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조선어 '출가외인'

상처의 딱지는 약자에게만 남는 것

by 소소한 특별함


서울에 살던 저는 임신 7개월 무렵 경기도에 거주하는 엄마가 출산을 가까이에서 하면 좋겠다는 말로 병원을 옮겼어요.

그때의 엄마는 뇌출혈로 오른쪽 손과 발을 당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산후조리를 친정에서 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거든요. 초진을 했던 병원에서 출산하고 조리원도 같은 병원으로 예약을 한 상태였지만 엄마 말을 들었죠.

그렇게 2주마다 주말이면 진료를 위해 병원에 갔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되는 친정집에 항상 들렀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병원의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웬일로 집에 있던 언니가 마침 설거지를 하고 있었어요. 나를 본 언니는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냐고 물었어요. 신발도 벗기 전이라 저 역시도 당황하며 내가 내 집에 오는데 뭐가 잘못되었나 싶었죠.

그러나 언니는 다른 말을 하더라고요.


"넌 출가외인이야!. 어딜 연락도 없이 네 맘대로 들락거려!. 가지고 있는 (대문) 열쇠 내려놓고 앞으로 오지 마!. 올 거면 사전에 연락하고."


신발도 벗지 못하고 문턱에서 울며불며 소리치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병원을 옮겼어요.

임신 중에 서운함은 평생 남는다고 저는 그때의 언니말이 너무도 아프더라고요.

같은 세대를 살고 있는 1살 많은 언니에게서 조선시대의 사고방식으로 '출가외인'이라는 단어를 쓰며 오지 말라는 말과, 마치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하려 병원을 옮겼다고 몰아세우던 그 말이 너무도 서러웠어요.

그런데 출가외인은 친정집에 가면 안 되나요?

본래 자기 하고 싶은 말은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며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본인 결혼 준비 막바지에 예민했겠다고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큰 상처를 입은 후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날부터 울기시작한 저는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매일 울었어요.

엄마 뱃속에서 태교대신 울음소리를 듣고 태어난 아이의 숨소리는 흐느낌이었고, 100일 지나서야 숨소리가 돌아오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며 전 또 울었죠.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현관문 앞에 서서 언니랑 소리치는 시간에 방에 있던 엄마는 우리가 자라는 내내 보여주셨던 모습 그대로 나와서 누군가에게 심하다던지 그만하라던지 하며 우리를 말리지 않았어요.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 엄마는 제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하셨어요.

"몸조리는 엄마가 해줘야 평생 한으로 안 남을 것 같으니 가까이 와라."

출산 한 달을 앞두고 그렇게 다시 병원을 옮겼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누구의 편을 들어줄 수 없지 않았을까, 못 본척하는 방법이 당신이 택한 최선이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 상처의 딱지는 약자인 제게만 남아있다는 것이에요. 언니 성격에는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일 테니까요.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2화아픈 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