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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이력서#09] 면접 질문 : 학교 위치

“OO대학교요...? 이게 어디 지역에 있는 대학인가요?”

by 다소

서류 합격 통보를 받고 참석한 첫 사기업 면접.


면접 대기실에 앉아, 수없이 연습했던 자기소개를 조용히 되뇌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면접장 문이 열리고, 저를 포함한 다섯 명의 지원자가 동시에 입장했습니다.


면접관이 제 이력서를 넘기며 처음 던진 질문은 ‘직무 역량’도, ‘지원 동기’도 아닌 이 한 마디였습니다.

“이 학교, 어디 있는 건가요?”


“…아, 네. 충청북도에 있는 학교입니다.”


짧은 대답을 내뱉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내 정체성을 한 줄로 요약당한 듯한 그 순간, 저는 단단히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면접 시간 내내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실무 중심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저에게는 더 이상의 질문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병풍’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30분간의 면접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에 들고 있던 포트폴리오가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만큼은 ‘지방대에 간 나’라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냥 들러리였구나.’


집으로 돌아온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누워 있었습니다.


며칠 후, 또 다른 면접이 있었습니다.

한 번의 실패를 겪고 나니, 이번엔 유독 위축된 채 대기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같은 조 면접자들의 자기소개가 시작됐고, 저는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삼성OOO에서 홍보 인턴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해외에 위치한 OOO대학교에서 1년간 교환학생을 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다들 말투는 겸손했지만, 그 말속엔 자신감과 여유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습니다.

그 태도만으로도, 저는 벌써 밀린 기분이었습니다.

상위권 대학 출신, 대기업 인턴 경험, 고득점의 어학 점수. 말하는 내용과 태도 모두가 달랐습니다.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습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저는,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1년간 근무했던 경험을 꺼내는 게 괜히 초라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아, 나는 스펙으로는 안 되는구나…’


그렇게 기세는 꺾였고, 자신감은 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한 질문이 제게 날아왔습니다.


“다소 지원자, 자기소개서에 ‘취미활동과 봉사활동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고 쓰셨던데, 어떤 내용인가요?”


순간 머릿속이 번쩍했습니다. 그 짧은 한 문장이, 무너졌던 제 멘탈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충분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점점 확신을 담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생 시절, 봉사활동을 하던 청소년 기관에서 클라이밍을 통해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했습니다. 이른바 ‘문제아’로 불렸던 아이들과 매주 한 번씩 실내 클라이밍 체험을 진행했고, 그 시간을 통해 감정적으로 교감하며, 아이들이 자신의 시간을 건전하게 보내고 도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장기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운영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면접관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게 기관 주도가 아니라, 지원자 주도로요?”


그 질문이 이어지는 순간, 저는 확신했습니다.

스펙으로는 이길 수 없어도, ‘나만의 경험’으로는 싸워볼 수 있겠구나.


그때부터 저는 면접 전략을 바꿨습니다. ‘이런 이야기라면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면접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먹이를 던졌습니다. 살아 있는 경험과 내가 만든 결과물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경쟁자들은 화려한 이력서를 내밀었지만, 저는 제가 직접 기획하고 실천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무기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점점 더 많은 면접장에서 통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의 눈에 들기 위해 바꾼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진짜 나의 언어로 설명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면접 결과가 바뀌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1차에서 바로 탈락하기만 했던 면접은 2차 합격까지 통과하는 등 조금씩 합격률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만의 답변을 쌓아가던 어느 날. 평소처럼 채용 공고를 훑어보다가 당시 재계 순위 8위였던 그룹사의 신입채용 공고를 발견했습니다.


“내가… 이 정도 회사에 이력서를 써봐도 되는 걸까?”


한동안 손이 마우스 위에서 머물렀지만, 내가 쌓아온 이야기들이 과연 어디까지 통할 수 있을지 시험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10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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