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냉동실에 만두가 한가득 있었다.
반죽의 쫄깃함을 더하기 위해 냉장고에 두는 사이 만두소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엄마가 만두를 만들 때면 옆에서 거들던 기억이 난다.
반죽을 밀대로 밀어 피자도우처럼 모양이 잡히면 주전자 뚜껑으로 꾹 눌러 만두피를 완성하곤 했다.
서로 달라붙지 말라고 사이사이 밀가루를 뿌렸고, 반죽이 마르기 전에 만두소를 넣어 꼬물딱 꼬물딱 입을 봉하고 꾹 눌러주며 만두가 완성되면 바로 냉동실로 들어갔다.
마침 겨울채비로 김장김치를 하듯 우리 집 냉동실에는 그렇게 매 해 만두가 있었다.
언니와 나는 식성이 너무 달랐다.
언니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맛있게 먹은 기억이 없다.
언니가 간식처럼 먹던 생당근을 나는 쳐다도 안본걸 봐선 의도된 다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지금은 해본다.
그러나 겨울 내내 냉동실을 차지하던 엄마표 만두는 그렇지 않았다.
쫄깃한 만두피에 알이 꽉 찬 만두의 맛은 일품이었다.
이미 쪄서 냉동보관된 것들은 출출할 때 살짝만 데쳐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냉동실의 엄마표 손만두에는 내 몫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딸들은 예쁜 도둑이라고 나 또한 엄마집에 갈 때면 냉장고 먼저 열어보았다.
냉동고도 빼놓을 수 없기에 열어보면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을 만큼 한가득 만두가 들어있었지만 엄마는 내게 먹으라고 권하지 않았고 가져가라고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언니가 온다는 소리에 후다닥 육수 국물을 내며 만두를 끓이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돌아가는 언니의 손에는 엄마표 손만두가 한가득 들려있었다.
보면 안 되는 장면을 본 듯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엄마 집에 가도 더 이상 냉장고 문을 열지 않았다.
매 해 겨울이면 냉동실에 한가득 있을 그 만두의 맛이 생각났다.
참 맛있었는데....
올해는 내가 만들어먹자 싶어 이틀 전 손두부를 샀다.
그 두부를 더 두었다간 냉장고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쉰 채 버려질 것 같아 만두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 경력 21년 차지만 부엌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어렵고 복잡한 것은 언제나 생략하는 나였지만 만두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만두소부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된장찌개를 끓여도 인터넷 검색으로 레시피를 확인하는데 만두소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보아왔기에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김치를 꼭 짜야하는데 손목이 약한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소쿠리에 김치를 담아 무거운 것으로 꾹꾹 누르며 국물을 빼냈다. 반죽은 처음부터 나의 영역이 아니었기에 미리 사둔 만두피로 대신하며 엄마가 만들어 주던 그 맛을 상상하며 아주 오랜 시간 만두를 만들었다.
해도 해도 줄지 않는 만두소를 보며 왜 엄마표 손만두를 직접 만들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어깨가 깨질 것 같아 그냥 눕고만 싶었다. 이것 또한 '수련'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뒤틀리는 몸을 다독였다.
겨울이면 매번 생각나는 만두를 직접 해본다는 생각을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엄마표 손만두에는 항상 언니가 떠올랐고, 그 만두는 내 것이 아니라는 서운함이 묻어있는 음식이다.
만두를 만드는 내내 나는 엄마를 떠올렸고, 그 맛을 기대하며 저녁으로 먹을 만큼의 양이 완성되었을 때 육수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만두용으로 만든 넓적한 것은 기름을 살짝 둘러 납작하게 구웠다.
처음 해본 것치곤 먹을만하다와 엄마표 손만두 맛을 따라갈 수는 없구나.라는 두 가지 맛으로 나뉘었다.
엄마가 해 주던 그 맛과 같을 수는 없지만 나는 지금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음이다.
드라마를 볼 때면 엄마가 딸에게 '미안해' 혹은 '사랑해'라고 말하며 안아줄 때면 나는 폭풍 같은 눈물을 쏟아낸다. 내가 아주 오랜 시간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이었지만 그런 말을 할 엄마가 아님을 확인했기에 그 마음은 접었다. 그런 감정의 이입으로 모녀지간에 등을 토닥토닥하는 장면만 보아도 나는 금세 눈물 방울이 뚝 떨어진다.
이런 상태로 엄마에게 가더라도 예전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엄마의 반응을 살피겠지만 다음 달에 휴가 나오는 아들을 앞세워 나도 함께 가봐야겠다는 용기를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