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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이력서#08] 아니, 대기업은 아무나 가냐고

지방대 졸업생이 대기업에 입사할 가능성은?

by 다소

“정규직 면접을 포기한다고?”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던 공공기관의 정규직 면접을 포기하고 제가 사기업, 그것도 대기업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부모님과 친구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지방대 나와서 무슨 대기업이야”라는 말도 들었고, 현실을 보라는 조언은 셀 수 없이 많았죠. 사실, 그 말이 전부 틀린 건 아니었습니다. 저 자신조차도 확신은 없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라는 것.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사회복지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저는 그 경험을 살려 사기업으로 옮겨가고 싶었습니다. 제가 도전했던 분야는 '사회공헌(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는 분야였습니다.

사회공헌은 쉽게 말해 기업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 아동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거나, 환경 보호 캠페인을 진행하거나,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의 일이죠.


사실 사회공헌 직무는 생각보다 채용공고가 많지 않습니다. 기업 내 CSR 부서는 소수 인력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고, 경력직 위주의 채용이 대부분이기에 신입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더욱 준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의 공고가 올라오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모든 에너지를 쏟았고, 그만큼 한 번 한 번의 지원이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력서 한 번만 봐주라.”


처음 작성한 이력서와 자기소개를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에게 처음 보여줬을 때, 마음 한편은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데?"라는 말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돌아온 피드백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목이 너무 밋밋한데? 이건 누가 읽고 싶겠어?”

“자기 성과는 숫자로 보여줘야지, ‘열심히 했습니다’만 반복하면 누가 알아?”

“문장이 너무 길어. 인사담당자는 소설을 읽는 게 아니야.”


그날 제 자존심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마치 받아쓰기 시험에서 빵점을 받은 초등학생처럼요. 하지만 그 혹독한 피드백 덕분에 저는 자기소개서를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잘 보이고 싶은 글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이 사람, 뭔가 다르네'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 시작한 연습이 ‘자기소개서 제목 짓기’였습니다. 예를 들어,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인재” 대신 “월 매출 150% 달성의 비결, 회의실 밖에서 찾다” 같은 제목을 붙였죠. 숫자를 넣어 성과를 강조하고, 문장은 최대한 짧고 강렬하게. 인사담당자는 수십, 수백 개의 이력서를 봅니다. 스캔하듯 보는 그들의 눈에 들어오기 위해선 눈에 띄는 제목과 간결한 문장이 생명이라는 걸 알 수 있었죠.

자기소개서는 ‘과장된 미화’가 아닌 ‘구체적인 진실’을 담아야 한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습니다.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보단 “참여율 20%였던 사내 캠페인을 75%로 끌어올렸다”는 객관적이고 명확한 수치가 더 설득력을 가지니까요. 그리고 단순히 “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라고 쓰는 대신, “대학교 봉사단 임원으로 활동하며 자원봉사 프로그램 기획을 맡아 단원들의 문제 조율하고 복지 시설에 필요한 봉사활동을 제공하여, 결과적으로 올해의 최우수 봉사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습니다.라고 작성하면 훨씬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지원 직무와 관련된 키워드 중심으로 서술한 자기소개서가 효과적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 '마케팅' 직무라면 '퍼포먼스', '트래픽 증가율', '콘텐츠 바이럴'과 같은 키워드를 전략적으로 배치해 인사담당자의 눈에 띄게끔 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원 기업에 맞춘 맞춤형 자소서’ 였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게 너무 힘들었던 초반에는 하나의 자소서를 돌려쓰다가 계속 낙방했고, 나중엔 공고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그 기업만의 색깔을 담는 문장을 고민하며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마다 강조하는 핵심 가치와 업무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복붙 한 듯한 자소서는 단박에 티가 납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 방식이 유일한 정답이었습니다.



사기업의 이력서 기본 요건인 자격증 항목을 채우기 위해서 엑셀도 제대로 못 다루던 제가 '컴퓨터활용능력 1급'에 도전한 것도 그즈음이었죠. 사실 제 수준이면 2급부터 시작하는 게 맞았는데, 어설픈 오기가 문제였습니다. 결과는 필기만 통과. 실기는 수없이 떨어졌고, 그 스트레스로 키보드를 몇 번이고 내려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장면이지만, 당시엔 절박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공인어학점수가 없다는 사실도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결국 저는 생전 처음으로 영어에 '진심'이 되었죠. 그 무대는 강남의 어느 토익학원이었습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영어만 보며 살았던 나날들. 스터디 그룹에도 들어보려 했지만,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곧 빠졌습니다. 혼자 하는 공부가 훨씬 집중이 잘 됐거든요. 그렇게 외로운 사투를 벌인 끝에 최종으로 달성한 토익 점수는 890점이었습니다.


한 단계씩 올라갔던 그 시절의 토익점수

물론, 요즘 세상에 890점은 흔한 점수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평생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아 지방대까지 흘러들어온 저에겐 값진 성취였습니다.

그 시기엔 매일 하던 면도도 하지 않고 수염이 덥수룩해져 거울 속 제 모습은 비호감 그 자체였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가지, ‘토익점수 달성’이라는 목표뿐이었죠.

학원에 가지 않는 날엔 새벽같이 일어나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누가 보면 박사 준비생이라도 되는 줄 알았을 겁니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들어가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문 닫는 시간까지 버티곤 했죠. 수염은 여전히 덥수룩했고, 무릎 나온 운동복 차림으로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는 저를 보고 인근 학교 학생들은 속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저 아저씨는 도대체 뭐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공간을 공유했던 학생들에게는 꽤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저는 정말로 절박했습니다. 사기업, 대기업에 한 번 발이라도 들이기 위해, 이력서 한 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 존재의 모든 에너지를 영어 단어와 엑셀 함수에 몰아넣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처음 토익 공부를 시작했을 때, RC 파트의 문제를 풀면 한 지문에 모르는 단어가 반 이상이었고, LC 파트에서는 처음 듣는 미국식 발음이 말 그대로 '외계어'처럼 들렸습니다. 어디부터 공부해야 할지도 몰라서 막막했던 그 시절, 지금 돌아보면 정말 중요한 건 바로 '단어'였습니다.

저는 토익의 기본을 다지기 위해 노란색 표지의 유명한 단어장을 샀습니다. 단어책을 손에 쥐고 읽고 또 읽고,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단어는 단순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문과 함께 반복해서 눈에 익히고 입으로 소리 내며 암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저는 자투리 시간마다 단어장을 들춰봤었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없이 쓰고 탈락 공고를 반복해서 확인하던 어느 날, 드디어 제게도 작은 빛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늘 채용 절차의 첫 관문에서 미끄러지던 저였지만, 처음으로 '서류 합격'이라는 벽을 넘은 거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는 마치 최종 합격이라도 된 것처럼 기뻤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면접장에 들어선 순간 저는 이제야 진짜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습니다.


[9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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