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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마이 Jul 20. 2022

에테르는 어째서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리뷰


<릴리 슈슈의 모든 것>


(All About Lily Chou Chou, 2001)


일본/145분/드라마


감독 : 이와이 슌지


출연 : 이치하라 하야토, 아오이 유우 외







***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본인의 유작을 정한다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동진 평론가 역시 이와이 슌지 감독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이 작품이라 말했다. <러브레터>의 감정선과 연출이 너무나도 뛰어났기에, 또, 이번에 감명깊게 본 <애프터양>에서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대한 장치가 곳곳에 숨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는 '다크 이와이 월드'의 대표작이라 하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그래서 더욱 커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없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 말하고자 하는 감정, 괴로움, 공포는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달된다. 이 지점은 역시나 이와이 슌지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에 다시 한 번 더 감탄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는 정말 훌륭한 감독이자 이야기꾼이다. 인물들의 고통은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그 안에서 '릴리 슈슈'의 노래들과 '에테르'를 향한 그들의 갈망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도 스며드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릴리 슈슈'의 신곡 '호흡'을 궁금해하고, 어느새 함께 '에테르'를 찾아 떠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감정 역시 굉장히 유려하게 그려냈다. 누군가의 사춘기는 <러브레터>가 아니라 <릴리 슈슈...>였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사춘기는 어땠는가? <러브레터>와 닿아 있는가, <릴리 슈슈...>와 닿아 있는가? 우리 모두가 겪은 사춘기인만큼, 이와이 슌지의 연기 디렉팅이 빛을 발한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등장인물들이 어떤 복잡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저 대사를 내뱉는 심정이 어떠한지, 저 인물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분노하면서도 내심 그 이유를 이해하고 있는 지점이 그러하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연민을 느끼지는 않을지언정, 자연스럽게 공감이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지점에는 동의할 수 없다. 20년 전 작품이라는 지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는 경찰과 정부가, 어른들이 개입해야 하는 상황을 아이들의 사춘기라는 '감성'으로 지우려 한다. 그 어른들이 개입하지 않는 잔인함을 묘사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의 지옥은 너무 예쁘게 포장된다. 나아가 여성 캐릭터들의 활용 역시 지나치게 구시대적이다. 결국 해방을 맞고 에테르를 찾는 것은 남학생이다. 가해자 위에 군림하는 가해자도 남학생이다. 여학생들은 그저 그 남학생들에게 철저히 이용당한다. 여학생들은 목숨을 잃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운다. 실제 배우 역시 삭발 장면에서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바로 이런 지점들에 있어 나는 감독의 연출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작품 위에는 사람이 있고, 작품 밖에도 사람이 있다. 그 작품이 얼마나 위대하든지, 나는 작품이 사람보다 우선시되는 것에 절대 동의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분명히 뛰어난 연출력을 가진 작품임에는 분명하지만, '좋은' 영화라고는 절대 말하지 못하겠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지도, 감히 추천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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