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때도 웅장함에 압도당했지만, 첫 출근 날 마주한 회사의 외관은 똑같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이제 이 거대하고 웅장한 대기업 건물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묘한 전율이 흘렀습니다. 긴장과 함께 찾아온 알 수 없는 기쁨,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이 뒤섞이며, 제 마음은 더없이 복잡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으로 가득 찼었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었던 이전 직장,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작은 공공기관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이곳은 입구에서부터 사원증을 목에 건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는 보안 시스템으로 되어있었죠. 마치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낯선 긴장감에, 회사 인사팀으로부터 받았던 '입사 안내 메일'의 내용을 애써 되짚으며 쭈뼛쭈뼛 정문 보안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늘부터 근무하게 된 신규 입사자입니다"라고 겨우 입을 떼어 소개하자, 보안실 직원분은 능숙하게 임시출입증을 건네주었어요. 그 출입증을 받아 정문 게이트를 통과해 로비에서 어색하게 기다리고 있던 제게 말끔한 정장 차림의 인사팀 직원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며 저를 제 부서로 직접 데려갔습니다.
막내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 팀의 팀장님과 팀원들께 인사 후 곧이어 팀장님과 함께 담당 임원분께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임원실 문이 열리고, 인자한 미소의 임원분께서 저희를 맞이해 주셨죠.
"다소 사원의 입사를 진심으로 축하해요. 신입으로 우리 회사에 합류했지만, 다소 사원이 전 직장에서 쌓았던 경험이 우리 회사가 앞으로 진행하려는 사회공헌 업무 방향과 아주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분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겠지만, 회사에서 진행 중인 사회공헌 추진 일정이 많이 촉박한 상황이라 아마 바로 실무에 투입되어야 할 겁니다."
겉으로는 인자한 웃음과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첫 만남부터 명확하게 제 담당 업무를 지시하는 임원분과의 대화에서는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어요. 마치 '신입이지만 바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는 듯했죠. 그렇게 첫 인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사수와 함께 회사를 한 바퀴 돌아보며 전반적인 회사 소개와 제가 앞으로 맡게 될 구체적인 업무들을 소개받았어요. 마치 폭풍우처럼 정신없이 첫날이 흘러갔고, 퇴근길에 떠오른 생각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이곳은 첫 직장이었던 공공기관 계약직 시절과는 업무의 성격이나 스케일이 정말 차원이 다르다.'
'과연 내가 이 모든 일들을 무사히 다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수많은 취준생들이 그러하듯, 저 또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분명 나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다 해낼 줄 아는 사람'으로 저를 최대한 포장하고 소개했어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저는 마치 화려하게 꾸며진 선물 포장지 속에 감춰진 저라는 사람의 실체가 그대로 드러날까 봐 내심 겁을 냈던 것 같습니다.
'혹시 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죠.
대기업 입사 후 저의 첫 업무는 대표이사와 도지사 같은 고위 관계자들이 직접 참석하는 대규모 사회공헌 행사 준비였어요. 전 직장에서도 작은 행사 기획 및 운영 업무는 몇 차례 경험했지만, 다수의 언론사와 수많은 협력사,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가득한 이런 대규모 행사는 처음이라 시작부터 부담감이 상당했습니다. 준비 기간마저 충분하지 않았던 탓에, 입사 후 매일 밤 야근은 기본이었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날이 부지기수였죠. 피곤함이 몰려올 때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제 마음 한편으로는 묘한 행복감이 피어났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반복되는 정체된 업무만 수행하며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저에게, 이 새로운 환경에서의 치열한 도전과 끊임없는 성장은 그 자체로 활력과 만족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행사를 준비하며 저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것을 넘어, 업무의 실깊이와 다양함을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회사에 필요한 최적의 업체를 찾아내고, 우리 회사의 방향성에 맞춰 업체와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법을 익혔죠. 사소해 보이지만 업무의 전체적인 흐름을 좌우하는 디테일을 꼼꼼하게 챙기는 법도 배웠습니다. 외부 업체에서는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우리 회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가치나 미묘한 부분을 직원으로서 놓치지 않고 챙기는 노하우도 몸에 익혔죠.
상사에게 업무 진행 상황을 명확하고 효율적으로 보고하는 방법, 나아가 행사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설득력 있는 보도자료를 만들고 언론사와 원활하게 소통하는 방법까지, 이 모든 것이 저에게는 생애 첫 경험이자 소중한 자산이 되었답니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이전 직장에서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른 채 몇 년째 행사 일자와 담당자 정보만 바꿔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던 보고서를 작성하며, '발전은커녕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걱정하던 저에게는, 이 대기업에서의 경험은 마치 고인 작은 연못에서 벗어나 새로운 물결, 망망대해와 같은 바다에 기꺼이 뛰어든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게 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한순간 한순간이 배움의 연속이었고, 살아 있음을 느끼는 귀한 경험이었죠.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간 준비 기간들이 지나고, 능력 있는 선배들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마침내 첫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밀려오는 안도감과 함께, 저는 공공기관을 과감히 뛰쳐나와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길 정말 잘했다는 깊은 만족감과 엄청난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해냈다!'는 짜릿함은 그 어떤 피로도 잊게 할 만큼 값진 것이었죠.
열정적으로 준비했던 첫 행사가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으며 마무리되자, 저에게는 새로운 일들이 끊임없이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하나씩, 또 하나씩 주어진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해나가며 '아, 내가 이제 대기업 신입사원이라는 자리에 제법 무사히 안착했구나' 하는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죠.
그렇게 하루하루를 새로운 배움과 성취로 채워나가며 보내던 어느 날,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에게 바라는 기대치와, 점점 연차가 쌓여가는 저에게 바라는 기대값이 처음과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12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