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소개합니다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이었던 시간

by 소소한 특별함

흔한 말로 해방둥이인 엄마는 지금도 단어 한마디로 충분히 알 수 있는 k-장녀로 태어났다.

위로 오빠 둘을 제외하고 아래로 있는 동생 3명을 업고 키웠다.

1960년대 후반의 한국 여성들이 결혼하던 적령기를 지나 옆 동네 잘 사는 집안의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첫 아이는 유산을 하였고 딸 둘을 연년생으로 출산하였다.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있던 엄마는 매 달 굿을 하며 온갖 귀신을 쫓던 시댁의 문화와는 맡지 않았다.

그런 굿판에서는 빠지지 않고 둘째 며느리가 잘못 들어왔다는 말을 남편의 사랑으로 이겨내고 있었지만 그 남편은 둘째 아이 18개월 무렵 지병으로 아주 멀리 떠나갔다.

둘째마저 아들을 출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집살이는 아들 잡아먹은 며느리가 되면서 자식마저도 데려가지 못한 채 빈털터리로 쫓겨났다.

홀연단신 서울로 올라와 살기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천하를 호령하던 사람의 안주인 역할을 톡톡히 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딸들을 데려올 수 있게 되었다.


전통 깊은 가톨릭 집안과 교육자 아버지에게 컸던 엄마는 누구보다 엄격하게 딸들을 키웠고, 혹시 당신 형제들에게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산다는 것이 민폐 될까 싶어 물리적 거리를 두며 살았다.

그 사이 두 번의 죽을병을 넘겼고, 50대가 되기 전 지금은 뇌졸중이라 불리는 중풍으로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오른쪽 손과 발이 어줍은 채 지내고 계신다.


딸 둘이 결혼할 때 흠이 될까 싶어 시집가기 전까지 절대 재가는 하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두 딸의 결혼은 상대적으로 아주 많이 늦었다.

어릴 때부터 허약했던 큰 딸은 20대 초반부터 손가락 발가락이 휘는 희귀성 류마티스로 결혼도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다행히 결혼을 하였고 잘 살고 있다.


엄마가 아닌 여자의 삶으로 보면 결혼생활 5년 남짓을 제외하고는 기댈 언덕 하나 없이 당신의 뚝심으로 타협보다는 버티고 지탱하는 삶을 살고 계시는 것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