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너무나 부족한 선배
꿈만 같던 대기업 신입 타이틀 달고 입사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프로젝트 속에서 쉴 틈 없이 달렸죠. 솔직히 처음엔 '지방대 출신이 과연 대기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불안감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제법 회사에 안착했다는 뿌듯함도 느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흘러 '신입 딱지'를 떼고 보니, 어느새 저에게도 첫 후배가 생겼습니다.
"이런 업무를 신입사원때 어떻게 진행하셨어요...?"
처음 후배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며 들었던 말이었습니다. 솔직히 좀 우쭐했습니다.
신입 A 후배는 제가 담당했던 행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경험을 들으며 "저도 할 수 있을까요?" 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시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던 저는 "열심히 하면 다 할 수 있어요" 하고 자신 있게 말해줬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열심히 일하던 후배가 대형사고를 저질렀습니다. 변경된 행사 일정을 행사 3일전까지 담당 업체에게 전달하지 않았던 것이었죠. 업체는 해당 일자에는 행사 진행이 불가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순간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한 척하며 후배에게 말했습니다.
"A 씨, 업체에게 마지막으로 업체에 일정 변경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안된다고 하면 다른 업체라도 연결시켜달라고 바로 확인해주세요."
다행히 가까스로 일정이 가능한 다른 업체를 섭외하여 행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 또한 신입사원 때부터 많은 사고를 쳤습니다. 입사 초, 대형 행사 홍보를 위해 이미 수천장이 인쇄된 홍보물에 오타를 발견하지 못해 팀장님께 단단히 혼났던 기억이 생생하거든요. 그때 팀장님은 제게 "네가 꼼꼼하게 확인 안 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라며 질책했고, 저는 그때부터 꼼꼼하게 점검하며 일을 마무리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A 후배에게 제가 겪었던 실수담을 차마 솔직하게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후배에게 '나도 실수했던 사람'이라는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죠.
오히려 "이 정도는 신입이라도 실수하면 안 되는 거야"라는 속마음이 저를 더 엄격하게 만들었습니다.
후배가 많이 위축된 모습을 보니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저도 모르게 신입 때의 저와 후배를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스스로 '꼰대'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점점 후배들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완벽하고 유능한 선배로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커져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후배들의 질문에도 정답만을 제시하려 했고, 때로는 저의 경험을 과장해서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점점 후배들이 많이 생기면서 저는 더 큰 심리적 부담감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입 때는 제 업무만 고민하면 됐지만, 이제는 후배까지 신경써야 했죠.
특히 힘들었던 것은 저 자신의 부족함을 숨겨야한다는 스스로의 강박이었습니다. 여전히 새로운 업무에 부딪히고, 때로는 실수할 때가 있었지만 저에게는 더 이상 '실수해도 괜찮은 신입'이라는 꼬리표가 없다고 느꼈죠.
'나는 여전히 배우고 성장하는 중인데…'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지 못하는 저 자신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후배들과 함께하며 얻는 것도 분명 있었습니다. 후배들의 엉뚱한 질문에 답변해주면서 저의 지식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고, 후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A 후배가 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선배님, 지난번에 제가 실수했던 보고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수정하셨어요? 저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고 싶은데…"
당시 부담감으로 많이 지쳐있기 때문이었을까요? 후배의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저의 실수담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배운 점도 말해주게 되었죠.
"저도 신입 때 똑같은 실수를 많이 했어요. 중요한건 실수가 실수로 끝나는게 아니라, 그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기존의 업무 방식을 바꾼다던지 업무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점검할 수 있는 이른바, 실수 방지 장치를 갖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솔직하게 저의 이야기를 하자 A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A 후배는 저에게 더 편안하게 질문하고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후배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더 유연해졌습니다. 완벽한 선배가 되려 애쓰기보다, 부족한 부분을 솔직하게 보여주는게 치열한 직장 생활을 팀원들과 함께 헤쳐나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전히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압박감에 짓눌리기보다, 팀원들과 저의 생각을 솔직하게 공유하며 함께 의지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습니다.
[13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