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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마이 Dec 23. 2022

메리 크리스마스, 캐롤

<캐롤> 리뷰





<캐롤>

(Carol, 2016)

영국,미국,프랑스/118분/드라마

감독 : 토드 헤인즈

출연 :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외













이 아름다운 보색



언제나 완벽한 옷차림을 한 채, 눈빛만으로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그녀는 '캐롤'이다.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그녀의 상징색은 '빨강'이다. 붉은 매니큐어와 붉은 목도리, 붉은 입술을 한 그녀는 눈빛마저 붉게 타오르는 듯하다. 마치 선수처럼 테레즈와의 첫 만남을 이룬 그녀는 어디에서나 당당하고 주체적이다. 테레즈와의 관계에서도 어째서인지 늘 주체가 되는 것은 캐롤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녀는 이 영화의 '대상'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이 지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영화의 제목이 '캐롤'인 것처럼, 영화는 테레즈라는 인물, 테레즈의 카메라를 통해 캐롤을 대상화한다.




반면 테레즈는 '초록'이다. 늘 바쁜 일상에 힘겨워하는 캐롤과는 달리, 사회에 막 나서려 하는 테레즈는 모든 것이 무료하다. 채도가 낮은 초록색 옷을 입은 테레즈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붉은'색 산타 모자를 쓰기 싫어하던 테레즈는, '붉음'을 상징하는 캐롤이 넌지시 건넨 모자가 예쁘다는 말에 더 이상 모자를 쓰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테레즈는 말이 없고, 남자친구 리처드의 제안에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그녀는 마치 수동적인 듯 보이고 모든 일에 따르는 사람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이 또한 역설적으로 테레즈는 캐롤을 대상화하는 주체이다. 특히 그 지점은 '카메라'라는, 테레즈를 상징하는 매개체로 더욱 부각된다. 그동안 인물사진을 찍지 않던 테레즈는, 캐롤을 만나고서 처음으로 사람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그 대상은 어김없이 '캐롤'이다. 테레즈는 끊임없이 캐롤을 바라보고 시선을 둔다. 더욱 강렬한 눈빛은 캐롤일지 몰라도, 언제나 테레즈의 당찬 눈빛은 캐롤을 향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갈수록 서로의 색깔에 매료된다. 각각 원색의 옷을 입던 두 사람은, 빨간색과 초록색이 섞인 아이템들을 착용한다. 빨강과 초록이 체크무늬로 된 목도리를 한 테레즈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각자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테레즈와의 이별을 고한 캐롤의 손톱에 더 이상 붉은색은 없다. 초록색 테레즈를 잃음으로써 그녀는 그녀 자신의 붉은색마저 잃었다. 서로 정 반대의 위치에 놓인 듯하던 서로의 색깔이, 서로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더욱 강한 색깔을 내는 것이다. 











다르기에 아름다운 두 사람



이 '다름'은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소재이기도 하다. 캐롤은 부유한 상류층으로서, 테레즈는 그렇지 못한 인물로 설정된다. 당대 사회에서 두 사람은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동시에 각자 계층에 따른 정체성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한다. 처음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대등하지 못했다. 고객과 점원으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다름을 계속해서 확인한다. 캐롤이 데려간 레스토랑에서 테레즈는 메뉴를 고르지 못하고 캐롤을 따라 주문한다. 그런 장소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캐롤이 초대한 캐롤의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테레즈는 초대받은 손님임에도, 부엌에서 일을 하고 음식을 대접한다. 이 보이지 않는 계급은 영화에 깔려 있는 긴장감을 놓치 않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런 두 사람의 '다름'이 유일하게 허물어지는 시간은 자동차 안이다. 자동차 안에서의 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사회적인 정체성의 수행을 강요받지 않는다. 자동차라는 고립된 공간은 그녀들에게 여성으로서, 누군가의 엄마, 아내로서, 부유함의 정도에서 벗어나 서로를 사랑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평생 자동차 안에서 존재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사회의 '다름'에 대한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준 선물도 그렇다. 캐롤은 고급 카메라를, 테레즈는 음반을 선물한다. 두 사람이 구할 수 있는 제품의 가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도 그들의 다름을 부각한다. 그러나 이 선물은 단순히 서로의 다름을 규정하는 것을 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가치를 상징하기도 한다. 카메라는 테레즈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물건이다. 캐롤이 테레즈에게 카메라를 선물함으로써, 테레즈는 캐롤에게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라는, 일종의 응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테레즈가 캐롤에게 준 음반은 그들이 섹슈얼한 텐션에서의 추억을 되살리는 매개체이다. 캐롤은 과거의 불안에 늘 사로잡혀 있다. 애비와의 뜨거웠던 연애가 그것을 대표하는 예시일 것이다. 그녀에게 과거는 자신의 정체성임과 동시에 불안의 근원이다. 테레즈는 캐롤에게 있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자신의 불안을 건드리는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기차 장난감




그래서 서로의 만남이 계속될수록 도리어 불안해지는 것은 캐롤이다. 자신의 딸을 위해, 50년대 당시의 지금보다 더욱 거셌던 사회적 압박에 의해 끝없이 고민한다. 이는 본인이 스스로를 억압해 가둬두었던 그녀의 정체성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테레즈는 다르다. 본래 조용하고 호불호 없이 무던하게 살던 테레즈는 캐롤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한다. 리처드의 물음에는 언제나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던 그녀는 캐롤의 물음에는 언제나 명확한 답을 내놓는다. 가장 인기 많은 상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곧바로 마치 캐롤의 인생을 상징하는 듯한 기차 장난감을 가리키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먼저 도망치는 것은 캐롤이다. 테레즈는 굳건하게 그 자리에 서 있다. 물론 두 사람이 살아온 경험의 차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정도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캐롤은 그렇게나 고통스러운 고민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애비의 존재는 이를 잘 드러내는 예시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영화의 마지막까지 테레즈의 눈빛은 오직 한곳만을 향한다. 다시 본인의 정체성을 되찾아 붉은색 매니큐어를 한 캐롤을 향해 말이다. 캐롤은 결국 사회의 압박을 이겨낸다. 자신의 딸을 위해서 본인은 본인이 당당해지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테레즈를 선택한다. 이 뜨거운 성장 드라마의 주인공은 결국 영화의 제목처럼 '캐롤'이다. 기차 장난감이 다시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오듯, 캐롤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시금 그녀의 눈빛은 붉게 타오르고, 테레즈의 강인한 눈빛은 여전히 캐롤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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