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퀀트의 독일 여행

9. 인간 vs 수학 vs AI

by 파워 퀀트

우리 회사에는 크게 세 가지 트레이더 종류가 있다.


1. Manual Trader

Manual Trader, Clicker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트레이더들은 인간의 판단력을 이용한다. 다양한 데이터를 눈으로 읽은 뒤, 에너지 가격이 오를지 안 오를지 판단해서 포지션을 취한다. 이 트레이더들의 강점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강하다는 점이다 (물론 그 상황에 잘 대처했을 때 이야기지만). 예를 들어, 러시아 전쟁이나 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이들은 빨리 자신의 포지션을 바꿀 수 있다. 과거에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어도, 인간은 상상력을 가졌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단점은 이들이 책상 위에 앉아있는 동안에는 계속 거래가 이루어지며, 이들이 책상에서 일어나면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에너지 시장은 365일 24시간이기 때문에, 365일 24시간에 적어도 한 명의 트레이더는 출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인건비도 많이 들고, 인력도 채용을 많이 해야 한다.


2. Fundamental Trader

이 트레이더들은 수학, 통계학을 이용해서 가격을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거래를 한다. 수학으로 가득 찬 모델을 만들고, 이 모델이 가격을 얼마나 잘 예측하는지 실제 가격 데이터와 비교를 한 뒤, 가장 좋은 모델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포지션을 취한다. 어떤 회사에서는 이런 분들도 Quant Trader라고 부르지만 (정량적 방법을 이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Funda Trader라고 부른다.

방금 설명한 Manual Trader들은 이런 수학적 지식을 깊이 알 필요가 없다. 우리 회사에 서 많은 Manual Trader들은 정책학, 경제학을 전공했다.

반면에 Funda Trader들은 모두 수학, 통계학을 전공했다. 이들은 자신의 모델을 돌리고 그 예측값으로 본인들이 직접 거래를 한다. 강점은, 어쩌면, Manual Trader들보다 더 정교한 트레이딩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직관이 아닌, 수학과 데이터로 무장한 이들은 조금 더 이성적인 방향으로 거래를 할 수 있다. 다만 단점은, 그 모델을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 모델이 앞으로도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하리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이들 역시 자신들이 컴퓨터에 앉아있는 동안에 거래가 이루어진다. 즉, 밤낮이건 주말이건 출근을 해야 한다 (요즘에는 Manual Trader한테 살 지 말 지 알려주기만 하고 자신들은 집에서 쉬는 거 같기도 하다. 어차피 클릭해야 하는 사람은 한 명이면 족하니까)


3. Quant Trader

이 팀이 내가 속한 Quant Trader이다. 우리는 AI를 개발하고, 이 모델이 알아서 거래를 한다. 우리가 직접 매수 매도하는 경우는 일절 없다. 몇 년치 데이터로 학습한 이 모델은, 본인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포지션을 취하고 수익을 낸다 (또는 손실을 낸다). 우리 팀은 컴퓨터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많고, Github이 우리의 놀이터이며, 프로그래밍이 수학, 통계학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 실례로, 어떤 한 분은 수학 박사를 졸업했지만, Pull Request (Github에서 자신이 만든 코드를 Repo에 Merge 하기 위한 절차)를 자주 망쳐서, 팀원들 사이에서 한 때 평이 안 좋았다.

이 팀의 장점은 우리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말에 출근할 필요도 없고 밤에 책상 앞에 붙어있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인건비도 덜 들고, 많은 인력도 필요하지 않아, 내가 받는 보너스의 비중이 Manual, Funda Trader보다 높다.

다만, 이것이 치명적인 단점인데, 과거에 벌어지지 않는 일들은 이 모델이 학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 이란 전쟁이 터져서 에너지 가격이 올라도, 이 모델은 공매도를 친다. 사람이 보기에 바보 같은 트레이딩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Manual Trader가 우리한테 바보 같은 트레이딩 하지 말라고 최근에 혼을 낸 적이 있다. 우리는 그럼 얼른 가서 모델을 혼내주겠다고 농담으로 받아쳤다.


AI시대에 AI로 트레이딩을 한다는 점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AI가 인간보다 수익을 잘 낼까? 또는 AI가 전통 수학 기법을 항상 이길까? 물론 앞으로 더 발전한 AI가 나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Citadel 회장인 Ken Griffin도 Machine Learining이 자신의 헤지펀드에서 도움은 되었지만, 그렇게 혁신적이지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Quant Trader로서 오늘도 내일도 AI개발에 주력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AI가 전부라는 거만한 자세는 내려놓고, 인간이 아니면 전통 수학 기법이 언제든 우리를 이길 수 있다는 위기감 또한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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