런 수준높은 평가방식을 만들지 못한 내 능력부족이오 내 노력부족이라고 해도 딱히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잠시나마 내 목소리를 내자면 내가 가르치는 역사 과목의 특성상 논술문제로 상위권 학생들을 변별하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이 아이들은 미리 제시된 수행평가 기준에 큰 어긋남없이 글을 잘 썼고 근거의 타당성이나 글의 논리성 등은 사실 평가자의 주관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평가기준이었다. 변별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점수를 깎고자 하면 이 아이들은 왜 자신이 점수가 깎여야 하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요구했고 때론 자기 글이 점수가 깎이지 않아야 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난 이런 문제로 진땀을 뺀 적도 몇번 있었다.
한편 다른 수행평가의 방식도 쉽지 않았다. 예전 토론식 수업을 선호했던 동교과 선생님과 같이 근무할 때는 그 선생님 취지대로 아이들에게 수시로 발표와 토론을 시키며, 발표횟수나 수준높은 발표준비로 수행 점수를 매기곤 했었다. 물론 그 결과 목소리가 크고 제법 역사에 관심있는 친구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역으로 평소 조용히 공부하면서 발표에 익숙치 않았던 아이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여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좋은 수행점수도 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수행 결과가 이렇게 되니 이 아이들은 갈수록 내 수업시간에 위축되고 역사과목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사람마다 각자의 특성이 있고 한편으로 조용하면서도 자기 할일을 할 줄 아는 이 아이들도 살리고 싶었는데 안타까웠다. 발표 수행평가의 맹점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성적에 예민하고 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을 수행이나 논술평가로 석차를 정한다는 것은 내 개인적으로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변별을 위해서는 만점의 기준에서 내 주관까지 일부 가미하여 계속해서 점수를 깎아 내려야만 한다는 것인데 이는 아이들에게도 개인적으로 미안해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순간부터 수행평가만큼은 절대평가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 즉 평가기준에 부합하고 큰 어긋남이 없으면 되도록 점수를 주기로 한 것이다. 대신 각자의 수행활동에 대해서는 구별을 하여, 보다 많은 성실성과 활동량이 담겨있는 학생의 교과세특이 더 돋보이도록 글을 써줬다. 한편으로 수행을 이렇게 운영하다보니 지필은 결국 어렵게 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단순히 '시험' 이라는 도구 하나만으로 아이들 줄을 세우고 그 아이의 노력과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많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현행 교육 방법상 등급과 석차를 매기는데 이 방법만큼 효율적이고 덜 불만이 생기는 방법도 아직까지는 딱히 없다.
'지필시험을 어렵게 내는 것이 안 좋은 건가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라고 대답하고 싶다. 교육과정이나 학습 목표에 부합하고 수업시간에 되도록 집중하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시험이 설계되어 있다면 나는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생각이다. 한편으로 시험이라는 평가도구가 너무 쉽게 출제가 된다면, 과연 아이들이 열심히 또 깊이 있게 공부할까 하는 의문도 든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 과목에 전력을 다해 공부를 하는 이유는 '그 과목을 내가 유달리 잘하고 흥미있어서' 일 때도 있지만, 그 과목 시험을 보고 자신의 실력에 대한 한계와 좌절감을 느끼고 그 과목을 미친듯이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하는 때도 있지 않았던가. 공부를 못했던 나는 상대적으로 후자가 많았고 한편으로 그런 과정 속에서 난 공부와 교과목의 마력에 빠져들기도 하였다.
내 과목에 진심을 다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나는 앞으로도 지필시험 문제에 대해서 더욱 더 많은 공을 들이고 더욱 더 많은 신경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