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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마이 May 11. 2022

우연이 가지는 개연성

<우연과 상상> 리뷰


<우연과 상상>

(Wheel of Fortune and Fantasy, 2021)

일본/121분/드라마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 후루카와 코토네, 현리 외











1부 -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우연과 상상>의 에피소드들은 세 번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 첫 번째 에피소드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은 메이코와 츠구미의 택시 안에서의 대화, 카즈아키와 메이코의 회사에서의 대화, 마지막 메이코의 ‘상상’ 속의 세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두 번째 에피소드 <문은 열어둔 채로> 역시 크게 3번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나오와 사시키의 자취방에서의 대화, <아가씨>의 낭독 장면이 떠오르는 나오와 세가와의 연구실에서의 대화, 또다시 재회한 나오와 사시키의 버스에서의 대화로 구성된다. 마지막 에피소드 <다시 한번>는 나츠코와 유키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의 대화, 유키의 집에서의 대화, 다시 에스컬레이터에서의 대화로 구성된다.



이처럼 <우연과 상상>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가장 ‘잘하는’ 롱테이크의 대화와 한 대의 카메라만으로 촬영한 다큐멘터리의 형식, 홍상수 감독이 떠오르기도 하는 과격한 클로즈업 등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이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작품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소들이지만, <우연과 상상>은 독특한 부분이 있다. 감독이 직접 언급한 ‘에릭 로메르’의 영향이 바로 그것이다. 로메르의 작품들이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인 대화의 매력적인 흐름과 템포가 <우연과 상상>에서는 특히나 잘 드러나고, 이는 영화의 대화를 한 층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류스케 감독 특유의 차가움과 서늘함 또한 잘 보여준다. 매끄럽게 전환되는 로메르의 컷과는 다르게, 앞서 언급한 과격한 클로즈업이나 관객을 응시하는 듯한 정면 컷들이 그러하다. 이는 기존 감독의 작품보다 조금은 편하고 유머러스한 대화 사이에서 역설적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더욱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장치로써 활용된다. <열정>, <아사코>, <드라이브 마이 카> 에서 느낀 감독 특유의 건조함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들며 여전히 존재한다.












2부 - 문은 열어둔 채로





영화를 관통하는 소재가 ‘우연’이라면, 영화를 구성하는 가장 큰 주제는 ‘진심’이라는 가치이다. 1부의 메이코와 카즈아키는 서로의 ‘진심’을 알고 있음과 동시에 알지 못한다. 정확히는 알고 있는 사실을 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진심’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 혹은 그 가치관이 가져오는 부담감에 회피하며 결국 참으로 영화 같음과 동시에 정말이지 우리의 일상과 같은 결말을 맞이한다. 2부의 나오는 자신의 ‘진심’에 큰 두려움을 안고 있음과 동시에, 그 ‘진심’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가와에게 그 ‘진심’을 연기하게 되는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나오와 세가와의 ‘진심’들은 두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이 두 에피소드에서 관객들은 피로감과 서스펜스를 느낀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심’을 말하기 어려운 세상을 살아간다. 사람들은 자신의 진심을 섣불리 꺼내지 않음에도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진심을 계속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부분에서 불편함과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공포를 느끼는 것은 귀신이나 좀비 따위가 아닌 우리의 일상과 대화이다. 감독은 그 공포스러운 대화를 화면에 그대로 옮겨 관객들에게 공포를 심어준다.





그러나 3부의 두 사람은 조금은 다른 ‘진심’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우연을 통해 서로 연대한다. 반복되는 회피와 우연, 용기에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진심’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그 ‘진심’을 서로 축하해 주며 기뻐한다. 어쩌면 이 강인하고 멋있는 두 사람의 진심을 마지막 3부에 배치한 것은 감독의 작은 배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의 일상과 우연은 참으로 공포스러운 것임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갈 힘 또한 있다고 믿고 싶게 한다.












3부 - 다시 한번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열정> 이후 본인의 모든 작업들은 ‘우연’을 포착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우연’에 대한 강한 믿음과 그가 ‘우연’에 대해 느끼는 아름다움의 완결판이 <우연과 상상>이라는 영화의 제목으로부터 드러나는 듯하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일상’을 이야기하는 감독이다. 그리고 놀랍지만 당연하게도, 우리의 일상은 우연으로 가득하다. ‘우연’이라는 것은 어느 상황에 대입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이른바 ‘개연성’을 동반한다.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우연이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확실한 개연성을 안겨준다. 그리고 <우연과 상상>은, 우리의 우연을 그만의 방식으로 소개한다.




가장 사소한 것이야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판단하기 어렵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를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감독은 우리가 언제나 느끼고 있음에도, 형용하고 구체화하지 못한 감정과 우연을 무서울 정도로 솔직하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결은 다름에도, 두 감독 모두 우리가 숨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잔인할 만큼이나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우리의 인생은 영화와 다르다. 그렇기에 <우연과 상상>은 영화가 지닌 클리셰를 마음껏 비틀며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충격을 안겨준다. 그러나 곧 그 충격이 우리의 일상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 관객들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이것이야말로 감독의 재능이자 저주일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삶은 앞으로도 우연으로 가득할 것이고,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끊임없이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를 껴안으며 ‘진심’으로 그들의 ‘우연’을 기뻐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여전히 그 무섭고 잔인한 우연들을 기대하고 응원하고 싶어진다.




















+)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보기 힘든 사람이라면 이 영화로 시작하면 참 좋을 것 같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장점이자 약점이 정말 긴 롱테이크와 건조한 정적들인데, 옵니버스이다 보니 템포가 빠르다.


++) 3부의 세계관 설정의 당위성이 궁금하다. 그 세계관 덕분에 다가오는 울림과 여운이 훨씬 컸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세계관이지만 혹시 더 다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 <드라이브 마이 카>가 어째서인지 너무 내 취향이 아니라 사실 좀 두려웠다. <아사코>를 너무 사랑했기에 그저 추억으로 남겨둘까 고민도 했지만... 역시... 이 감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 누가 나한테 이 영화가 왜 좋아? 라고 물으면 제~~~~~~일 대답하기 어려운 감독 독보적 원탑이 하마구치 류스케다... <아사코>랑 <우연과 상상> 등 그의 영화 대부분이 그러하고, 마찬가지로 <드라이브 마이 카>가 싫은 이유조차 모르겠다...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어서 사실 이번 리뷰 영화 정할 때 그냥 빠질까 고민 많이 했지만... 그래도 팬심으로 도전해보고자 골랐는데 역시나... 나도 써놓고 저게 뭔 소리인지 모르겠으며... 결정적으로 내가 느낀 감정을 정확히 설명을 못하겠으니까 너무 답답하다!!! 그나마 최대한 글로 써놓긴 했지만... 이 이상한 감독의 매력을 느끼고 싶으면 제발... 그냥 영화를 한 번 봐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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