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한 다음 해에 언니가 결혼을 하였고 조카는 그다음 해에 태어났다.
내가 연년생으로 자랐듯, 우리 집 아이도 조카와 연년생으로 고만고만하게 자랐다.
스포츠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놀이터에서 공놀이마저도 힘에 부쳤다.
반해서 조카는 엄마 아빠를 따라 농구장으로 야구장으로 다니는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다.
쉽게 지치는 나는 사람 많은 곳을 갈 수가 없었고, 낯선 곳에 대한 거부감이 컸기에 어느 날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농구게임 언제 있어? 그때 갈 거야? 그럼 우리 집 아이도 데리고 갈 수 있어? 남자로 크면서 경기장 한 번 안 가보는 건 아닌 것 같아"
하며 사소한 얘기들을 하고 전화를 끊으니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가 한 마디 하신다.
"너네 언니는 잘 살고 있다. 자꾸 연락하지 말아라."
그 말의 뜻은 이렇다.
이혼한 네가 자꾸 연락하는 것도 불편한데 어디를 같이 다니려고 해! 너로 인해 언니도 이혼하면 안 되니까 연락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만나지 않으면 더 좋고.
나는 '네'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어이없음을 말하고 있었지만,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 얼토당토않은 말을 따르고 있다.
이혼이 훈장일 수는 없다. 그러나 전염병 환자도 아니다.
나는 그렇게 가족에게서 가슴에 비수가 꽂히도록 아픔이 하나씩 하나씩 쌓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