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무턱대고 친정으로 돌아왔던 때가 생각난다.
늦은 던 결혼은 너무도 빠른 종지부를 찍었고, 아이와 함께 돌아온 딸을 엄마도 어쩌지 못했을 테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집에서 각각의 '엄마'로 살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상은 톱니바퀴처럼 언제나 똑같았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 7시. 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이를 보면서 또 다른 출근이라는 육아가 시작되었다. 몸과 마음은 무거웠지만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다. 나 또한 엄마였으니까.
하지만 종일 아이와 함께 보냈을 나의 엄마는 당신 방으로 들어가 아이가 할머니를 찾아도 내다보지 않을 만큼 방문을 꼭 닫고 계셨다. "식사하셨어요?"라는 나의 건조한 물음에는 대답 대신 날카로운 눈빛만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짐작으로 대답을 유추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점점 더 간소화되었다.
어느 날, 평소보다 서둘러 들어선 집안에서 엄마의 통화 중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분위기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임을 알 수 있었고 전화의 상대는 언니였다.
"나를 완전히 바퀴벌레 취급해!"
심장에서 쿵! 소리가 났다.
대답보다는 째려보는 것으로 대신했던 엄마에게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언제나 '무시'였다. 그런 엄마가 지금 '바퀴벌레'라는 표현을 하고 계신다. 내가? 엄마를? 그건 아니잖아!
딸의 이혼이 소문날까 문 밖의 출입까지 통제했던 엄마가 내게 느끼는 감정이 그러했다니 적반하장이었다.
엄마의 침묵은 언제나 나를 너무도 복잡한 감정으로 끌고갔다.
상황에 따라 좋은 건지 나쁜건지를 가늠해야 하는 감정의 노동은 생각보다 많은 병패를 낳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그래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작은 딸에게 엄마가 건네는 메세지는 하나였다.
"누가 이혼하랬니!"
제법 시간이 지나 독립을 하였지만 아직도 나는 죄인으로 살고있다.